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은 성빈과 함께 횃불 근처에서 놀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갔을 때엔 사람들은 가고 없었다.
고은은 상관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공복에 술을 몇 잔 마시고 고기까지 적지 않게 먹었으니 위가 불편했다. 고은은 주스를 마시고 위를 달래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성빈은 고기를 굽느라 땀으로 흠뻑 젖었다. 하지만 얼굴에는 항상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는 고은을 보면서 말했다.
“내일 날씨를 검색해 보았는데, 너무 덥지 않더라고요. 함께 놀래요? 제가 계획을 짜볼게요. 어때요?”
고은은 방금 전 채원이 앉았던 자리를 보면서 대답했다.
“봐서요.”
그녀는 내일 일을 생각할 기분이 아니었다. 무대에는 더 이상 공연이 없었다. 모든 사람이 횃불을 둘러싸고 노래하면서 춤을 췄다. 지금이 하이 라이트인듯 하다.
성빈은 그쪽으로 보고는 말을 꺼냈다.
“저쪽으로 가서 놀래요? 모두들 춤추고 있는데, 즐거워 보여요.”
고은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저는 여기서 쉬고 싶어요. 속이 조금 안 좋네요.”
속이 불편한 건 사실이다. 토하고 싶었다. 성빈은 조금 걱정이 되어 물었다.
“어디가 불편한데요?”
근처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불어왔다. 맛있는 냄새였지만 고은은 맡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성빈을 보며 대답했다.
“위병인 것 같아요. 호텔 카운터에서 위 약 좀 가져다주실 수 있으세요?”
고은의 안색은 확실히 안 좋았다. 횃불 옆에서 달아올랐던 홍조가 모두 사라지고 창백했다. 성빈은 바로 일어나서 대답했다.
“그래요, 금방 다녀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요.”
고은은 자리에 앉아 성빈이 일어나길 기다렸다가 천천히 일어났다. 그녀는 해변가를 따라 시끄러운 데를 벗어나며 걸었다. 한참 걸으니 고기를 굽는 냄새도 사라졌다. 해변가에는 큰 바위들이 있었고 그중 하나를 골라 앉았다.
해풍은 습했고 불어오자 조금 추워졌다. 그녀는 두 다리를 안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행지를 바꿀까 하고 생각했다. 계속하여 채원을 마주치니 마음 정리를 할 수가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자꾸 눈에 보이니 잊을 수가 없었다. 고은은 해변가가 조용해질 때까지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바위에서 일어나 호텔을 향해 걸었다.
몇 발자국 걷지 않아 뒤에서 누군가 달려오며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은 씨, 여기 있었네요.”
고은은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았지만 못 들은척했다. 오상은 기분이 나쁜 듯 계속 쫓아오며 말했다.
“뭘 못 들은척해요? 내 목소리 들은 거 다 알아요.”
고은은 고개를 돌려 오상을 보고는 오상의 뒤쪽을 살폈지만 채원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불쾌한 듯 물었다.
“당신 보스는 함께 안 왔어요?”
오상은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전 남편 말씀인가요? 먼저 갔어요. 나도 갈까 하다가 아가씨 혼자서 모르는 남자를 있는 게 위험해서 친히 찾으러 온 거예요.”
고은은 냉소적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해변가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위험할게 뭐가 있어요?”
오상은 고은과 함께 호텔 쪽으로 걸으면서 말했다.
“마음 정리하는 건 좋은데 속이 시커먼 사람들은 멀리하는 게 어때요? 아까 그 사람 눈빛을 보니 딱 봐도 좋은 사람은 아니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