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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우연히 만나다

  • 고은은 이튿날 짐을 들고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갔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하품이 끊임없이 나왔다.
  • 공항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항공편이 탑승을 시작한다는 안내방송이 들렸다. 오상은 그녀에게 비즈니스석을 예약해 줬다.
  • 고은이 먼저 탑승을 했고 옆좌석의 사람은 아직 탑승하지 않았다. 고은은 짐을 먼저 내려놓고 좌석에 앉아 연신 하품을 했다.
  • 곧 사람들이 탑승을 했지만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이 항공편에 승객이 많지 않아 보였다. 고은은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안대를 착용하고 잠을 청했다. 옆 사람이 언제 오는지 모르지만 사실 관심도 없었다.
  • 스튜어디스가 밀차를 밀고 올 때까지 고은의 잠은 계속되었다. 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살짝 터치하고는 말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 “실례합니다, 손님. 혹시 마시고 싶으신 게 있으신가요?”
  • 고은은 안대를 벗고 눈을 가늘게 뜨고 대답했다.
  • “콜라에 얼음 추가요. 감사합니다.”
  • 스튜어디스가 잔에 따르고 옆 사람이 고은에게 건네줬다. 고은은 반사적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는 콜라를 한 모금 마셨을 때 옆 사람의 말이 들렸다.
  • “괜찮아요.”
  • 익숙한 목소리에 고은은 행동을 멈췄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옆 사람을 보고는 표정이 굳어버렸다. 채원은 몇 초 동안 고은을 쳐다보고는 머리를 돌려 그의 옆에 앉은 오상을 보았다.
  • 오상은 얼굴을 손바닥에 묻었다. 비행기에 올라타서부터 채원 옆 사람이 고은인 것을 발견한 뒤로 오상은 채원의 얼굴을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 고은은 오상을 보면서 천천히 눈썹을 튕겼다. 오상은 두 사람을 등지고는 헤드폰을 끼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행동했다.
  • 고은이 먼저 입을 열었다.
  • “오상이 예약해 준 티켓이야. 나도 몰라.”
  • 채원은 짧게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의 태도는 너무나 냉담했다. 때문에 고은이 물어보고 싶은 건 입에 꺼내지도 못했다.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고은은 패드를 꺼내들고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 고은은 드라마를 보는 취미가 없었다. 다만 무료함을 해소하기 위하여 코미디 쪽으로 다운로드해 놓았을 뿐.
  • 하지만 드라마에 집중할 수가 없었고 고은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채원은 노트북을 보며 문서를 검토하고 있었다. 그는 안경을 끼고 있었으며 그 모습은 고은이 여태껏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 고은은 곁눈질로 채원을 몇 번 보았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확실히 너무 잘생겼다. 채 씨 집안 남자들은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채원만이 그 외모가 특출났다. 때문에 고은이 첫눈에 반한 걸지도. 그녀 자신도 인정한다. 채원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얼굴에서부터 시작된 것을. 뒤에 가서는 아니었지만.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고은 자신도 잘 몰랐다.
  • 어쨌든 이혼하지 않았을 때 고은은 채원을 보지 않더라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런 느낌은 다른 사람에게는 종래로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 고은은 재빨리 시선을 거두고 자신을 나무랐다. 이혼까지 한 마당에 이런 생각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남자는 모든 게 다 좋지만 단 하나,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모든 게 다 안 좋은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 고은은 패드를 내려놓고 다시 안대를 착용했다. 잠을 자지 않더라도 옆에 앉은 채원을 보고 싶지 않았다.
  • 고은은 팔짱을 끼고 좌석 등받이에 기댔다. 잠시 후 채원이 안전벨트를 풀고 일어나는 기척이 느껴졌다. 고은은 안대를 들추고 몰래 채원을 보았다. 아마 화장실에 가는 모양이다.
  • 고은은 다시 의자에 기댔다. 잠시 후 누군가 다가와 그녀의 팔을 툭툭 쳤다. 고은은 모른척하고 있었지만 그 누군가는 또다시 고은의 팔을 툭툭 쳤다. 고은은 눈살을 찌푸리고 안대를 벗어보니 채원이 아니라 옷차림이 멀끔한 모르는 남자였다.
  • 그는 웃으며 말을 건넸다.
  • “안녕하세요.”
  • 고은은 멈칫하고는 물었다.
  • “무슨 일이시죠?”
  • 남자는 웃으며 다정하게 말을 이었다.
  • “별일은 아니고요. 앉아 있다 보니 무료해서요, 그쪽도 혼자 심심하신 것 같은데 말동무나 하려고요.”
  • 고은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 ‘분명히 자고 있었는데 어딜 봐서 무료하다는 거지...’
  • 채원은 자리로 돌아왔지만 누군가 자신의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멈춰 섰다. 그 남자는 고은에게 헌팅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 고은은 어벙해서 조금은 멍청해 보였다. 이렇게 티 나게 어필하고 있는데도 못 알아채면서 저번에 술집을 헌팅 하러 갔다니. 멍청하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