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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결혼 의무

  • 그는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비서에게 고씨 가문 매수건을 철회하라고 명령했다.
  • 강진욱은 자리에 일어서며 말했다.
  • “제가 잘해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마세요. 그럴 자격 없는 여자니까.”
  • 말을 마친 뒤 강진욱은 서재에서 나왔다.
  • 서재를 나서자마자 그는 벽에 기댄 채 그를 기다리고 있는 고예슬을 발견했다.
  • 고예슬도 그를 바라보았다. 눈동자에는 화와 인내가 뒤섞여 있었다.
  • 그는 가볍게 무시하고 자리를 떴다.
  • 고예슬은 그가 떠나자마자 서재로 걸어 들어갔다.
  • “강 회장님. 약속하셨잖아요. 제가 시집오면...”
  •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 회장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 “앞으로 이 일에 관해선 우리 가문 그 누구에게도 입 뻥끗하지 마. 고씨 가문 매수건은 이미 철회시켰어. 강진욱이 다시 그런 짓을 벌이는 일은 없을 거야.”
  • 그가 서재를 나가려고 하자 고예슬은 고집스럽게 그의 앞길을 막아섰다.
  • “말로만 하면 안 되시죠. 보증서 정도는 내주셔야죠.”
  • 이 말을 들은 집사도 깜짝 놀랐다. 이는 강 회장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 그 누구도 자신이 뱉은 말이 질타나 의혹을 받는 것을 원치 않아 한다. 게다가 그 사람이 지위 높은 강 회장이라면 더더욱 기분이 언짢을 것이다.
  • 조그마한 계집애가 그에게 보증서를 요구하다니. 강 회장은 순간 표정이 어두워졌다. 집사도 급한 마음에 말을 꺼냈다. 그는 어르신의 성격이 좋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에 혹여나 둘째 사모님에게 화를 냈다가 그대로 도망칠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 “둘째 사모님, 어르신께서는 하신 말씀을 그대로 따르는 분이십니다. 시간 지나면 자연스레 아시게 될 거예요. 어르신께서 고씨 가문을 지켜드린다고 하셨으면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할 겁니다. 보증서까지 만들어가면서 얼굴을 붉힐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이미 강씨 가문에 들어오신 이상 다 한 가족이니 서로 감정 상하는 일은 만들지 맙시다.”
  • 집사는 말을 마치면서 고예슬에게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 고예슬도 집사의 뜻을 이해하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 도리어 강 회장이 화를 못 이기고 서재를 박차고 나갔다.
  • 안방에 도착한 강 회장을 화를 내며 말했다.
  • “고예슬만 아니었어도 우리 강씨 가문에서 이런 며느리를 들이는 일은 없었을 거야.”
  • 집사는 서둘러 강 회장의 화를 가라앉히며 말했다.
  • “화 좀 푸세요. 둘째 사모님께서 아직 나이도 어리시고 성격이 직설적이시니까 그럽니다. 강씨 가문에 시집온 이유를 저희는 알고 있잖아요. 사모님 각도에서 생각하면 그렇게 행동하시는 이유가 이해는 가요. 어찌 됐든 간에 전에는 고씨 가문 아가씨셨잖아요. 둘째 도련님께서 고씨 가문을 매수하려니까 급한 마음에 그런 걸 거예요.”
  • 그의 말은 강 회장이 평정심을 되찾게 만들었다.
  • “사람 시켜서 두 사람 방 지키고 있으라고 해. 오늘 밤 또 다른 일을 벌이지 않게.”
  • “네.”
  • 고예슬은 자신이 강 회장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
  • ‘만약 뒤로 가면서 강 회장 기억력이 안 좋아져서 약속 안 지키면 어떡하지?’
  • 하지만 그녀는 강 회장을 다시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 걷고 있는데 아래층으로부터 싸움 소리가 들려왔다.
  • 그녀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아래층을 내려다보았다.
  • 강진욱이었다.
  • 그는 집 밖으로 나갈 계획이었다.
  • 집사와 강 시장이 다급히 그를 말리고 있었다.
  • “둘째 도련님, 오늘은 신혼 첫날밤입니다. 마땅히 둘째 사모님과 밤을 보내셔야 해요. 지금 나가신다면 신혼부부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
  • 집사는 조금 전 고용인들로부터 강진욱이 집을 나가려 한다는 제보를 받고 급히 달려나와 그의 앞길을 막았다.
  • 강 시장도 외출하려다가 때마침 그와 마주친 것이었다.
  • “진욱아, 이젠 너도 나이를 먹었으니 유치한 짓 좀 그만해. 고예슬 씨는 네가 맞이한 아내야. 넌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고. 오늘 네가 이대로 나간다면 제수씨가 내일 어떻게 우리 얼굴을 마주하겠어?”
  • “형, 난 내 결혼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어. 이건 형도 잘 아는 사실이잖아. 난 결혼 의무만 다하면 됐지 첫날밤까지 같이 보낼 의무는 없어. 내 앞길 막지 마. 어차피 못 막을 테지만.”
  • 강진욱이 돌아서서 갈 길을 가려고 하자 강 시장이 다시 그의 앞길을 막았다.
  • “제수씨가 2층에서 너 지켜보고 있어.”
  • 강진욱은 고개를 돌려 2층을 올려다보았다. 고예슬은 드레스를 입은 채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무시한 채 호기롭게 강씨 가문 본가를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