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화 양심의 가책을 느끼다

• 강진욱은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일부러 조심스럽게 걸었다. 그는 소파에 앉아 고예슬이 가족과 통화하는 것을 가만히 들었다.
• “남편? 저한테 얼마나 잘해주는데요. 원래 오늘 데리러 오기로 했는데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기 싫어서 그냥 먼저 온 거예요. 아버님도 엄청나게 잘해주세요. 완전 자상하시다니까요. 처음 이 집에 들어온 날 아버님께서 저를 엄청 챙겨줬어요. 막 불편한 것은 없냐. 지낼 만하냐. 이렇게 이것저것 물어봐 주시고 저한테 사람 몇 명 붙여주겠다고 하시는 걸 겨우 말렸지 뭐예요. 큰형님도 말만 차갑게 하시지 속은 따뜻한 사람 같아요. 이 집에 규칙이 좀 많은데 형님이 도와주셔서 얼마나 수월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제가 원래 좀 말을 잘 안 듣잖아요? 그래서 형님한테 가끔 한 소리 듣는데... 뭐, 괜찮아요. 형님 심정도 이해하는걸요. 아 그리고 아주버님은 자주 뵙지 못해서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인상은 좋으셨어요. 저는 잘 지내고 있으니까 이제 제 걱정은 그만 넣어두시고 언제 시간 되면 동생도 볼 겸 해외에 다녀오세요. 이제 며칠 뒤에 두 분 뵈러 집에 찾아갈게요.”
• 강진욱은 고예슬이 집안사람들을 쭉 소개하는 것을 듣고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수치심을 느꼈다. 곧 서른을 바라보는 남자가 이제 갓 스물이 된 어린애를 괴롭히기나 하고... 강진욱은 자신을 포함한 강씨 가문 모든 사람이 창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