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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부주의로 생긴 사고

  • “허허, 거짓말하지 마! 사채를 빌린 게 분명해. 내 체면을 구기게 하려고 일부러 이런 거짓말까지 하다니, 정말 우습군!”
  • 뒤늦게 반응을 한 장미란은 염우영에게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믿지 않았고 비하하면서 말했다.
  • 그녀는 어제 그의 집에 갔었다. 그게 어딜 봐서 결혼한 사람의 집이란 말인가?
  • 염우영이 아내가 있는데도 맞선을 봤다? 설마 그가 불륜이라도 저지르려고 했겠는가?
  • 장미란이 믿지 않자 임범은 화가 났다!
  • 오히려 염우영이 다가와 그를 가볍게 끌어당겼다. 엄마를 구하는 게 중요하지 이런 여자와 실랑이를 벌여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 “허허, 염우영! 너 결혼했다면서? 어떤 여자가 너 같은 남자한테 시집갔을까? 어떻게 생겼는지 사진이나 좀 보여주지 그래?”
  • 염우영을 본 장미란은 전혀 여지를 두지 않고 비웃었다.
  • 물론 염우영은 장미란에게 창피를 주기 위해 진유월의 사진을 보여줄 생각이 없었다.
  • 우선 그에게는 진유월의 사진이 없 다.
  • 둘째, 설령 진짜 사진을 보여준다고 해도 장미란은 믿지 않을 것이다!
  • 셋째, 진유월은 그의 진짜 아내라고 할 수도 없는데 굳이 자랑할 필요가 있겠는가?
  • 하여 염우영은 침묵을 택했고 임범을 데리고 수술실로 갔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수술을 빨리 진행하게끔 하는 것이다.
  • 그가 반박하지 못하자 장미란은 더욱 비아냥거렸다.
  • “흥, 둘 다 정말 자존심만 센 구질구질한 남자네!”
  • 저녁이 되자 염우영은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 차를 살 돈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아직 스쿠터를 몰았다.
  • 그는 길을 걸으면서도 마음속으로 계속 임범의 일을 생각했다.
  • 비록 수술 일정은 잡혔지만 임범이 돈을 갚으려면 아마 몇 년은 걸려야 할 것이다.
  • 엄마한테서 빌린 천만 원은 임범이 천천히 갚아도 된다지만 진유월한테서 빌린 삼천사백만 원은 몇 년을 끌면 그 여자가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 생각에 잠긴 염우영은 어느 한 모퉁이에서 실수로 벤트리 차를 들이받았다!
  • 쾅.
  • 염우영은 땅에 세게 넘어졌고, 고개를 들자마자 안색이 급격히 변했다!
  • 헐, 비싼 차잖아!
  • 벤틀리의 운전기사는 어두운 표정으로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려 그를 향해 딱딱한 말투로 물었다.
  • “괜찮아요?”
  • 그는 모퉁이를 돌기 전 다른 방향에서 오는 차들에게 조심하라고 알려주기 위해 일부러 클락션을 눌렀다. 그러나 염우영의 스쿠터는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 그래서 운전기사는 이 사고의 책임이 전적으로 염우영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속으로는 두렵기도 했다. 이곳에는 카메라가 없었고, 만약 염우영이 고의로 바닥에 넘어져 생떼라도 부린다면 경찰이 왔을 때 그가 운전한 차의 과실이라고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 만약 염우영이 전문적인 사기꾼이라면 그의 사장님에게 돈을 뜯어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 하여 운전기사는 행여라도 염우영이 절뚝거리는 척하면서 막무가내로 나올까 봐 비록 화는 났지만 감히 욕을 할 수 없었다!
  • “전 괜찮아요, 죄송합니다!”
  • 염우영은 얼른 일어났고 종아리에 분명 피가 나는데도 괜찮다고 버텼다.
  • 염우영도 그가 속도를 줄이지 않아서 생긴 사고라는 걸 알고 있었다.
  • 만약 상대방이 그에게 돈을 배상하라고 한다면 그것 또한 적지 않은 액수일 것이다!
  • 하여 염우영은 사과 후 얼른 절뚝거리며 스쿠터를 끌고 떠났다.
  • 그가 현장을 떠난 뒤에야 진유월은 벤틀리 차에서 내렸고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 저 남자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
  • 운전할 때 정신을 딴 데 팔다니, 죽고 싶은 건가?
  • “진 대표님, 경찰에 신고해야 할까요?”
  • 운전기사는 그 남자가 진유월의 남편인 줄도 모르고 그녀에게 물었다.
  • “됐어요, 별일도 아닌데요! 난 걸어서 갈 테니 차는 가져가서 수리하세요.”
  • “네?”
  • 운전기사는 어리둥절해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네, 진 대표님!”
  • 그러나 그는 속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 벤틀리는 진 대표님이 가장 좋아하는 차다. 평소 같았으면 진 대표님은 분명 끝까지 책임을 물었을 것이다.
  • 진 대표님의 인맥과 수완으로 상대방에게 순순히 배상과 사과를 받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 그런데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다니?
  • 집으로 돌아온 진유월은 마침 염우영이 약상자를 꺼내 왼쪽 종아리의 부상을 치료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 분명히 살갗이 벗겨지고 피투성이가 되었는데도 염우영은 소독약을 바르면서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았다!
  • 진유월은 염우영이 설마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들었다.
  • “왜 그래요?”
  • 진유월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 물었다.
  • 염우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곧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별일 아니에요. 집에 오는 길에 실수로 벤틀리와 부딪혔어요!”
  • “그렇게 많이 다쳤어요? 그래서 상대방한테서 얼마를 보상받았어요?”
  • 진유월은 웃는 듯 아닌 듯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물었다.
  • “보상금이요? 제 실수로 부딪힌 건데 상대방이 돈을 물어내라고 하지 않은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데요!”
  • 염우영이 솔직하게 말했다.
  • 진유월은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녀석도 자신의 부주의로 생긴 일인 걸 알고 있긴 하나 보다.
  • 만약 염우영이 상대방을 욕하고 책임을 전가했다면 진유월은 분명 화가 났을 것이고 심지어 스스로 그를 폭로한 후 배상하라고 했을 것이다.
  • 하지만 염우영이 모든 책임을 떠안자 진유월은 마음속의 화가 자기도 모르게 풀렸고 그의 옆에 앉아 상처를 관찰했다.
  • 그녀의 아름다운 옆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고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향기를 맡으니 염우영은 자기도 모르게 심장이 뛰었다!
  • 이 여자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인가?
  • 그러나 이때, 진유월은 손가락을 내밀어 그의 상처를 일부러 쿡쿡 찔렀다.
  • “아…”
  • 염우영은 통증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 “통증을 느낄 수 있네요?”
  • 진유월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 “당연한 거 아니에요?”
  • 염우영은 울화가 치밀었다!
  • 이 여자는 피도 눈물도 없단 말인가?
  • 그녀는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살갗이 벗겨진 그의 상처를 힘껏 찔렀다! 이 여자는 악마인가?
  • “내가 죽은 사람도 아니고! 왜 통증을 느끼지 못하겠어요?”
  • “하하.”
  • 화를 내는 남자의 모습에 진유월은 그저 가볍게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 “바보예요? 이렇게 많이 다쳤으면서 왜 벤틀리 주인한테 보상해 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이 상처로 봤을 땐 그 자리에 누워만 있어도 삼천사백만 정도는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었을 텐데!”
  • 만약 염우영이 경찰에 신고를 해서 그녀에게 삼천사백만을 갈취한다고 해도 그녀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 그러나 염우영은 입을 삐죽거리더니 말했다.
  • “내가 말했잖아요? 나의 부주의로 생긴 사고인데 어떻게 상대방한테 배상을 요구할 수 있죠?”
  • 진유월은 입꼬리를 올렸고 그 미소는 더욱 아름다워졌다.
  • “하지만 이 근처에는 CCTV도 없는데 우영 씨의 부주의로 생긴 사고라는 걸 누가 알겠어요? 우영 씨 바보네요!”
  • 염우영은 눈에 힘을 주고는 엄숙하게 말했다.
  • “하늘이 알고 땅이 알며 내가 알고 상대방이 아는데 어떻게 아무도 모를 수 있죠?”
  • 염우영이 이렇게 말할 줄 몰랐던 진유월은 잠시 멈칫했다.
  • 이 남자, 정말 정직한 사람이다!
  • 보아하니 그녀가 벤틀리의 주인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비밀로 해야 할 듯싶다.
  • “참, 제가 빌린 삼천사백만 원은 그렇게 빨리 갚지 못할 것 같아요. 하지만 약속해요, 돈은 반드시 갚을 거예요!”
  • 염우영은 돈을 빌린 이유를 여전히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다.
  • 진유월은 마음속으로 이 남자에 대한 인식이 조금 바뀌었다. 보아하니 고상한 척하는 사기꾼 같지는 않았다!
  • 방으로 돌아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난 진유월은 문득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뒤돌아 말했다.
  • “참, 우영 씨가 한 가지 일을 해 준다면 빌린 돈은 안 갚아도 될 것 같은데!”
  • “무슨 일인데요?”
  • 염우영은 눈에서 빛이 났다.
  • 현재 임범 어머니의 상황으로 봤을 때 그가 삼천사백만을 갚는 건 둘째치고 앞으로도 계속 돈을 빌려야 할 것 같았다.
  • 그런데 지금 진유월이 돈을 갚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있다고 하니 염우영은 당연히 궁금했다. 대체 무슨 일을 하면 그 빚을 탕감할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