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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갑작스러운 인연

  • ‘이 늙은이는 눈이 멀기라도 한 건가?’
  • 강 회장은 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 그는 고씨 가문이 딸을 시집보내기 싫어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하여 그는 고예슬을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 여기고 더욱더 고집했다.
  • “8월 15일이 좋을 것 같네요. 결혼식 날짜는 이날로 정합시다.”
  • 한 끼의 식사로는 강씨 가문의 생각을 바꾸지도 못했을뿐더러 되려 자기 자신을 무덤에 파묻는 격이 되어버렸다. 아예 결혼식 날짜까지 정해버리다니.
  • 고예슬은 얌전히 대답했다.
  • “갈게요, 시집.”
  • “예슬아...”
  • 고 부인은 딸이 원치 않는 결혼을 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 오늘 만나려던 목적이 바로 서로 얼굴을 익히기 위해서였는데 강씨 가문에서 온 사람은 강 회장과 강 시장 둘 뿐이었다.
  • 게다가 신랑 강진욱은 연락 두절된 상황이었다.
  • 고 회장은 딸아이의 처지가 안쓰러웠다.
  • “시집가지 마. 돌아가면 아빠가 이 결혼 취소시켜줄게.”
  • 그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딸이었다. 파릇파릇한 청춘을 즐길 나이에 자신보다 8살이나 많은 강진욱에게 시집가는 것도 억울할 텐데 존중도 받지 못하다니.
  • 강씨 가문이 회사를 빌미로 약점을 잡는다면 버리면 그만이었다.
  • 딸은 하나뿐이고, 딸의 행복은 평생 가도록 보장해주어야 한다.
  • 고 부인도 흥분하며 말했다.
  • “맞아요. 돈을 버는 것도 다 자식을 위한 일인데 지금은 되려 그 반대인 상황인 것 같네요. 제 딸의 행복을 돈과 바꿀 바엔 차라리 가지지 않겠어요.”
  • 고 회장과 고 부인은 강경한 태도로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다.
  • 고예슬은 깊이 감동한 나머지 눈시울을 붉혔다.
  • 하지만 어찌 부모님이 다년간 피땀 흘려 쌓아 올린 업적을 한순간에 포기하도록 가만히 둘 수 있겠는가? 다 포기한다면 동생은? 그녀는 혼자만 이기적일 수 없었다.
  • 강씨 그룹 대표사무실.
  • 대표사무실 안, 한 남자가 차가운 표정으로 파일을 체크하고 있었다. 멀리서도 그에게서 나는 냉랭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였다. 남자는 오관이 조각처럼 오밀조밀 잘 갖춰져 있었고 무엇보다 높은 콧대가 그의 준수함을 뽐냈다.
  • 아버지가 사무실에 들어오자 강진욱은 힐끗 확인만 하고는 계속 업무에 집중했다.
  • 강 회장은 소파에 앉은 뒤 통보를 내렸다.
  • “8월 15일이 네 결혼 날짜야.”
  • 싸인을 하고 있던 강진욱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 그는 얼어붙은 채로 고개를 들어 소파에 앉아있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 강 회장은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입에 갖다 대고 음미하며 말했다.
  • “네가 그동안 견지해온 걸 알아. 너의 엄마도 하늘에서 네가 지금까지 결혼하지 않고 버티는 모습을 보는 건 원치 않을 거야.”
  • 강 회장은 잠깐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 “결혼 날짜는 이미 정해졌어. 고씨 가문 딸이야. 고예슬이라고. 참 특이한 아이더구나. 올해 스무 살이고 아직 학생이야.”
  • “하, 스무 살이라고요? 차라리 강서한테 시집 보내세요.”
  • 강진욱은 생각도 거치지 않고 말을 뱉었다!
  • “이런 망할 놈!”
  • “강진욱! 네 아내가 될 사람이야! 네 마음대로 조카에게 보낸다고 보내질 일이 아니야!”
  • 강 회장은 매번 둘째 아들과 얘기할 때마다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 그는 말이나 업무 방면에서 늘 강 회장의 의도와 반대로 행동했다. 그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둘째 아들을 직접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 강진욱이 입을 열었다.
  • “그럼 그 아이가 누굴 정하는지 보고 결정할래요? 정한 사람에게 시집가는 걸로요.”
  • “강진욱!”
  • 강 회장은 또다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
  • “이번은 네가 함부로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예물도 이미 마련했으니 고씨 가문에 혼약을 제시할 준비나 해. 경고할게, 강진욱. 넌 죽더라도 이 결혼은 해야 해.”
  • 강진욱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차갑게 말을 뱉었다.
  • “싫습니다!”
  • 죽도록 반항하는 강진욱을 보며 강 회장은 최후의 수단을 꺼냈다.
  • “결혼만 하면 그녀에 관한 모든 진실을 알려줄게.”
  • 강진욱은 순간 놀랐다.
  • 그는 강 회장이 가리키는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 그는 실눈을 뜨며 물었다.
  • “아버지께서도 조사하고 계셨던 겁니까?”
  • 강 회장은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8월 15일이야, 결혼 날짜. 잘 준비하고 있어.”
  •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흘러 어느덧 결혼식 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