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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오래전부터 이혼을 생각했어

  • 고은은 잠시 멈칫하다가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 “그다지 물어보고 싶지 않아. 아마 오래전부터 나와 이혼하고 싶었겠지. 난 알고 있었어.”
  • 때문에, 그녀는 오래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 혹은, 결혼할 때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혼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걸.
  • 하지만 이 모든 게 그녀의 생각보다 빨리 왔다. 채 씨 어르신이 돌아가신지 한 달 남짓이다. 백일도 되지 않았다. 채원은 참지 못한 것이다.
  • 채원은 의외의 대답에 잠시 멍했지만 피식 웃었다.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다.
  • 그래서 고은은 자신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 채원은 담배를 몇 모금 빨고는 절반 남은 담배를 옆에 있는 재떨이에 버렸다. 그는 이 화제를 계속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고은에게 물었다.
  •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이야?”
  • 고은은 눈을 깜박이며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 “계획? 아직은 없어. 일단은 그냥 돌아다니고 싶어.”
  • 채원과의 이혼이 조금 두려운 건 사실이다. 채원의 이혼당한 부인은 많은 사람들의 연민과 비웃음을 사겠지. 그중에도 그녀가 채원과 결혼 한 원인. 그것은 확실히 하찮은 것이었다. 그래. 하찮은 것.
  • 그녀는 액막이로 채 씨 집안에 시집을 왔다. 채 씨 어르신이 몸이 편찮으셨기에 채원을 압박하여 고은과 결혼을 강행했다.
  • 고은의 기억에 채원은 내키지 않아 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도덕과 정에 발목이 묶여 어쩔 수 없이 거절하지 못했다. 채원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고은과 결혼을 한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 증명해 주듯이 액막이는 어처구니없는 짓이었다.
  • 고은이 채원과 결혼하고 나서 어르신의 기분은 많이 좋아졌지만 몸은 결코 호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차일피일 미루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돌아가셨다.
  • 고은이 결혼하고 나서부터 이혼까지, 일 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 때문에 그녀는 남들이 자신을 어떤 표정과 눈빛으로 볼지 상상이 되었다. 어딘가로 피신해 있는 것이 더 나을 정도였다. 고은은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숙여 물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할아버지 백일 되는 날 나 다시 돌아올게.”
  • 채원은 무엇인가 생각하며 말했다.
  • “앞으로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오상을 찾아도 돼. 그가 도와줄 거야.”
  • 오상은 채원의 비서로서 채원과 수년간 함께 일했다. 일적으로, 혹은 가끔은 생활에서도 오상은 채원을 도왔다. 고은은 머리를 끄덕이며 거절하지 않았다.
  • “그래, 나 그럼 뻔뻔해질게.”
  • 음식이 다 나오고 고은은 체면 차릴 것도 없이 먼저 먹었다.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실 말할 것도 없었다.
  • 일 년도 안 되는 결혼생활 중 두 사람은 몇 마디 대화를 하지도 않았다. 밤에 불을 끄고 침대 위에서 뒹구는 것 빼고는 별다른 소통이 없었다.
  • 지금은 이혼까지 했으니 두 사람은 아예 소통할 거리가 없었다.
  • 채원은 몇 입 먹지 않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고은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배를 채웠다. 하지만 음식이 너무 많은 건 사실이다. 아까는 너무 충동적이었다.
  • 고은은 절반도 채 먹지 못하고 배가 불렀다. 그녀는 의자에 기댄 채 벨을 눌러 종업원을 불러서 테이블 위에 있는 음식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 “이것들 다 포장해 주세요.”
  • 오성급 호텔인 만큼 다들 체면을 차리는 사람들이다. 먹고 남은 음식을 포장해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종업원은 또 한 번 얼떨떨했다. 채원이 옆에서 거들었다.
  • “포장해 주세요.”
  • 종업원은 다시 한번 어색하게 답했다.
  •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 종업원이 포장을 준비하러 나갔을 때 채원은 고은을 뚫어지게 보았다. 고은은 불편했다.
  • “왜, 내가 창피해?”
  • 채원은 풋 웃으며 대답 대신 물었다.
  • “지금까지 못 물어본 게 있는데, 너는 왜 나랑 결혼한 거야?”
  • 고은은 눈을 깜박이며 대답했다.
  • “너 돈 많잖아.”
  • 채원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고은이 말을 이었다.
  • “하지만 나중에 알았는데, 너보다 돈 많은 사람 많더라고.”
  • 채원은 눈썹을 튕기며 말했다.
  • “그래서 흔쾌히 나랑 이혼한 거야?”
  • 고은은 웃을 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 종업원이 다가와 음식들을 포장했다. 고은은 포장된 음식들을 챙겨 채원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 채원은 일이 있다면서 고은에게 택시를 불러줬다. 고은은 차에 타고 창밖으로 채원에게 물었다.
  • “너는?”
  • 채원은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 “뭐가?”
  • 고은이 물었다.
  • “너는 나랑 왜 결혼했어?”
  • 채원은 고은을 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 “예뻐서.”
  • 고은이 웃기도 전에 말을 보탰다.
  • “하지만 알고 보니 너보다 예쁜 여자들은 많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