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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네 발로 찾아온 거야

  • 고은은 어떻게 채원에게 끌려 술집을 나온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녀의 기억은 한바탕 토하고 난 뒤부터 있었다.
  • 토하고 나서 많이 개운해졌고 머리도 맑아졌다. 옆에 사람이 건네준 물로 입안을 헹구고 일어나서 말했다.
  • “아이고, 이제야 살 것 같네.”
  • 채원이 옆에 있었다. 그는 차에 기댄 채 담배에 불을 붙이고 옷깃의 단추 두 개를 풀었다. 그는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 “술 깼으면 어서 돌아가. 나도 갈 테니까.”
  • 밤공기는 조금 차가웠다. 채원의 몸도 많이 진정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불편함은 남아 있었다. 고은은 깜짝 놀랐다.
  • “채원 씨? 당신이 왜 여기 있어?”
  • 채원은 미간을 찌푸리며 담배를 한 모금 삼키고는 말했다.
  • “내가 아니었다면 너는 아마 웬 놈의 몸 아래에 깔려 있었을걸.”
  • 고은은 천천히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 그녀는 집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고은은 채원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 “너도 아까 술집에 있었지? 날 데리고 나온 거야?”
  • 채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기사더러 고은을 데려다주라고 할 예정이었지만 고은이 고주망태가 된 것을 보고 기사는 어쩔 도리를 몰라 했기 때문에 채원이 직접 데려다준 것이다.
  • 고은은 갑자기 마음이 괴로워졌다. 이 남자는 진짜 축배를 들러 술집에 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까 마셨던 술이 화로 인해 다시 취기가 올라왔다. 고은은 갑자기 웃으며 천천히 채원에게로 다가가 말했다.
  • “왜, 너도 가서 헌팅 했어?”
  • 채원은 포인트를 잡을 줄 알았다. 고은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 “너‘도’?”
  • 고은은 입꼬리를 올렸다. 짙은 화장을 한 그녀의 얼굴은 사람을 홀렸다. 채원의 재킷은 이미 벗어뒀다. 하얀 셔츠와 정장 바지만 입고 있었다. 고은은 여태껏 이렇게 대담했던 적은 없었다. 그녀는 머리를 숙이고 손을 내밀어 채원의 벨트를 잡았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 “내 헌팅은 네가 망쳐버렸어. 어떡할래?”
  • 고은은 말하면서 채원의 셔츠의 아랫깃을 빼냈다. 채원은 바로 고은의 손을 잡았다. 안색이 흐려졌고 아까 먹은 술의 취기가 올라왔다. 찬바람으로 인해 침체되었던 뜨거운 열기가 배로 되어 올라왔다.
  • 채원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고은을 바라보며 말했다.
  • “고은, 너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있어?”
  • 고은은 웃으며 답했다.
  • “당연하지, 넌 몰라?”
  • 채원은 한참 있다가 웃었다. 그는 채 못 태운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한 손을 들어 고은의 턱을 만지며 말했다.
  • “오늘 남자 찾으러 나간 거였어?”
  • 고은은 가까운 거리에서 채원을 보면서 아쉬움을 느꼈다. 그녀는 이 남자를 오랫동안 좋아해왔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니 이 남자는 도망쳐버렸다.
  • 그녀는 발꿈치를 들어 채원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는 말했다.
  • “그래, 아니면 거기 가서 뭘 하겠어?”
  • 고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채원은 허리를 숙여 고은을 안아들면서 말했다.
  • “잘 됐네. 네 발로 찾아온 거야.”
  • 고은은 앗 하고 소리를 지르며 채원의 목을 끌어안았다. 채원은 성큼성큼 집으로 향했다. 도어록은 지문으로 장금 해제하는 것이었는데 고은이 채원의 지문을 지우지 않아 다행이었다. 채원은 고은을 안은 채 지문 인식을 하고 집으로 들어섰다. 고은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고 어떻게 채원과 방으로 들어왔는지 과정을 기억하지 못했다.
  • 다만 관건적인 순간에 그녀는 채원을 몸으로 깔았다. 그러고는 물어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던 질문을 했다.
  • “채원 씨, 나랑 결혼하고 나서 나 배신한 적 있어?”
  • 채원은 누워서 눈을 내리깔고 약간은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 “아니.”
  • 고은은 만족한 듯 몸을 뉘었다. 다만 이런 쪽으로는 고은이 잘 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다행인 건 채원이 주도권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 오늘 갓 이혼을 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안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멈출 수가 없었다.
  • 고은은 취기 때문에 자신이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채원은 정신이 멀쩡했다. 그는 반듯하게 누워 어둠 속에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정신이 조금 피폐했다.
  • 한참 뒤 고은은 몸을 뒤척이며 여느 때와 같이 손으로 옆을 만져보고 채원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를 안고 다시 잠에 들었다.
  • 채원은 움직이지 않고 미간을 찌푸렸다.
  • 그는 한참 뒤 고은을 밀어내고는 일어나서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을 꺼냈다. 오상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 “왕기복을 조사해봐. 오늘 술집에 가져간 술에 뭐 탔나 알아봐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