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곧 아니게 될 거야
- 허다은은 다시 한번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 “언니가 가정부 아주머니가 하신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거든요. 못 먹어주겠다면서 제가 한 음식만 먹어요. 집에서 밥이라도 한 끼 얻어먹으려면 서러워도 해달라는 대로 해줘야지 어쩌겠어요.”
- 전에만 해도 허다은은 자신의 음식솜씨가 좋아서 허유라가 그렇게까지 까탈을 부리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 매번 식사할 때마다 허유라는 그녀의 음식솜씨가 좋다면서, 그녀가 만든 요리를 가장 좋아한다고 칭찬을 해댔기 때문이었다.
- 쏟아지는 칭찬에 제대로 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 허유라는 일부러 그녀를 시종처럼 부려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놓고 뒤에서는 멍청했던 그녀를 얼마나 비웃어댔을지 모를 일이었다.
- 급히 떠나가는 허다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주머니들은 탄식을 금치 못했다. 정말이지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 그들은 허 씨 가문의 친딸이 그렇듯 시종보다도 더 못한 생활을 하고 있었을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 정말이지 불쌍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비록 허 씨 집안 사람들이 한 짓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들은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 바로 허다은의 모든 불행은 허유라로 인한 것이라는 것.
- ‘그 양녀, 평소에 봤을 때는 굉장히 얌전하고 참한 줄 알았는데, 뒤로는 심보가 그렇게나 고약할 줄은 몰랐네. 정말이지 겉만 보고는 모른다니까!’
- 허 씨 가문 저택의 큰 마당에는 여러 종류의 화초들이 심어져 있었다.
- 그중에는 월계수 나무도 몇 그루 있었는데, 먼 곳에서부터 퍼져오는 꽃내음에 마음까지도 몽글몽글해지는 것 같았다.
- 거실로 들어서자 온 집안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선물을 풀어보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그 화기애애한 모습은 차마 방해하기도 죄송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워 보였다.
- 이에 허다은은 거실을 돌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눈썰미 좋은 허유라가 그런 그녀를 발견하고는 그녀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더니 친근하게 허다은의 손을 잡으며 기분 나쁘게 웃어 보였다.
- “돌아왔구나, 다은아. 오늘 집에 손님이 오셨어. 아빠가 우리 둘의 퇴원을 축하하려고 장도 잔뜩 봐오셨어. 요리 솜씨는 네가 가장 좋잖아. 난 네가 만든 음식을 가장 좋아한단 말이야.”
- 그제야 허다은의 존재를 눈치챈 사람들은 허다은과 가까이 있는 허유라의 모습에 다들 눈살을 찌푸리며 표정을 구겼다.
- 허영훈이 가장 먼저 다가와 경계하듯 허다은을 한번 쳐다보고는 허유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 “유라야, 얼른 오빠 쪽으로 와. 네가 어쩌다 다치게 됐는지 잊었어? 다은이를 멀리하라고 했잖아. 쟤는 널 해칠 거라고.”
- “오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그 일은 분명 다은이가 한 게 아닐 거야…”
- 하지만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허영근이 불쑥 끼어들었다,
- “쟤가 한 건 아니지. 쟤가 양아치들을 시켜 널 괴롭히도록 한 거지. 쟤를 대신해 변명하지 마, 유라야. 넌 너무 착해. 그러니까 허다은이 널 그렇게 괴롭히는 거야.”
- 허다은은 이렇듯 재밌는 광경을 지켜보며 그 어떤 설명도,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조용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 허영준이 걸어와 종이와 펜을 허다은에게 건네며 말했다.
- “허다은, 이왕 돌아왔으니 얼른 유라한테 사과하고 반성문 써. 잘못을 했으면 뉘우치는 모습이라도 보이라고.”
- 눈앞으로 내밀어진 종이와 펜을 보며 허다은은 분노로 인해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 이에 그녀는 종이를 건네받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내밀어진 펜 역시 그녀에 의해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 허다은이 그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지, 허영준은 화가 잔뜩 난 듯 보였다.
- “허다은, 너 이게 또 무슨 미친 짓이야?”
- 이에 허다은은 자신의 손을 빼내며 입을 열었다. 그녀는 빙빙 돌려 말하지 않았다.
-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문을 쓰는 일은 없을 거야.”
- 그 말에 현장에 있던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 그러던 그때, 허영준의 뒤에서 흰 셔츠를 입은 훤칠한 남자 하나가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 이에 허다은은 시선을 들어 그 남자, 그러니까 그녀의 명의상의 약혼자인 소경운을 쳐다보았다.
- ‘허유라 대신 복수하러 온 건가? 쯧, 애틋하기도 하지!’
- “허다은 너 유라를 해치려고 정말이지 못하는 짓이 없네. 이런다고 네가 한 짓을 덮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 그 어떤 따듯한 말 한마디 없이 소경운은 그녀에게 다가가 곧장 질책을 쏟아부었다.
- 그는 자신이 그렇게 하면 허다은이 꼬리를 내리고 예전처럼 얌전히 허유라에게 사과하고 반성문을 쓸 것이라고 생각했다.
- 그런 그의 뼛속까지 비겁한 성격은 도저히 좋아해 줄래야 좋아해 줄 수가 없었다.
- 하지만 소경운이 잊고 있는 것이 있었다. 허다은이 바로 방금 전 사과하기를 거절하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 종이를 찢어버리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처럼 그들의 말은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
- 소경운을 바라보는 허다은의 눈빛에 조롱이 스쳤다.
- 예전의 그녀는 진심으로 그를 많이 좋아했었다. 이 점잖아 보이는, 봄바람같이 따듯한 미소를 가진 남자를 말이다.
- 그녀는 매일 같이 그의 주변을 맴돌았고, 그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 믿었으며, 단 한 번도 그의 말에 그 어떤 반박을 했던 적이 없었다.
- 그리고 소경운 역시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이 얌전하기 그지없는 약혼녀를 꽤나 잘 챙겼었다.
- 그런 있는 듯 없는 듯한 마음이 허다은을 더 그의 다정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었었다.
- 하지만 언제부터 이 남자는 그녀를 극도로 혐오하게 된 것일까?
- 언제부터 이 남자에게는 예전의 반만치의 다정함조차 남지 않은 채 오로지 그녀를 향한 끝없는 질책만 남게 된 것일까?
- “경운 오빠, 다은이한테 그러지 마. 다은이는 오빠 약혼녀잖아. 다은이한테도 사정이 있었겠지. 이런 일이 생겨서 다은이도 분명 엄청 속상할 거야.”
- 허유라가 나서서 허다은을 감쌌다. 소경운을 바라보는 그녀의 맑은 두 눈에는 그의 행동에 대한 의문과 함께 약간의 질책마저도 담겨있었다.
- 그런 그녀의 말에 소경운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 “곧 아니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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