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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이제부터 여기를 네 집처럼 생각해

  • 소진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목욕을 끝내고, 임유비가 곧 칼자국에게 끌려올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칼자국이 전해온 소식은 그 기대를 무참히 깨버렸다.
  • “소 도련님, 원래 임유비를 데려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놈한테 우리 형제들이 모조리 당해버렸습니다. 제 손도 그놈에게 밟혀 이렇게 됐습니다.”
  • 칼자국은 억울한 표정으로 자신의 부러진 손을 가리켰다.
  • “그놈은 너무 강했습니다. 우리 형제들로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됐어요. 소 도련님, 저희 대신 꼭 복수해 주세요!”
  • 그 말의 의미는 명백했다.
  • ‘저는 소진표 도련님의 사람이니, 이렇게 당한 걸 그냥 넘어가시진 않겠죠? 한 번 나서주셔야 합니다.’
  • 소진표는 그 말을 듣고 눈을 가늘게 뜨며 속으로 생각했다.
  • ‘혹시 무술에 뛰어난 자가 있나?’
  •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칼자국 같은 건달들이 진짜 무술을 익힌 자와 맞붙으면 한낱 쓰러질 무리일 뿐이라는 것을.
  • “그놈이 누구야? 나 소진표의 사람인 걸 모르고 덤볐단 말인가?”
  • 소진표는 차분히 물었다.
  • “제가 분명 소 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그놈은 전혀 개의치 않더군요. 오히려 ‘소 씨 가문이 뭔 대수냐’며 비웃더라고요. 정말 뻔뻔한 놈이었습니다. ‘한 번 더 덤벼보라’면서, 오면 다 때려눕히겠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 “좋아, 아주 좋아.”
  • 소진표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 그놈의 말은 단순히 자신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소 씨 가문 전체를 능멸하는 것이었다. 이 동해시에서 소 씨 가문을 무시하는 자는 지금껏 단 한 명도 없었고, 감히 그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 그런데 지금, 그놈은 소진표의 부하들을 때리고도 모자라, 소 씨 가문까지 업신여기고 있었다. 이 일은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 소진표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전화가 연결되자 그는 간단히 말했다.
  • “유, 잠깐 와라. 일이 생겼다.”
  • 전화를 끊고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머리를 흰색으로 염색한 젊은 남자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 덩치는 크고 근육질에, 손에는 거친 굳은살이 가득했다. 무술을 익힌 자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 “소 도련님, 부르셨습니까?”
  • 그가 공손히 물었다.
  • 소진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함께 가자. 눈치 없는 녀석 하나를 단단히 혼내줘야겠다.”
  • “알겠습니다.”
  • 그는 짧게 대답했다.
  • 소진표는 유라 불리는 그 백발의 남자, 그리고 칼자국을 포함한 몇 명의 부하들과 함께 임 씨 가문을 향해 분노에 찬 걸음을 내딛었다.
  • 이휘도는 이 모든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 그는 이미 임유비의 집을 둘러본 상태였다. 집은 오래된 느낌이 들었고, 내부 인테리어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깔끔하고 고급스러웠다. 가구도 모두 갖춰져 있어, 짐만 풀면 바로 들어와 살 수 있을 정도였다.
  • 하지만 이휘도는 그런 것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가 이곳에 방을 빌리러 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 그가 빌린 방은 1층에 위치한 독립 욕실이 딸린 방이었다. 임유비 가족은 2층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조차도 상관없었다. 그저 임유비의 곁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 “휘도야, 아까 아줌마가 말했지? 네 방세 깎아준다고. 한 달에 2만 원만 내면 돼, 어때?”
  • 유은정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휘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 속에 기쁨이 가득했다.
  • 동해시는 대도시는 아니었지만, 이 지역의 월세는 결코 싼 편이 아니었다. 한 달에 2만 원이라는 금액은 말도 안 될 정도로 저렴했다.
  • 옆에서 임유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벌리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얼마 전만 해도 누군가가 이 집을 20만 원에 빌리려 했을 때, 유은정은 그 금액조차도 거절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2만 원에 방을 내주다니, 어머니의 속내가 분명해 보였다.
  • 임유비는 눈살을 찌푸리며 이휘도를 노려보았다. 이 남자가 도대체 어떻게 어머니를 이렇게까지 매혹시킨 걸까?
  • “감사합니다, 아줌마.”
  • 이휘도는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임유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잠시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저기, 아줌마...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 “말해보렴.”
  • 유은정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사실, 처음 아줌마를 뵀을 때부터 너무 친근한 느낌이 들었어요. 혹시 제가 아줌마가 해주시는 밥을 같이 먹을 수 있을까요?”
  • 이휘도는 살짝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 “물론, 식비는 제가 따로 드리겠습니다.”
  • 유은정은 그의 뜻밖의 요구에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 “당연하지, 그러면 되지. 이제부터 여기를 네 집처럼 생각해.”
  • “엄마...”
  • 임유비는 어머니가 이렇게 쉽게 승낙한 것을 보고 당황스러웠다.
  • 이휘도가 싫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가족을 도와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첫 만남에, 그것도 또래 남자와 함께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된다는 사실이 적잖이 불편했다.
  • “감사합니다, 아줌마. 이 카드에 조금 들어 있는 돈은 당분간의 생활비로 써주세요.”
  • 이휘도는 기분이 좋아 보였고, 주머니에서 검은색 카드를 꺼내 유은정에게 건넸다.
  • “비밀번호는 여섯 개의 0입니다.”
  • 유은정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카드를 받았다. 이미 식사를 제공하기로 약속한 이상 거절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휘도가 ‘조금’ 들어 있다고 했으니, 큰 부담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 그러나 그녀는 그 카드에 어마어마한 금액이 들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