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은 이튿날 짐을 들고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갔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하품이 끊임없이 나왔다.
공항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항공편이 탑승을 시작한다는 안내방송이 들렸다. 오상은 그녀에게 비즈니스석을 예약해 줬다.
고은이 먼저 탑승을 했고 옆좌석의 사람은 아직 탑승하지 않았다. 고은은 짐을 먼저 내려놓고 좌석에 앉아 연신 하품을 했다.
곧 사람들이 탑승을 했지만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이 항공편에 승객이 많지 않아 보였다. 고은은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안대를 착용하고 잠을 청했다. 옆 사람이 언제 오는지 모르지만 사실 관심도 없었다.
스튜어디스가 밀차를 밀고 올 때까지 고은의 잠은 계속되었다. 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살짝 터치하고는 말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실례합니다, 손님. 혹시 마시고 싶으신 게 있으신가요?”
고은은 안대를 벗고 눈을 가늘게 뜨고 대답했다.
“콜라에 얼음 추가요. 감사합니다.”
스튜어디스가 잔에 따르고 옆 사람이 고은에게 건네줬다. 고은은 반사적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는 콜라를 한 모금 마셨을 때 옆 사람의 말이 들렸다.
“괜찮아요.”
익숙한 목소리에 고은은 행동을 멈췄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옆 사람을 보고는 표정이 굳어버렸다. 채원은 몇 초 동안 고은을 쳐다보고는 머리를 돌려 그의 옆에 앉은 오상을 보았다.
오상은 얼굴을 손바닥에 묻었다. 비행기에 올라타서부터 채원 옆 사람이 고은인 것을 발견한 뒤로 오상은 채원의 얼굴을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고은은 오상을 보면서 천천히 눈썹을 튕겼다. 오상은 두 사람을 등지고는 헤드폰을 끼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행동했다.
고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상이 예약해 준 티켓이야. 나도 몰라.”
채원은 짧게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의 태도는 너무나 냉담했다. 때문에 고은이 물어보고 싶은 건 입에 꺼내지도 못했다.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고은은 패드를 꺼내들고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고은은 드라마를 보는 취미가 없었다. 다만 무료함을 해소하기 위하여 코미디 쪽으로 다운로드해 놓았을 뿐.
하지만 드라마에 집중할 수가 없었고 고은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채원은 노트북을 보며 문서를 검토하고 있었다. 그는 안경을 끼고 있었으며 그 모습은 고은이 여태껏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고은은 곁눈질로 채원을 몇 번 보았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확실히 너무 잘생겼다. 채 씨 집안 남자들은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채원만이 그 외모가 특출났다. 때문에 고은이 첫눈에 반한 걸지도. 그녀 자신도 인정한다. 채원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얼굴에서부터 시작된 것을. 뒤에 가서는 아니었지만.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고은 자신도 잘 몰랐다.
어쨌든 이혼하지 않았을 때 고은은 채원을 보지 않더라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런 느낌은 다른 사람에게는 종래로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고은은 재빨리 시선을 거두고 자신을 나무랐다. 이혼까지 한 마당에 이런 생각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남자는 모든 게 다 좋지만 단 하나,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모든 게 다 안 좋은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고은은 패드를 내려놓고 다시 안대를 착용했다. 잠을 자지 않더라도 옆에 앉은 채원을 보고 싶지 않았다.
고은은 팔짱을 끼고 좌석 등받이에 기댔다. 잠시 후 채원이 안전벨트를 풀고 일어나는 기척이 느껴졌다. 고은은 안대를 들추고 몰래 채원을 보았다. 아마 화장실에 가는 모양이다.
고은은 다시 의자에 기댔다. 잠시 후 누군가 다가와 그녀의 팔을 툭툭 쳤다. 고은은 모른척하고 있었지만 그 누군가는 또다시 고은의 팔을 툭툭 쳤다. 고은은 눈살을 찌푸리고 안대를 벗어보니 채원이 아니라 옷차림이 멀끔한 모르는 남자였다.
그는 웃으며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고은은 멈칫하고는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남자는 웃으며 다정하게 말을 이었다.
“별일은 아니고요. 앉아 있다 보니 무료해서요, 그쪽도 혼자 심심하신 것 같은데 말동무나 하려고요.”
고은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분명히 자고 있었는데 어딜 봐서 무료하다는 거지...’
채원은 자리로 돌아왔지만 누군가 자신의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멈춰 섰다. 그 남자는 고은에게 헌팅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고은은 어벙해서 조금은 멍청해 보였다. 이렇게 티 나게 어필하고 있는데도 못 알아채면서 저번에 술집을 헌팅 하러 갔다니. 멍청하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