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우의 품속에서 서린은 속으로 비명을 삼켰다. 서재우가 너무 세게 붙잡는 바람에 기절한 척 연기를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었다. 이 모든 것이 서연 때문이라는 생각에 서린은 이를 갈았다. 서연만 아니었다면, 다정한 오빠인 서재우가 자신을 이렇게 거칠게 다룰 리 없었다.
서연은 서재우의 굴욕적인 태도가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오만하기 짝이 없던 서재우가 ‘빌다’라는 표현을 입에 올린 것만으로도 이미 바닥에 머리를 박은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앞으로 서재우가 무릎을 꿇고 엉엉 울며 용서를 구하게 만들겠다고 서연은 다짐했다.
서재우의 차가 서씨 가문의 본가 앞에 멈춰 선 지 어느덧 삼십 분이 지났다.
"어머, 서연 아가씨! 다치신 거예요?"
집사가 급히 마중 나와 길을 터주었다.
"도련님, 마침 채 선생님께서 다섯째 도련님 진료를 마치신 참입니다."
집사의 태도는 어딘가 묘하게 익숙했다. 마치 이 집의 모든 사람이 서연의 존재를 애초에 잊고 있었던 것처럼, 형식적인 예의만 갖추고 있었다. 서연은 그런 기류에 개의치 않고 고개를 들어 맞은편 별장 2층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 남자가 정말로 그곳에 있었다. 넉넉한 환자복 차림에 이마에는 붕대를 감고, 오른손에는 깁스를 한 채였다. 휠체어에 깊이 기대어 있는 구란의 안색은 창백했다. 전생에서 죽어가던 모습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위태로워 보였다.
'어쩌다 저렇게 다친 걸까. 사라져 있던 동안 계속 해외에서 다리 치료를 받았던 걸까?'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서연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한 걸음씩, 아주 천천히 구란을 알아갈 생각이었다.
서연이 거실로 들어서자, 전담 의사인 채 의사가 서린의 상처를 살피고 있었다. 이미 의식을 되찾은 서린의 곁에는 서 회장 부부와 서재우가 호위하듯 서 있었다. 참으로 우스운 광경이었다. 잃어버린 친딸이 십수 년 만에 돌아오는 날인데, 반겨주는 이 하나 없이 가짜 딸의 상처에만 온 신경이 쏠려 있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채 의사가 담담하게 진단 결과를 내놓았다.
"서린 아가씨의 상처는 심하지 않습니다. 가벼운 찰과상일 뿐이고, 잠시 놀라서 기절하셨던 것 같습니다.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서연은 채 의사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서가의 전담 의사이자 병약한 다섯째 서재성만을 돌보던 남자. 전생에서 돈에 매수되어 서연의 상처에 소독약 대신 소금물을 발라 고통을 주었던 인간이었다. 그를 향한 복수 또한 서연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다.
"가벼운 찰과상이라고요? 서린이는 방금 기절까지 했단 말입니다!"
서재우가 분노를 터뜨리자 서린이 기다렸다는 듯 가냘픈 목소리로 가로막았다.
"오빠, 채 선생님 탓하지 마세요. 제가 계단에서 떨어지면서 머리를 부딪친 거예요."
서린은 말을 끝내자마자 급히 입을 막았다. 마치 실수로 진실을 흘린 것처럼 교묘한 연기였다. 어머니인 임 여사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계단에서 떨어졌다고? 그게 무슨 말이니?" "아, 아니에요. 제가 혼자 실수한 거예요. 서연 언니랑은 전혀 상관없어요."
황급히 고개를 저으면서도 서린의 시선은 은근슬쩍 뒤쪽에 서 있는 서연을 향했다. 그제야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서연에게 꽂혔다.
"네가…… 서연이구나?"
서 회장은 십수 년 만에 만나는 친딸을 마치 물건 품평하듯 훑어보았다. 하얀 피부와 또렷한 이목구비는 서씨 가문의 아들들과 꼭 빼닮아 있었다. 임 여사가 무심한 말투로 서연을 쏘아붙였다.
서린은 형식적으로 서재우의 팔을 붙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서재우는 이를 악물며 임 여사에게 호소했다.
"서린, 너는 너무 착해서 늘 당하는 거야. 내가 분명히 봤어. 서연, 당장 무릎 꿇어!"
임 여사의 날카로운 명령에도 서연은 태연하게 되물었다.
"당신이 누군데요?" "네 어미다!" "아."
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갑게 대꾸했다.
"서린이 말하던, 제 신장 떼서 다섯째 아들 살리려 했다는 그 어머니요?"
서연은 임 여사를 위아래로 훑었다. 마치 시장에서 고기 값어치를 재는 듯한 시선이었다.
"누가 그런 망발을 해!"
임 여사는 소리를 질렀지만 가슴 한구석이 덜컥 내려앉았다. 서연의 말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다섯째 서재성은 어려서부터 병약했고, 최근 신장이 완전히 망가져 이식이 절실했다. 적임자를 찾지 못해 고민하던 중, 잃어버린 막내딸 서연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내심 쾌재를 불렀던 터였다. 이는 아들들 중 몇 명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방금 말했잖아요. 서린이 직접 제게 말해줬다고."
서연은 담담한 목소리로 폭탄을 던졌다.
"제가 이유 없이 사람을 발로 찼겠어요? 서린이 그러더군요. 이 집안 사람들 전부 짐승만도 못하고, 제대로 된 인간은 하나도 없다고요. 서가는 뼈까지 뜯어먹는 늑대 소굴이니까 절대 돌아오지 말라고 제게 경고하더라고요. 말이 너무 더러워서 참다못해 한 번 밀었을 뿐이에요. 덕분에 억울한 마음은 조금 풀리셨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