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예슬의 번호를 몰랐던 그는 주저 없이 휴대폰을 들었다. 아저씨라고 부르는 발랄한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강진욱은 이마를 찌푸리고 소리쳤다.
“고예슬!”
“에이~ 아저씨. 그쪽 아버지가 당신한테 할 말이 있대.”
이미 그는 본성을 드러냈고 말을 함부로 하는 강진욱을 똑같이 함부로 말하는 거로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 고예슬이 그에게 지어준 별명이었다.
하지만 강진욱은 이 별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다.
강진욱은 휴대폰을 꽉 쥐고 화를 참으며 말했다.
“고예슬, 다시 한번 말해봐.”
고예슬이 발랄한 목소리로 연달아 불렀다.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 세 번 불렀으니까 찾아올 테면 와봐.”
강진욱은 눈을 찌푸리고 침을 삼켰다.
‘이 여자 정말 똑똑해. 나를 화나게 해서 집에 들어가게 하려는 속셈이야.’
그는 기어코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강진욱은 침착한 척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잠시 후 고예슬의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아저씨, 화났어? 화낼 게 뭐 있어? 내 다리가 짧다고 놀린 것도 난 화내지 않았는데 왜 당신이 화를 내고 그래? 남자가 속이 좁다니까. 아저씨라고 한 게 뭐 잘못된 것도 아니고. 이 나이에 우리가 같이 밖에 나가면 정말 내 아빠로 본다니까. 아니면 조카라고 불러줘? 그래, 그렇게 원한다면 하는 수 없이 조카라고 불러줄게... 여보세요? 여보세요? 강진욱, 여보세요?”
전화는 또 끊어졌다.
고예슬은 휴대폰을 얼굴에서 떼고 잠겨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설마 이게 업계 최고인 사람의 마음이란 말이야? 마음이 이렇게 좁았어야 하겠어? 아저씨라고 하는 게 뭐 어때서, 이미 늙었는데. 전화를 계속해서 더 화나게 해야지.”
강진욱의 휴대폰이 또 한 번 울리자 고민도 없이 끊어버렸다.
고예슬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전화를 했지만 이번에는 연결조차 되지 않았다.
고예슬은 속으로 강진욱을 욕하고 있었다.
강씨 본가에 돌아간 그녀는 집에 놓여있는 휴대폰으로 강진욱에게 전화했다.
이때 강진욱은 금방 회의실에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집에서 걸려온 전화였기에 그는 아무런 고민 없이 휴대폰을 귀에 갖다 댔다. 역시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조카? 당신 아버지가 돌아와서 할 얘기가 있대. 돌아오지 않으면...”
뚜뚜뚜 신호음만 들려왔다.
그녀는 다시 한번 전화했다.
“고예슬, 너 죽을래?”
“강진욱, 네 와이프한테 무슨 말이야!”
며느리 혼자 거실에서 전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던 강 회장이 호통쳤다.
물어봤더니 자신 때문에 강진욱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아버님, 진욱 씨랑 할 얘기가 있어 보였는데 진욱 씨가 먼저 가서 다시 돌아오라고 말하려고 했어요.”
‘우리 며느리, 얼마나 착해.’
강 회장은 고예슬의 진심 어린 얼굴과 초롱초롱한 눈을 보니 이 며느리가 더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고예슬의 행동은 자신을 위해서란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확실히 강진욱에게 할 말이 있었다.
그래서 강 회장은 강진욱에게 전화했지만 들려오는 건 아들의 거침없는 욕설이었다.
그는 화가 나 호통쳤다.
“강진욱, 당장 돌아와서 고예슬한테 사과해!”
고예슬은 강 회장의 위엄에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그녀는 강진욱이 어떤 말을 했기에 강 회장이 이렇게 화를 내는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