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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여자의 적은 여자

  • 고은은 바로 내려가지 않고 창가에 엎드려 해변가를 한참 바라보았다.
  • 그녀는 횃불 파티를 준비하는데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에 지금 내려가 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 고은은 폰으로 사진을 몇 장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업데이트했다. 사진 속의 그녀는 찬란하게 웃고 있었고 땋은 머리는 개구쟁이처럼 보였다. 가장 아름다운 나이기에 수려한 얼굴에 필터조차 필요 없었다.
  • 고은은 사진을 몇 번 보고는 폰을 꺼버렸다. 그녀는 알았다. 그녀의 인스타그램은 애초에 볼 사람이 없다는 것을. 친구도 없었고 팔로워는 채 씨 가문의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자신을 팔로우 하고 있는지도 미지수였다.
  • 고은이 창가에 엎드려 밖이 어두워질 때까지도 횃불 파티는 시작되지 않았다. 그제야 기지개를 켜며 여유 있게 밖으로 나갔다.
  • 해변가의 파티는 곧 시작된다. 호텔은 무대까지 만들었고 위에서는 남녀끼리 춤을 추고 있었다. 무대 아래에서 엄청난 함성이 들려왔다.
  • 부근의 해변에 의자와 테이블을 배치하고 위에는 각종 술과 디저트가 있었다.
  • 고은은 다가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테이블은 거의 만석이었지만 고은은 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앉을 자리를 찾았다. 호텔 직원이 고은을 발견하고는 바로 달려가 말했다.
  • “여사님, 혼자시면 이쪽으로 앉으세요.”
  • 그는 한 테이블을 가리켰다. 희귀하게도 네 명 모두 여자였다. 고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고마워요.”
  • 고은은 바로 가서 앉았다. 테이블에 있는 네 명은 일행으로 보였다. 서로 보고는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 한 명이 다가왔다. 그는 고은에게로 온 것이었다.
  • 술잔을 들고는 고은에게 말을 걸었다.
  • “안녕하세요, 실례가 안된다면 여기에 앉을게요.”
  • 고은은 고개를 돌려 보았다. 여자들은 모여 있었기에 고은의 옆은 자리가 비어 있었다. 고은은 눈썹을 튕기며 말했다.
  • “앉으세요.”
  • 남자는 앉아서 무대를 몇 번 보더니 고은에게 수작을 걸었다.
  • “혼자 오셨어요? 다른 분들과 이야기도 나누지 않던데.”
  • 고은은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 “네, 혼자 왔어요.”
  • 테이블의 여자들은 고은을 한번 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더군다나 예쁜 여자라면 공공의 적 아닌가.
  • 남자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 “나도 혼자 왔는데, 원래는 릴랙스하러 왔지만 횃불 파티도 하고 볼거리가 많네요.”
  • 고은은 말없이 무대만 보았다. 거리가 있었기에 사람들이 무슨 춤을 추는지 잘 보이지도 않았다.
  • 남자는 한참 생각하더니 또 고은에게 말을 걸었다.
  • “여기서 며칠 정도 있어요? 어차피 둘 다 혼자 왔는데, 함께 노실래요?”
  • 고은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고는 웃기만 했을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앞 테이블에 있던 폰이 울렸다. 고은이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오상이었다.
  • 아무 말도 없이 위치 공유를 보내왔다. 고은은 해 본 적이 없었고 위에 확인과 취소 버튼만 보다가 결국 확인 버튼을 눌렀다.
  • 그녀의 위치는 지도에서 천천히 반짝거렸다. 고은은 잘 몰랐기 때문에 폰 화면을 잠그고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 남자는 아직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 “제가 여행 가이드를 찾아봤는데 주위에 볼만한 장소가 몇 개 있더라고요. 같이 가보실래요?”
  • 고은은 술잔을 들고 말했다.
  • “마셔요.”
  • 남자는 말을 멈추고 같이 술잔을 들고는 고은의 잔과 부딪쳤다. 다 마시고는 바로 고은의 잔에 술을 따르며 물었다.
  • “몇 살이세요? 갇 졸업한 것 같은데, 졸업 여행이라도 하는 거예요?”
  • 고은은 천천히 눈썹을 튕기며 물었다.
  • “내가 학생 같아 보여요?”
  • 그녀의 웃을 듯 말 듯 한 얼굴에 보조개가 보일 듯 말 듯 하였다. 남자는 고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사랑에 빠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