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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전남편

굿바이 전남편

추본미

Last update: 2021-11-26

제1화 이혼

  • 고은이 채원과 함께 법원에 이혼 수속을 하던 날은 마침 발렌타인데이였다.
  • 결혼 수속 카운터에는 길게 줄을 섰지만 이혼 수속 카운터에는 사람이 몇 없었다. 고은은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유감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 줄을 설 필요가 없으니 이것도 나름 괜찮다고, 날을 잘 잡았다고 생각하는 고은이었다.
  • 채원은 조금 늦었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고은은 그를 발견했다. 조금은 득의양양한 고은.
  • 비록 자신이 먼저 말을 꺼낸 이혼은 아니지만 집착하지도 않았고 지금 수속을 할 때에는 이토록 적극적이라니. 어떻게 봐도 고은은 부끄럽지 않았다.
  • 채원은 고은을 향해 걸오면서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 “언제 왔어?”
  • 고은은 웃으며 대답했다.
  • “반나절이나 됐어. 당신이 늦을 줄은 몰랐는데.”
  • 채원은 멈칫하다가 말했다.
  • “방금 임시로 미팅이 잡혀서 어쩔 수 없었어.”
  • 고은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가자, 카운터에 사람 얼마 없어.”
  • 이혼 합의서는 이미 두 사람 모두 사인을 마친 상태였다. 채원은 고은에게 인색하지 않았다. 돈도 충분히 주고 회사 주식도 일부분 넘겨 주었다. 부동산도 모두 그녀의 명의로 돌렸다. 두 사람 사이 아이가 없고 재산 분할에 의견이 없기 때문에 이혼은 아주 쉬웠다. 결혼증을 가져가고 이혼 증명서를 손에 받았다.
  • 고은은 한참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얼떨떨했다. 이렇게나 쉽게 이혼을 하다니. 결혼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몇 분 만에 수속이 끝났다. 다만 쉬운 결혼과 이혼과는 달리 사랑은 너무 힘들었다. 채원이 고은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고은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채원이 이혼을 말했을 때 잠시 멈칫하고는 수락한 것이다.
  •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잡아 놓고 있어 봐야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걸 고은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다.
  • 채원도 한동안 이혼 증명서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먼저 일어나 몸을 돌려 고은에게 말했다.
  • “점심인데, 같이 밥이나 먹자.”
  • 고은은 표정을 바꿔 웃으며 대답했다.
  • “그래, 마지막 만찬은 해야지.”
  • 채원은 고은을 빤히 보다가 뒤돌아 밖으로 걸었다.
  • 고은은 한숨을 내쉬고는 따라서 나섰다. 두 사람은 멀지 않은 곳의 오성급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얼마나 정식적인 이별 만찬인가.
  • 고은은 불편한 마음을 얼굴에 내비치진 못했지만 다른 방법은 있었다. 그녀는 메뉴를 받아들고는 가격표만 뚫어지게 보면서 말했다.
  • “네가 사는 거지?”
  • 채원은 고개를 숙이고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며 말했다.
  • “너한테 그렇게 많은 돈을 물려줬는데 이깟 밥도 따져?”
  • 고은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 “당연히 따져야지. 나는 일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어. 돈을 벌 수 있는 데가 없단 말이야. 당연히 아껴 써야지.”
  • 채원은 담배를 입에 물고는 말했다.
  • “너한테 준 주식 말이야. 매달 돈이 나와. 네가 쓰기에 충분해.”
  • 고은은 머리를 들어 채원을 보면서 대답했다.
  • “이 밥 네가 사는지만 대답해.”
  • 채원은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 “내가 살게.”
  • 말을 끝내고 눈썹을 튕기며 물었다.
  • “괜찮지?”
  • 담배를 물어본 것이었다. 고은의 시선은 채원이 입에 물고 있는 담배에 머물렀다. 채원은 한 번도 자신의 앞에서 담배를 피운 적이 없었다. 이 남자는 빨라도 너무 빨리 변했다. 방금 이혼했는데 이렇게 변하다니.
  • 고은은 다시 시선을 메뉴에 돌리며 대답했다.
  • “괜찮아.”
  • 말을 마치고는 종업원에게 주문을 내렸다.
  • “여기, 가장 비싼 거 다 주세요.”
  • 종업원은 얼떨떨해하며 물었다.
  • “이렇게 많이, 다요?”
  • 맞은켠에 앉은 채원은 라이터를 켜다가 고은이 주문한 것을 보지도 않고는 말했다.
  • “네, 전부 준비해 주세요.”
  • 종업원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 채원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게 한 모금 들이켜고는 천천히 연기를 내뿜었다. 고은을 한참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 “너 아직 나한테 안 물어봤어. 왜 이혼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