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은 말을 끝내고 고은을 한번 쳐다보고는 몸을 돌려 떠났다. 고은은 어색하게 웃으며 속으로 채원이 너무 쪼잔하다고 생각했다. 조금도 지려고 하지 않다니.
고은은 집으로 돌아갔다. 채원이 고은에게 남겨준 집이었다. 요즘 줄곧 여기에서 지냈다. 고품격의 인테리어지만 많이 허전했다. 고은은 포장해온 음식을 냉장고에 넣고 침실로 갔다. 침대에 누워 이혼 증명서를 꺼내들었다.
결혼 증명서의 사진 속 두 사람은 아무도 웃고 있지 않았다. 짜증이 섞인 표정이었다. 오늘 이혼 증명서 위의 그녀 혼자 찍은 사진엔 누구보다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녀가 결혼할 때 얼마나 기뻤고 오늘 이혼할 때는 또 얼마나 아쉬웠는지.
고은은 이혼 증명서를 얼굴에 덮었다. 빨개지는 눈시울을 증명서 아래에 감추고. 이렇게 하면 자신조차 속일 수 있다는 듯이.
고은은 오후까지 누워있다가 일어났다. 핸드폰으로 오상에게 문자를 보냈다. 바쁘냐고 물은 문자에 오상은 바로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오상은 물었다.
“진짜 이혼했어요?”
고은은 머리를 돌려 손에 들린 이혼 증명서를 보면서 대답했다.
“네. 이혼했어요. 증명서가 아직 따끈따끈한걸요. 찍어서 보여드릴까요?”
“됐네요.”
오상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둘 사이에 별다른 문제도 없는데 왜 이혼한 거예요?”
고은은 웃었다.
“내가 하자고 한 게 아니에요. 당신 사장한테 물어보세요.”
“제가 그럴 담이 어디 있어요”
오상은 재빨리 대답했다.
채원은 평소에 잘 웃지도 않았다. 비록 둘이 알고 지낸 시간은 수년이지만 오상은 아직도 채원이 조금 무서웠다.
고은은 사모님으로서 채원과 동등한 지위지만 오상은 가끔 고은과 잡담하면서 장난도 치곤했다. 그는 고은을 어려워하지도 않을뿐더러 은근 먹이는 말도 하고는 했다.
고은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용건이 있어요. 당신 사장이 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당신을 찾으라고 했거든요.”
이 문제는 오상의 전문이다.
“그래요, 뭐든 괜찮으니 말해봐요.”
고은은 답했다.
“나가서 돌아보고 싶어요. 혹시 갈만한 곳 좀 찾아봐 줄래요? 티켓과 호텔도 예약해 주시고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네요. 기간은 얼마든지 괜찮아요. 지금 나한테 시간과 돈이 넘치니까. 당신 사장이 나랑 이혼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위자료를 줬는지 아마 모를걸요?”
오상은 잠시 멈췄다가 물었다.
“어디든 괜찮은 건가요?”
“당연히 물 좋고 미남들이 많은 곳이면 좋겠죠. 설마 날 아무도 없는 야산에서 숙박하라고는 하지 않겠죠?”
고은은 못마땅한 듯이 말했다. 오상은 웃으며 답했다.
“알겠어요. 그럼 잘 찾아보고 예약해 둘게요.”
고은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용건을 끝내고 통화를 종료했다. 잠시 침대에 멍하니 있다가 일어났다.
점심을 너무 많이 먹은 탓인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 거실에 서서 남들은 이혼하고 나서 어떻게 마음속의 고민을 해결하는지 생각했다. 반나절이나 생각했지만 마땅히 생각나는 건 없었다.
그녀는 친인척들이 없었으며 지지해 주는 이 하나 없었다. 고은은 조금 의기소침해서 핸드폰으로 지식인에 물었다. 들려오는 대답은 그야말로 가지각색이었다. 그중에서 거나하게 취하는 것이 다른 어떤 황당한 것보다 현실성이 있었다.
비록 채원을 떠나 마음이 조금 괴로웠지만 타락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그럴 가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