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에게 제를 지내고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예슬은 무슨 생각이 났는지 갑자기 강진욱을 불러 세웠다.
“우리 얘기할래?”
“왜? 네 아버지가 이렇게 빨리 날 찾아?”
“우리 아빠?”
고예슬은 의아했다.
“우리 집이 왜?”
강진욱도 머리를 갸웃했다.
‘혹시 고 회장이 고예슬한테 자료에 관해 말하지 않았나?’
강진욱은 머리를 들고 물었다.
“나랑 뭘 얘기하려는 거야?”
“두 가지 일이야. 첫째, 우리 집에 갈 때 우리가 평범한 신혼부부인 척해야 해. 우리 엄마 아빠가 우리의 사이를 눈치채면 또 걱정하니까 그럴 일 만들지 마. 혹시 우리 부모님이 내가 요 며칠 네 집에서 있었던 일들을 알게 되면 꼭 이혼하라고 하실 거야. 이건 당신 아버지도 원하지 않고. 당신 아버지가 뭐로 당신을 협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집에서 이혼을 요구하면 당신도 난처해질 거야. 그리고 둘째, 분가해서 나가 살자. 난 형님이랑 같이 못 살아. 여기에 더 있으면 싸움이 더 크게 일어날 거야. 그리고 나가 살면 당신이 밤새 돌아오지 않아도, 나가서 성매매해서 잡혀도 난 와이프로서 경찰서에 가서 구해낼 거야. 그리고 또, 나가서 살면 난 나대로, 당신은 당신대로. 당신이 한유라 씨랑 몇 날 밤을 지새워도 난 상관하지 않을 거야. 필요할 땐 거짓말도 해줄 수 있어. 어때? 우리 둘한테 다 좋은 선택인 것 같은데?”
진욱은 눈을 찌푸리고 와이프를 훑어보았다.
“고예슬, 네가 뭔데 내가 네 요구를 들어줄 거라고 확신해?”
“내가 제기한 요구가 당신한테도 나쁘지 않으니까.”
그녀는 일부러 어깨를 펴고 말했다.
“생각할 시간을 줘?”
강진욱이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자 고예슬은 얼떨결에 뒷걸음을 쳤다.
“동의하면 하는 거지. 왜 나한테로 와?”
“넌 키가 작아서 나랑 요구 제기할 자격이 없어.”
“나...”
고예슬은 머리를 숙여 자기 다리를 보고 다시 남자를 바라보았다.
“거절하면 거절했지. 외모 공격은 왜 하는 거야!”
강진욱은 처음으로 고예슬 앞에서 맘 편히 웃었다. 어쩌면 고예슬과의 다툼에서 이겨야만 그는 그렇게 웃을 수 있었다.
진심에서 나온 웃음은 사람을 기쁘게 했다. 자신의 이상한 행동을 발견하고 강진욱은 다시 진지하게 변했다.
그는 기침하더니 재킷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이 더운 여름에 재킷이라니. 더워 어쩌나 보지. 또 한 번 내 다리가 짧다고 말해보기만 해봐.”
그녀는 멀어져 가는 강진욱의 뒤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앞에서 걸어가고 있던 강진욱은 이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집 밖을 나서려는데 집사가 앞을 막아섰다.
“둘째 도련님, 어르신께서 하실 말씀이 있답니다.”
“참으라고 해요.”
그는 말을 차갑게 내뱉었다.
그는 문을 세게 닫고 나갔지만 차에 탈 땐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는 쥐고 있던 슈트를 옆에 내려놓았다.
강 회장은 아들의 말을 전해 듣고 화가 났다.
“이런 망나니 같은 것!”
집사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열세 살 때부터 혼자 본가에서 나가 독립하면서 점점 아버지와의 의견 차이로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다. 두 사람은 혈연관계를 빼면 가장 서먹한 사이였다.
집사가 말했다.
“둘째 도련님 성격이 이러니 어쩔 수 없어요.”
그는 혼자가 편해져 옆에 다른 사람이 오는 걸 꺼렸다. 그는 남들의 관심도 가족의 따뜻함도 필요 없었다.
이런 관심이 그에겐 되레 짐이 될 수도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강 회장이지만 화가 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그의 아들이 왜 이렇게 변했는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쟤를 혼자 살게 하지 말았어야 했어.”
집사가 말했다.
“그때 그 일은 어르신 탓이 아니에요.”
강진욱이 회사로 출근하자 비서 실장이 달려왔다.
“대표님, 신혼여행도 없이 출근하셨어요?”
강진욱이 물었다.
“고씨 가문에서 연락 왔어?”
“아니요. 처가 회사를 정말 사들이려고요?”
비서 실장이 물었다.
‘왜 아무도 나한테 연락 안 하지?’
강진욱은 생각에 잠겼다.
‘이때쯤이면 고씨 가문에서 우리 집안에 자료를 요구해야 하는 게 아닌가? 자료 없이 그 열다섯 개 프로젝트를 어떻게 시작한다고.’
“고씨 가문에서 우리 집안 명의로 다른 회사로부터 원자재 구입한 적 있어?”
비서 실장이 머리를 흔들었다.
“대표님, 무슨 일이 알고 싶은지 알겠어요. 이게 바로 제가 말하려는 거예요. 이상한 게 고씨 가문에서 어제 그 열다섯 개 항목의 서류를 전부 돌려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