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안 가. 너랑 같이 있을래. 진욱아, 우리 도망갈까? 여기 떠나자. 왜? 왜 하필 그 여자야?”
한유라는 마지막에 울다가 완전히 지쳐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한씨 가문 사람이 도착했는데도 그녀는 가려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보다 못한 강진욱은 그녀를 안아서 내보냈다.
“잘 보살펴주세요.”
오늘 밤, 강진욱은 여러모로 두통이 확 몰려왔다.
그는 서재로 들어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파일을 뒤져보았다.
그는 자신이 한 일이 옳은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자료를 위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여자아이와 결혼까지 하다니.
“서로 이용하는 것뿐이야.”
이렇게 생각하니 그의 마음도 한결 수월해졌다.
이튿날 아침.
고예슬이 식탁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는데 누군가 물 한 바가지를 가져다 놓았다.
그녀는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위혜영은 그녀를 보며 비웃기 시작했다.
“역시 천한 가문에서 나온 사람이 다르긴 달라. 이것도 모르다니. 아무리 그래도 TV에서는 봤을 텐데. 설마 드라마도 볼 처지가 안 되나?”
누군가 자신을 비하해도 고예슬은 스스로 주먹을 꽉 잡으며 화를 억눌렀다. 참아야 한다.
곧이어 고예슬은 위혜영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면서 따라 배우기 시작했다.
위혜영은 보란 듯이 그녀에게 비하 발언을 했다.
“유라와 비하면 멀고도 멀었어. 어떻게 이런 아이를 고른 건지.”
강 시장은 곁에서 마른 기침을 하며 아내를 경고했다.
“예슬 씨는 그럴 일 없어. 당신이 가르쳐주면 되지. 다른 사람 얘기는 뭐하러 해?”
“난 뭐 말해도 안 돼요?”
위혜영은 맞은 편에 앉은 고예슬에게 좋은 기색을 한 번도 내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누가 내 아들한테 이런 여자를 소개해주면 나 그냥 보는 앞에서 죽어버릴 거예요.”
“그만 해!”
강 시장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는 아내의 말에 담긴 뜻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위혜영이 한 말은 강 회장과 자신이 강진욱에게 찾아준 아내가 별로라는 뜻 아닌가?
“당신은 진욱의 형수야. 진욱의 결혼에 끼어들 자격 없어.”
강 시장은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
강 회장이 천천히 걸어오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한잠 자고 나니 강 회장의 기분은 한결 좋아졌다. 그는 더 이상 어젯밤 고예슬의 일로 화가 나지 않았다.
그는 앉아서 고예슬의 빈 옆자리를 보며 물었다.
“예슬아, 진욱이는? 내려와서 밥 먹으라고 해.”
고예슬은 빈 옆자리를 보며 망설였다.
‘그가 집에 없다는 사실을 얘기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집사는 고예슬의 고충을 알아보고 대신 입을 열었다.
“둘째 도련님께서 어젯밤 집에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마도 회사로 간 것 같습니다.”
“뭐? 신혼 첫날밤에 회사는 무슨 회사야! 내가 잘 지켜보라고 했지? 왜 나한테 알리지 않았나? 내 뜻을 거역하는 건가?”
강 회장은 그 말을 듣고 대뜸 화를 냈다.
위혜영은 기세를 몰아 한마디 얹었다.
“싫어하는 사람 옆에 누워있을 바엔 도망치는 게 낫죠.”
강 시장은 더욱 화가 치밀어올랐다.
“당신은 좀 입 다물어.”
새신부는 입주 2일 만에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따돌림만 받고 있었다.
강 시장은 아내의 행위가 내키지 않아 그녀를 끌고 식탁을 떠났다.
강 회장은 화가 나서 상을 내리치며 말했다.
“강진욱 불러와, 지금 당장. 이젠 눈에 뵈는 게 없나 보군.”
“네, 어르신.”
안방으로 돌아온 강 시장은 아내의 손을 뿌리치고 그녀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당신이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아? 당신은 아무리 불만이 많아도 그저 진욱의 형수에 불과해. 그러니까 진욱의 결혼에 관해 간섭하지 마! 당신이 우리 아들에게 무슨 속셈을 갖고있는지 모른다고 생각하지 마. 강서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어 하든 다 강서의 선택이지 당신 선택 아니야. 강서 인생을 당신이 대한 정해줄 생각 하지 마.”
“당신 무슨 뜻이에요? 똑바로 말해봐요. 내가 무슨 속셈을 갖고 있다고 그래요! 강 시장, 내가 당신한테 시집온 지도 이젠 20년이에요. 고예슬은 나랑 상대도 안 돼요! 설마 당신 고예슬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