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보채는 아이 밥 한술 더 준다
-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 봐주지 않을 것이다. 허다은이 성모 마리아는 아니기 때문에 허유라의 체면 같은 건 절대 살려주지 않을 것이다.
- 그녀의 말을 들은 양소정도 멍해졌다. 늘 좋은 일만 얘기하던 허다은이었기 때문에 그런 방에서 지내는 줄은 꿈에도 몰랐고 순간 허 씨 가문이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허다은의 말은 의심할 것도 없이 허유라의 체면을 깎아내렸고 그녀의 말에 허유라를 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 허다은이 사람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던 허유라는 얼굴이 화끈해졌다.
- 게다가 언니가 아니라 아가씨라고 하다니, 이건 허 씨 가문과 관계를 끊겠다는 게 분명했다.
- “다은아, 지금 너한테 못 해준다고 부모님을 탓하시는 거야? 힘들게 돈 버시는데 우리가 이해해 줘야지 이렇게 욕심을 부려서는 안 돼. 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가 바꿔줄게.”
- 허유라는 언니처럼 허다은을 타일렀고 너무 다정한 말투여서 거절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척 연기하는 꼴이라니, 허다은은 너무 감동스러워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
- 그녀는 전생에 바로 이 겉과 속이 다른 얼굴에 속아 그녀를 위해 목숨까지 바쳤었다.
- 허다은은 살짝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 “그래, 그럼 말만 하지 말고 지금 당장 바꿔. 그리고 그때 가서 오빠들한테 내가 네 방 뺏었다고 질질 짜지 말고.”
- 그녀의 말에 허유라의 낯빛이 변하더니 멍하니 허다은을 바라봤고 이내 아름다운 눈망울에 눈물이 맺혔다.
- 허다은이 이런 말을 내뱉을 줄은 생각지 못한 모양이다.
- “다은아, 너… 알았어, 네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이따가 돌아가서 바로 옮길게.”
- 허유라는 억울한 듯 말했고 그녀 옆에 서있던 친구는 더 이상 이 상황을 지켜볼 수가 없었는지 화를 내며 말했다.
- “허다은, 적당히 해. 다른 사람의 방을 빼앗고도 어떻게 이렇게 당당할 수가 있어? 너 정말 못 됐다!”
- 보채는 아이 밥 한술 더 준다고 허다은은 이제 이런 상황이 너무 익숙하다 못해 지긋지긋했다.
- 허유라 친구의 말에 허다은은 단도직입적으로 대꾸했다.
- “네가 직접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 난 그 방에서 3년 넘게 지냈어. 그런데 왜 허유라는 안 된다는 거야? 허유라는 태어날 때부터 고귀해서 공주 방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거야?”
- 그녀의 말에 하얗게 질린 허유라가 다급히 말했다.
- “다은아, 내가 몸이 좋지 않아서 부모님이 유독 신경 써 주시는 거야…”
- “됐어! 양보하기 싫으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 허다은은 허유라에게 망설일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 그녀의 입을 막아버리고는 양소정을 끌고 가버렸다.
- 빨개진 눈으로 그런 그녀를 쳐다보는 허유라는 너무 가여운 모습이어서 보기만 해도 동정심이 들 지경이었다.
- 허유라의 말을 돌이켜 보면 이건 자기가 허다은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자발적으로 준 것이기에 그녀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 것이다.
- 정말 뛰어난 화술이다. 이대로 계속 그녀를 몰아붙였다간 연약한 환자를 괴롭히는 사람이 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 양소정은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녀는 외동딸이었기에 집안의 사촌 오빠들은 다 그녀를 애지중지했다. 그런데 친딸을 두고 입양한 딸만 아끼다니, 그녀는 이런 집안을 처음 봤다.
- 양소정은 가려고 하지 않았고 당장이라도 소매를 걷어 올리고 달려가 싸울 기세로 소리쳤다.
- “허유라, 가식 좀 떨지 마. 다은이가 친딸인데 네 방이라는 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네가 뻔뻔스럽게 안 나가고 다은이 것들을 차지하고 있는 거잖아. 그리고 뻔뻔스럽게 울기까지 해? 내가 네 체면을 너무 봐줬지…”
- 그녀의 말에 허유라는 눈썹을 살짝 찡그렸고 놀란 듯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 “유라야, 괜찮아?”
- “유라야, 정신 좀 차려 봐. 빨리 119에 신고해!”
- 허유라의 친구가 비명을 지르자 사람들이 몰려왔고 그 사람들은 순간 분노와 질책이 담긴 눈빛으로 허다은과 양소정을 쳐다봤다.
- 양소정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그녀는 허유라와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 허유라가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었다니, 허 씨 가문 사람들도 아마 그녀의 이런 겉모습에 속았을 것이다.
- 또 같은 수작을 부리는 허유라에게 짜증이 난 허다은은 휴대폰을 꺼내 차가운 목소리로 119에 신고했다.
- “여보세요, 119죠? 여기 사람이 쓰러져서 빨리 와주셔야 할 것 같아요. 한시라도 지체하면 죽을 것 같은 모습이에요. 여기 주소가…”
- 말을 마친 허다은은 전화를 끊은 후 의아한 사람들의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양소정을 데리고 떠났다.
- 허유라가 쓰러진 척 연기를 하겠다고 하니 확실하게 맞춰줄 것이다!
- 예전에도 똑같았다.
- 허다은은 그냥 가만히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녀가 허유라를 괴롭히고 허유라의 물건을 빼앗는다고 오해했다.
- 허유라는 연약하고 고귀한 백조였고 그녀는 더럽고 악랄하기 그지없는 미운 오리였다.
- 허다은에게 끌려 교실로 돌아온 양소정은 빵빵해진 얼굴에 두 주먹을 꽉 쥐고 화가 잔뜩 나서 말했다.
- “다은아, 네 언니 확실히 알겠어. 그 순진한 얼굴에 이런 수를 쓰다니, 아마 그보다 더 뻔뻔한 사람은 없을 거야.”
- 양소정은 집에서 외동딸이자 막내였기에 위로 사촌 언니 오빠들이 많았다. 그녀가 생각하는 언니 오빠들은 동생을 보호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허유라의 모든 행동들은 양소정의 인생 관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 만약 두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아마 믿기 힘들었을 것이다.
- 양소정의 말에 허다은은 웃으며 말했다.
- “기분 나쁜 얘기는 그만하자. 사람과 개는 차이가 있으니까. 안 그래?”
- 다만 허다은은 더 이상 이 문제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있고 싶었다.
- 그녀의 말에 양소정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지만 이내 주저하며 물었다.
- “다은아, 가족들이 이렇게 편애가 심한데 속상하지 않아?”
- 양소정의 말에 허다은의 짙은 속눈썹이 살짝 떨렸지만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 “이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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