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4화 취하다

  • 고은은 그날 밤 짙은 화장을 했다.
  • 채 씨 집안에 있을 적,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보잘것없는 신분과 채원에게 시집을 왔다는 것을 이유로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만들어내고 그녀를 싫어했다. 때문에 그녀는 생활에 있어 몹시 조심스러웠다.
  • 짙은 화장을 한 것만으로도 그녀는 자유를 다시 되찾은 기분이 들었다.
  • 고은은 조금 섹시한 치마를 입고 거울 앞에서 자신을 보았다. 만족스러웠다.
  • 택시를 잡고 시내에서 가장 큰 술집에 갔다. 술집은 너무 큰 나머지 건물 아래 위로 많은 구역이 나누어져 있었다.
  • 공공구역에는 무대가 있었고 남녀가 모여 몸을 비비며 춤을 추고 있었다.
  • 고은은 사방을 둘러보니 비즈니스 구역이 있었지만 거기는 가고 싶지 않았다. 비즈니스를 나누는 곳이기 때문에 따분하다고 생각됐다. 고은은 공공구역에서 빈자리를 찾아 찾았다.
  • 종업원이 오고 고은은 맥주 두 병과 과일 안주를 주문했다.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술잔을 만지며 무대 위에서 몸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조명이 화려했기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신나 보였다.
  • 고은은 잠시 후 웃었다. 자신은 그들보다 돈도 많은데 웃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생각을 마치고 고은은 종업원을 부르고 간식 안주를 더 시켰다. 채원이 그녀에게 물려준 많은 돈과 주식도 매달 돈이 나온다고 하니 남은 인생 아무것도 안 하고도 마음껏 놀고먹을 수 있었다.
  • 고은이 맥주 한 병을 마셨을 때 누군가 헌팅을 해왔다.
  • 워낙에 예쁜 데다 혼자서 왔으니 자연스럽게 눈에 띄었다. 그 남자는 고은의 맞은켠에 앉아서 물었다.
  • “혼자 왔어요?”
  • 고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상대방을 보았다. 캐주얼한 복장에 얼굴도 나름 괜찮았다. 고은은 여기에 놀러 온 사람은 개방적으로 놀기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그녀는 대답 대신 술잔을 들고 단번에 담긴 술을 비웠다. 고은을 보던 남자도 술잔을 비웠다. 고은은 웃으면서 술잔을 내려놓자 남자는 바로 술을 채웠다.
  • 고은은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녀 자신의 미모에는 그래도 자신이 있었다. 만약 한 명도 헌팅을 해오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절망할 일이다.
  • 하지만 술을 마시다가 틈이 났을 때면 주의가 분산되었다. 채원은 지금 뭐하고 있는지,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이혼에 성공했으니 어딘가에서 분명 축하파티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고은은 마음이 더 불편해졌다. 종업원을 불러 술을 더 주문했다.
  • 채원 또한 술집의 비스니스 룸에 있었다. 오늘은 접대가 있었지만 정식적인 접대는 아니었다. 협력 업체 중 하나가 해외에서 사업이 잘 된다고 하여 채 씨 가문도 해외 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었다. 만약 이 사람과 성공적으로 협력한다면 채 씨 가문이 해외로 진출하는 게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또한 오늘은 상대방 업체가 주동적으로 약속을 잡았다. 채원은 거절할 수 없었다.
  • 업체 담당자는 중년 남성으로서 술집에서 놀기를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 다만 도착해서부터 비즈니스에 관해서는 형식적으로 몇 마디 하고는 아가씨들을 불렀다. 채원은 이렇게 불미스러운 오락 문화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 채원은 왕 사장과 억지로 한 두 잔 마셨다. 왕 사장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 “채 선생은 이곳이 익숙하지 않은가 봐요?”
  • 채원은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 “몇 번밖에 와보지 못해서요.”
  • 왕 사장은 술잔을 흔들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 “많이 마셔요. 그럼 괜찮아질 거예요.”
  • 채원은 웃으며 술잔을 들어 왕 사장과 잔을 부딪쳤다. 이 술은 왕 사장이 가져온 것인데 맛이 조금 떫었지만 넘기는덴 문제없었다. 무슨 브랜드인지는 몰라도 맛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 채원은 두 잔을 마신 뒤 소파 등받이에 기대 몸을 조금 틀어 품에 안긴 아가씨를 밀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