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한밤중 노크하는 귀신
- 바깥이 잠시 조용해졌다.
- 이어서 문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 "소소야, 나야, 임영.”
-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끼쳤다.
- 임영?
- 바로 오늘 자살한 임영이 이런 밤에 내 문을 두드린다고?
- 나는 놀라서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 "장난치지 마."
- 나는 내 목소리가 될수록 덜 떨리도록 애를 썼다.
- "넌 대체 누구야?"
- 문밖에는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이어서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 "소소야, 왜 그래? 나야, 내가 문 좀 남겨달라고 했잖아, 잊었어?"
- 온몸의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 임영이는 지난달부터 남자친구를 사귀었는데 저녁 늦게 돌아오는 일이 자자하다보니 기숙사에서 제일 늦게 잘 버릇하는 나에게 그녀가 항상 문을 남겨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 뿐만 아니라 문밖의 이 목소리도 듣기엔 임영이랑 비슷했다.
- 모든 것이 합당해 보이지만 그게 제일 무서웠다! 임영이는 이미 죽었으니까!
- 나는 이불 속에 숨어서 오들오들 떨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할 틈도 없이 입구에서 기쁜 목소리가 들렸다.
- "어, 소소야, 문을 안 잠궜구나, 그럼 들어간다.”
- 나는 마치 얼음 창고로 떨어진 듯, 온몸에 오한이 났다.
- 오늘 난 확실히 문을 안 잠궜던것 같았다...
- 아직 내 자신의 소홀함을 원망하기도 전에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창밖의 달빛이 어둠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거기엔 흰 옷을 입고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비틀어진 여자가 기숙사 밖에 서있었다.
- 나는 아주 힘겹게 비명 지르려는 걸 참아냈다, 정말로 임영이였다!
- 임영이는 내가 낮에 본 시체랑 다름없었지만 유일하게 다른 건 그녀의 흰 치마 밑으로 발이 보이지 않았고 몸도 달빛에 비춰져 약간 몽롱했다.
- 그녀는 사람이 아니다.
- 귀신이였다.
- 임영이는 내가 놀란것을 눈치 못 챘는지 다만 자기 자리로 가서 앉아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이 모든 것이 그녀가 생전에 하던것과 똑같았다.
- 나는 침대 위에 뻣뻣하게 누워 몸을 계속 떨었다.
- 임영이는 마침내 나의 이상한 상태를 발견했는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 보았다.
- 그녀의 얼굴은 피범벅이였고 눈알 한 알이 눈에서 흘러나와 그대로 걸려있었기에 그녀의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듯이 입을 열었다.
- "소소야, 왜 날 계속 쳐다봐? 내 모습이 이상해?"
- ‘그래.’라는 말이 입밖으로 나올뻔했으나 간신히 참았다.
- 나는 묵묵히 심호흡을 몇 번 하고서야 비로소 내 자신을 차분하게 할수 있었다.
- 옛날에 귀신이야기에서 어떤 사람은 죽은 후에 영혼이 자신이 이미 죽은 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신의 일상생활을 계속 해나간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다. 임영이 지금 딱 그런것 처럼 보였다.
- 내가 궁금한 것은 임영이 분명 건물을 뛰어내려 자살 했다 하지 않았나? 자살한 사람도 자기가 죽었다는 걸 모를리가 있을까?
- 내가 막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을 때, 임영이 다기 입을 열었다.
- "홍하랑 방사장는? 왜 기숙사에 없어?"
- 난 임영이의 피범벅이 된 얼굴을 보며 애써 진정하며 말을 했다.
- “걔들은 오늘 일이 있어 집에 돌아갔어."
- 귀신이야기에서 말하기로는 이런 자신이 죽었다는걸 의식하지 못하는 귀신한테 갑자기 그가 죽었다는걸 알려주면 심성이 변해 어떤 미친 짓을 할줄도 모른다고 했다.
- 나는 감히 여기서 모험할 용기는 없었다.
- "오. "
- 임영이 대답하고는 내일 쓸려는 물건을 책가방에 넣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 나는 바르르 떨며 침대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나가려 했다.
- 임영이의 영혼이 잠시나마 위험성이 없지만 그녀는 꼭 시한폭탄같아 언제 폭발할줄 모르니 그녀와 한 방에 같이 있고 싶진 않았다.
- "소소,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디가?"
- 임영이의 침대는 바로 문 옆에 자리잡고 있어 내가 막 문을 열고 나가려던 참에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내게 물었다.
- 밖으로 흘러내린 눈동자가 흔들거렸고 이렇게 가까이서 나는 그녀의 팔뚝에 부러진 뼈까지 보였다.
- 나는 메스꺼움을 꾹 참고 대답했다.
- “전..전화 한통 할려구.”
- 나는 빠른 걸음으로 나가고 싶었으나 급히 가는 바람에 부주의로 임영이의 책상을 부딪혔다. 그녀의 책상 위에는 작은 거울이 하나 있는데, 그만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 "소소야 왜 그렇게 덤벙거려."
- 임영이가 원망하듯 한 마디 내 뱉은후 고개 숙여 거울을 주우려 하자 나는 갑자기 망했단걸 의식하고 손을 내밀어 거울을 뺏으려 했다.
- “안돼!”
- 그래도 내가 한발 늦어 버렸다.
- 임영이는 이미 거울을 스스로 주웠고 그녀가 거울을 드는 순간 거울엔 그녀의 피범벅인 얼굴이 비춰졌다.
- 그 순간 임영이의 비틀어진 몸이 굳어 버렸고 내 심장은 쿵쿵 뛰었다.
- 망했다.
- 당황한 나머지 나는 문고리를 만져 서둘러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임영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한손으로 내 팔을 움켜 쥐였다.
- 그녀의 손이 너무 차가워 나는 소름이 끼쳐 벗어나려 했지만 그녀의 험상궂은 얼굴이 갑자기 내 앞으로 달려왔다.
- 피비린내가 확 풍겨와서 구역질 나게 했다.
- “안소! 내가 왜!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어!"
- 임영이는 미친듯이 나에게 울부짖었고 그에 따라 그녀의 눈동자도 쉴 새 없이 흔들리더니 결국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 나는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다 발끝에 뭔가가 밟힌듯 삐걱 소리가 나서 고개를 숙여보니 머리 속이 쿵 하고 터지는 것만 같았다.
- 임영이가 땅으로 떨어트린 눈알을 내가 질퍽거릴 정도로 밟아 놓은 것이다..
- 자기 눈알이 저렇게 밟힌걸 본 임영이는 온몸을 더 세게 부들부들 떨었다.
- "안소! 네가 감히 내 눈동자를 짓뭉개버리다니! 죽여버릴거야! 죽여버릴거야!"
- 임영의 얼굴은 더 일그러지고 크게 소리 치더니 두 손이 재빠르게 다가와 나의 목을 졸랐다.
- 귀신 된 임영의 힘은 놀라울 정도로 셌고 나는 얼굴이 창백해지도록 조여 죽을힘을 다해 버둥거렸지만 여전히 그녀를 떨쳐버릴 수 없었다.
- 임영이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텅 비어있는 눈언저리는 피구멍같았고 남은 한쪽 눈동자 역시 피로 물들여져 새빨갷다.
- 나는 목이 졸려 눈앞이 캄캄해졌고 머리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 누가 날 좀 살려줘...
- 내 마음의 소리를 듣기라도 한건가 내가 기절하기 직전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내 뒤를 스쳤다.
- 순간 내 앞에 있던 임영이 극도로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더니 내 목을 졸랐던 손도 놓았다.
- 이 틈을 타서 나는 서둘러 그녀를 떨쳐버리고 막 문을 박차고 나가려 하던 때 어깨에 갑자기 차가운 느낌이 들어 나는 몸을 바르르 떨며 생각할 겨를도 없이 차가운 품에 넘어져 안겼다.
- "낭자, 이 서방님이 널 구하러 왔노라."
- 청량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내 귓가에 울려 나는 숨이 멎은듯 하여 고개를 획 돌려 보았다.
- 내 뒤엔 놀랍게도 한 사내가 서있었다.
- 그의 긴 머리는 먹처럼 검고 거멓고 어두운 가운을 걸쳐 있었으며 나보다 많이 높았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약간 창백해 보이는 낯빛과 숨 막힐 정도로 짙은 이목구비가 보였다. 검은 눈동자 호수처럼 깊었고 구멍이라도 뚫을 듯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 내 마음속에 거친 파도가 일었다.
- 이 남자는 누구지?
- 어떻게 갑자기 내 기숙사에 나타났지?
- 그리고 왜... 그의 낯이 좀 익은 것 같지?
- 나는 그 남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애써 기억을 더듬었다. 남자는 날 계속 쳐다보진 않고 시선을 돌려 내 앞의 임영을 보더니 검은 눈동자가 차가워 졌다.
- "꺼져.”
- 그의 얇은 입술에서 깔끔한 한 마디를 내뱉자 한기가 덮쳐오더니 임영이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황급히 문을 박차고 기숙사를 뛰쳐나갔다.
- 갑자기 텅 비어진 기숙사에 나와 저 조선시대 복장의 남자만 남았다.
- 내가 자꾸 그를 노려보니 그 남자 눈을 아래로 살짝 내리뜨고 얇은 입술을 벌리고 얼굴에 냉엄한 표정엔 어느 정도 놀음끼가 띄였다.
- "낭자, 그렇게 오래 봤는데 서방님의 용모는 맘에 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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