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또 뭐가 불만인 건데요?
- 허다은의 행동에 허영규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그런 그녀의 행동이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그녀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치기 시작했다.
- “허다은, 이 혼사는 너희 할아버지가 정하신 일이야. 네가 뭔데 네 맘대로 파혼하네 마네 하는 거냐.”
- 어른인 자신은 전혀 안중에도 없는 듯한 그녀의 행동에 허영규는 혈압이 솟구쳐 올랐다.
- ‘계집애가 보자 보자 하니까, 먼저는 오빠들의 말을 무시하더니, 이제는 아비인 나까지 안중에도 없다 이거군.’
- 대놓고 그가 보는 앞에서 혼인 서약서를 찢어버린다는 건 그의 체면을 짓밟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 “다은아, 그만하면 된 거 아니니? 오늘은 네 언니가 퇴원한 날인데 왜 이렇게 철없이 구는 거야. 너희 언니를 조금이라도 따라 배워서 우리 속 좀 그만 썩이면 안 돼?”
- 박주희가 위층에서 내려오며 허다은을 꾸짖었다. 그리다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허유라의 모습에 가슴이 아픈 듯 손을 뻗어 허유라를 끌어안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달래기 시작했다.
- “유라야, 넌 이제 막 퇴원했는데 너무 속상해하지 마. 몸에 무리가 갈 거야.”
- 이에 허유라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 그런 그녀의 모습에 박주희는 더 기분이 언짢았다.
-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온 가족이 잘만 지내고 있었는데 허다은이 돌아오기가 무섭게 이 난리가 벌어졌으니 말이다.
- 그녀는 자신의 친딸에게 도무지 애정이 가지 않았다. 심지어는 조금 싫은 것도 같았다.
- 허다은이 가는 곳마다 끊임없이 무언가 일이 생기니 누구라도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 허다은은 자신과 이목구비가 꽤나 닮아 있는 이 친엄마라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고요하던 마음이 또다시 일렁거리더니 이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파도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 그녀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으려 애썼다.
- 박주희의 질책을 다시금 마주하니 여전히 마음속에서 짙은 실망감이 밀려왔다.
-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죽어가던 순간의 장면이 눈앞에 스치고 지나갔다. 박주희의 마지막 한마디가 여전히 귓가에 울리는 것도 같았다.
- “네가 죽으면 너희 언니는 신장을 기증해 줄 사람이 생기는 거야.”
- 박주희의 친딸은 자신인데, 왜 자신은 영원히 그녀에게는 남인 것인지, 허다은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 허영훈이 조롱하듯 한마디 내뱉었다.
- “쟤가 만약 유라의 반만큼이라도 철이 들었다면 이런 짓도 하지 않았겠죠.”
- 허다은의 눈빛에 소경운은 마음이 복잡했다.
- 그녀는 전과는 어딘가 달랐다. 가족들의 질책에 그녀는 그렇듯 태연했다. 심지어 그녀는 잘 보이려고도 하지 않았다.
-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것인지, 허다은은 갑자기 강하게 나오고 있었다.
- 아무런 감정도 읽어낼 수 없는 그녀의 눈빛에 소경운은 왜인지 모르게 짜증이 치밀었다.
- 허영준이 허다은을 향해 코웃음쳤다.
- “허다은, 너 무슨 낯짝으로 아직 여기 서있는 거야? 네가 돌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게 다 좋았는데 네가 돌아오자마자 이 난리가 났다고. 미안하지도 않아?”
- 하지만 그런 그들의 질책에도 허다은에게는 이미 입씨름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 그녀는 정말로 지쳐있었고, 더는 이곳에 머물러 있으며 사람들의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았다.
- “네네, 여러분들 말이 다 맞아요. 언니가 제일 훌륭하고, 제일 철이 들었고, 저는 그냥 문제아예요. 됐죠? 그럼 전 당신들 한 가족의 화목한 시간을 방해하지 않고 이만 가볼게요.”
- 말을 마친 허다은은 이내 돌아서서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허영규가 그런 그녀를 불러 세웠다.
- 다른 이유가 아닌 오로지 자신의 체면을 다시 바로 세우기 위해서였다.
- 그는 이번에는 허다은이 너무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에 그녀를 호되게 혼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허다은, 오늘 이 일에 대해 확실하게 이야기하기 전에는 어디도 갈 생각 하지 마.”
- 화가 머리끝까지 난 허영규가 허다은을 불러 세웠다.
- 이에 고개를 돌린 허다은의 눈가는 조금 붉어져 있는 상태였다.
- 하지만 아무도 이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온통 신경이 허유라에게 쏠려있는 그들이 그녀의 생사를 신경 쓸 리가 없었다.
- “허 회장님께선 무슨 말이 듣고 싶으신 건데요? 다들 바라던 일 아닌가요? 소경운이 저와 파혼했으니 허유라는 이제 당당하게 소경운과 사귈 수 있게 됐잖아요. 그런데 당신들은 또 뭐가 불만인 건데요?”
- ‘이렇게 오래 실랑이를 벌인 목적이 그거 아니었어? 이제 내가 물러나겠다잖아. 그런데 왜 도리어 내 잘못이 된 건데?’
- 그런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허영규는 단 한 번도 허다은의 약혼을 물릴 생각이 없었다.
- 비록 한심하게 여기는 딸이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친딸이었기 때문이었다.
- 일부러 센 척하는 친딸의 모습에 그는 마음이 복잡했다. 뭐라 설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끝내는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 허다은의 얼굴에는 실망이 가득했다. 다시 돌아서던 순간 눈가에 걸려있던 눈물이 결국에는 버티지 못하고 흘러내렸다.
- 손등에 떨어진 눈물방울은 그토록 차갑기만 했다. 마치 지금 그녀의 마음처럼, 차갑다 못해 그 어떤 온도도 느껴지지 않았다.
- “다은아, 너 왜 그래? 누가 괴롭히기라도 했어?”
- 마당 입구 모퉁이에서 뜻밖에 막 집으로 돌아오던 허영인과 마주친 허다은은 몸을 돌려 힘껏 눈물을 닦아냈다.
- 그녀는 허 씨 집안의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나약한 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 하지만 허영인은 굳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무슨 일인지 알 것만 같았다. 허다은은 분명 또 집 안에 있는 사람과 충돌이 있었던 것일 터였다.
- 지금의 허다은은 전과는 달랐다. 더 이상 순종적인 여동생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허다은의 모습이 허영인은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아팠다.
- 이에 빠른 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간 그는 한숨을 한번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 “오빠랑 같이 집으로 돌아가자. 가서 어머니 아버지랑 큰형한테 잘못했다고 해. 어쨌든 우리 친여동생은 너야. 가족들도 분명 널 난처하게 만들지는 않을 거야. 내가 장담해.”
- 이에 허다은은 차갑게 웃으며 허영인을 바라보았다.
- “오빠도 내가 그런 거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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