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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안식처

  • 유은정은 이유도 없이 도둑으로 몰린 것도 모자라, 뺨까지 맞았다. 이 굴욕을 참을 수는 없었다.
  • 하지만 보안 요원을 상대로 어떻게 맞설 수 있단 말인가?
  • “퍽.”
  • 보안 요원은 발을 들어 그녀의 배를 거칠게 걷어찼다.
  • 유은정은 배를 움켜쥐며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 “일어나.”
  • 보안 요원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유은정의 어깨를 거칠게 붙잡아 끌고 가려 했다.
  • “잠깐만... 전화를 걸게. 이 카드의 주인을 부를 수 있어.”
  • 유은정은 힘없이 말했다. 방금 발길질을 당한 충격으로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 그녀의 말을 듣고 보안 요원과 옆에 있던 젊은 여자의 얼굴에 잠깐 놀라움이 스쳤다. 그러나 곧 다시 냉소가 번졌다.
  • 둘 다 유은정이 정말로 카드 주인을 부를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 “좋아, 어디 한번 봐보자고. 당신이 그 카드 주인을 어떻게 부른다는 건지.”
  • 젊은 여자는 비웃으며 말했다. 속으로는 다른 생각이 들고 있었다.
  • ‘저 여자가 누군가를 부른다면 그 사람까지 잡아서 공을 세우면 되겠지. 오늘 운이 참 좋네.’
  • 그 시각, 마트 안에서는 이휘도가 임유비와 함께 카트를 밀며 생활용품을 고르고 있었다.
  • “아까 막 돌아왔다고 했잖아요. 어디서 온 거예요?”
  • 장을 보는 중에 임유비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 “해외에서.”
  • 이휘도는 미소를 지으며 짧게 대답했다.
  • “몇 년 동안 해외를 떠돌다가 이제야 돌아왔어요.”
  • “해외에서는 잘 안 풀렸어요? 왜 다시 돌아오려고 한 거예요?”
  • 임유비는 궁금했다. 그녀의 친구들 중 대부분은 해외에서 잘 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돌아오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 순간, 이휘도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 15년 전, 스승을 따라 해외로 나간 후 그의 삶은 고된 훈련과 끝없는 살육의 연속이었다. 그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쳤지만, 그것은 이휘도가 원했던 삶이 아니었다.
  • 이제 그는 살육에 지쳐버렸다. 그래서 돌아온 것이다.
  • 이번 귀국의 목적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었다. 그는 은혜를 갚고, 마음의 안식을 찾고 싶었다. 그 안식처는 다름 아닌 임유비였다.
  • 그녀는 오랜 세월 동안 그의 마음속에서 따뜻한 항구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이휘도는 돌아오자마자 가장 먼저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
  • 임유비와 함께 있는 지금, 이휘도는 오랜만에 찾아온 평온함을 느끼고 있었다.
  • “해외 생활이 나쁘다고 할 순 없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걸 찾고 싶어서 돌아왔어요.”
  • 이휘도는 여전히 미소를 띠며 말했다.
  • 임유비는 “아,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잠시 이휘도를 바라보다가 다시 물었다.
  • “그래서... 사업을 하려는 거예요?”
  • “그런 생각도 있긴 해요. 하지만 아직 구체적으로는 좀 더 고민해봐야죠.”
  • “아, 맞다. 아까 집에서 아저씨를 못 봤는데?”
  • 이휘도가 갑자기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 그는 임유비의 아버지가 중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사채까지 빌려 치료비를 마련했다는 것도. 그런데 이제 병이 나았을 텐데, 집에 갔을 때 아버지를 보지 못한 것이 이상했다.
  • 임유비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그녀는 한동안 말을 망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1년 전,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셨어요. 상처가 너무 심해서 거의 돌아가실 뻔했죠.”
  • 그녀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 “급하게 수술을 받아 목숨은 겨우 건지셨지만, 그 뒤로 합병증이 생기면서 막대한 치료비가 필요했어요. 저희는 있는 돈을 다 쏟아부었고, 친척들과 친구들한테도 돈을 빌렸죠.”
  • “하지만 그것도 금방 바닥났어요. 결국 집을 팔아야 하나 고민하던 중, 어느 날 누군가가 저한테 4천만 원을 빌려주겠다고 제안했어요.”
  • “사채라는 걸 알면서도, 그때는 달리 선택할 시간이 없었어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당장 돈이 필요했거든요.”
  •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 “그 돈으로 아버지의 목숨은 구했지만,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하셨어요. 지금은 반신불수가 되셔서 걷지 못하세요.”
  • “아까 아버지를 못 보신 건, 2층 서재에 계셨기 때문이에요. 원래 사람들 앞에 잘 안 나서세요.”
  • 임유비의 이야기가 끝나자, 이휘도는 잠시 침묵했다. 그녀가 이 이야기를 꺼낼 때 느꼈을 고통이 그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 그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한층 더 깊어진 애정을 느꼈다.
  • 이토록 순수하고 아름다운 소녀에게 세상이 너무 가혹했다. 하지만 괜찮다. 이제 자신이 그녀 곁에 있으니까.
  • 그녀의 운명, 그리고 그녀 가족의 운명을 반드시 바꿔줄 것이다.
  • “걱정 마요. 아버지 곧 좋아지실 거예요. 내가 해외에서 몇 년 동안 의술을 배웠거든요. 한번 진찰해볼게요.”
  • “당신, 의술도 할 줄 알아요?”
  • 임유비는 놀란 눈으로 이휘도를 올려다보았다.
  • “정말이에요?”
  • “거짓말할 리가 있나요. 게다가 내가 아는 아주 유명한 의사도 있어요. 내가 못 고치면, 그 사람 불러서 간단한 수술만 하면 될 거예요. 금방 회복하실 겁니다.”
  • 이휘도는 확신에 찬 미소를 지으며 약속했다.
  • 그 말을 듣자, 임유비의 눈이 반짝였다.
  • “정말요?”
  • 그녀의 눈동자에는 간절한 기대가 가득했다.
  • “물론이죠.”
  • 이휘도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