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은 남자가 자신을 어떻게 보든지 신경 쓰지 않고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예쁘다는 것쯤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이 부분은 채원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남자는 멋쩍다는 듯이 함께 웃으며 대답했다.
“이렇게 혼자 나오면 가족들이 걱정 안 해요?”
“가족이라...”
고은은 되뇌었다. 걱정할 가족도 없었다. 가족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 사람은 채 씨 가문 사람들이었지만 지금은 채원에게 쫓겨 나온 신세니 이것조차 사라진 셈이다. 고은은 조금 어리둥절해졌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사람이 적은데, 여기 앉죠.”
고은은 고개를 돌려 보았다. 역시나 오상이었다. 오상의 뒤에 채원이 있었다. 다만 채원의 옆에도 사람이 있었다.
고은은 시선을 채원의 옆에 있는 여자에게 몇 초 머물렀다가 거뒀다. 여자는 미니 스커트를 입었다. 다리는 희고 길었으며 위에는 나시를 입었다. 파란만장했다. 얼굴을 훑어봤으나 고은의 상대가 안 되었다.
오상은 테이블에 사람이 몇이 있든 신경을 안 쓰고 꾸역꾸역 앉으며 고은에게 말을 건넸다.
“아가씨, 여기 사람 없죠? 없으면 저희가 실례할게요.”
원래도 여섯 명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채원이 데려온 정체불명의 여자까지 도저히 앉을 수가 없었다. 고은은 멍청하게 오상을 바라보았다. 오상의 연기가 너무 엉성하고 어색했다.
고은 옆에 있던 남자는 위기감을 느꼈다. 테이블을 치고는 말했다.
“여기 자리다 찼으니까 다른데 알아봐요.”
오상은 그를 신경조차 쓰지 않고 말했다.
“여기 의자 두 개 옮겨오면 되죠.”
오상은 채원에게 말했다.
“보스, 여기요. 여기 앉아요. 경치가 좋아요.”
경치가 좋긴 개뿔. 무대도 잘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무대 위의 아가씨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노래와 춤 보두 훌륭했지만 여기에서는 아무것도 감상할 수가 없었다.
오상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민첩하게 의자 두 개를 끌어왔다. 채원도 거절하지 않고 오상의 말대로 다가왔다.
고은은 채원을 보고는 예의상 머리를 까딱했다. 모르는 사람을 연기하는 게 지인을 연기하는 것보다 수월했다.
채원 옆의 여자도 따라왔다. 원래 테이블에 앉아 있던 네 명의 여자는 사로 쳐다보더니 기분이 언짢은 듯 자리를 떠났다. 이제 많이 여유로워졌다. 오상은 원래 채원을 고은의 옆에 앉히고 싶었지만 채원이 한 발 빨랐다. 그는 고은과 한자리 떨어진 곳에 앉았다. 채원 옆의 여자는 바로 고은의 옆자리에 앉았다. 고은은 여전히 의자에 기댄 채 무대만 뚫어지게 보았다.
오상은 고은의 맞은편에 앉아서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아가씨, 혼자 오셨어요?”
고은이 대답하기도 전에 고은 옆에 있던 남자가 대답했다.
“아뇨, 나랑 같이 왔는데요.”
이 남자는 아마 오상도 헌팅 하러 온 줄로 알고 있는 모양이다. 고은은 고개를 숙이고 웃으면서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오상은 잠시 멍해서는 고은과 채원을 번갈아 보았다.
채원은 고은을 보지 않고 역시나 무대만 보고 있었다. 무대에서 뭘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무대 위에 많은 사람들이 웃고 떠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