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처음 남자랑 잔 게 언제예요?
- 한이서는 한여빈을 보는 순간, 차재혁에 대한 호감이 완전히 사라졌다.
- 그래서 처음에는 직접 차재혁에게 옷을 돌려주며 고맙다는 인사를 할 계획이었으나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 ‘그래, 한여빈의 남자 친구라면 앞으로 더 이상 얼굴 마주치는 일은 없겠어.’
- “대표님 옷이에요. 한 비서님이 대신 좀 전해주세요. 고마워요.”
- 한이서는 차갑게 말을 마치고는 곧바로 몸을 돌렸다.
- 그런데 창가 쪽 자리로 돌아와 보니 얌전히 앉아 있어야 할 한아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 한이서는 다급히 종업원을 찾아 물었다.
- “저기, 아까 저랑 함께 앉아 있던 꼬마 아이 못 보셨어요?”
- 여자아이가 하도 인형같이 귀엽게 생기고 눈도 커서 종업원은 한아린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 “손님, 아까 손 씻으러 화장실에 간 것 같으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 한이서는 그제야 안심했다.
- ‘밥 먹기 전에는 손을 씻어야 한다고 했더니 그걸 기억했나 보네.’
- ……
- 화장실은 남자 여자 화장실로 따로 나뉘어져 있으나 손을 씻는 공간은 같은 공간이었다.
- 한아린은 핸드워시로 야무지게 손을 씻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 “손을 씻으면 예뻐져요! 손을 씻으면 건강해져요! 아침에도 씻고 점심에도 씻고 저녁에도 씻어요~”
- 그때, 남자 화장실에서 웬 키가 훤칠한 남자가 나와 한아린 곁에서 손을 씻었다.
- 한아린은 거울을 통해 남자의 얼굴을 보더니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 ‘어라? 이 아저씨는 공항에서 봤던 바로 그 아저씨? 우리 오빠들이랑 너무 닮았어! 다들 너무 잘 생겼잖아!’
- 한아린은 거울을 통해 차재혁을 넋 놓고 바라보다 물었다.
- “아저씨, 자식 있어요?”
- 사실 한아린은 차재혁에게 자기 아빠가 맞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괜히 엄한 사람에게 그런 말을 했다가 엄마에게 혼날까 봐 자식이 있냐고 넌지시 물었다.
- ‘만약 아저씨에게 자식이 있는데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면... 우리의 아빠가 아닐까?’
- 한아린의 귀여운 목소리에 차재혁은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보았다.
- 아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차재혁은 어쩐 일인지 심장이 움찔했다.
- “아니, 없어.”
- 차재혁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딱딱하고 차갑지는 않았지만, 얼굴은 늘 그랬듯 무표정이었다.
- 한아린은 작게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 “저도 아빠가 없어요.”
- 풀이 죽은 한아린의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차재혁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 하지만 평소 차재혁은 아이들을 달래본 적 없기에 어떻게 아이를 위로하면 좋을지 몰랐다.
- 그때, 한아린의 머릿속에 아주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 ‘아! 그래, 엄마를 이 아저씨한테 소개해 주는 거야! 아저씨는 너무 잘 생겼으니까, 엄마도 분명히 좋아하실 거야!”
- 한아린은 휴지로 손을 닦으며 배시시 웃었다.
- ‘나는 진짜 똑똑한 것 같아.’
- “아저씨, 아저씨랑 친구 하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저한테 전화번호 남겨주시면 나중에 밥 사드릴게요.”
- 한아린은 밥을 사주겠다는 대사를 어느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고 배웠다.
- ‘보통은 남자가 여자를 밥 사주겠다고 하지만 엄마에겐 자식이 세 명이나 있으니, 엄마가 사는 것도 좋겠어!’
-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던 차재혁은 한아린의 말에 멈칫하다 이내 옅은 웃음을 지었다.
- ‘꼬마 녀석이 이런 건 어디에서 배웠는지...’
- 차재혁은 홀린 듯이 자기 명함을 한아린에게 건네며 말했다.
- “자, 여기.”
- 차재혁은 꼬마 여자아이에게 말 못 할 친근함을 느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아이에게 빠져 들었다.
- “고마워요, 아저씨.”
- 한아린은 금색의 명함을 받아 옆구리에 멘 가방에 소중히 넣었다.
- 차재혁이 룸에 돌아오자, 한여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 그녀는 차재혁의 얼굴을 보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 ‘세상에, 이렇게 잘생긴 남자가 바로 내 앞에 있다니!’
- “대표님, 안녕하세요!”
- 한여빈에 대한 차재혁의 첫인상은 턱이 너무 날카로워 베일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 ‘저 여자가... 6년 전 그 여자 맞는 걸까?’
- 한여빈은 어쩐지 조금 긴장되었다. 지금 자기 앞에 서 있는 사람은 A 시티에서 제일 잘나가는 가문의 주인이다. 그런 사람에게 시집갈 수만 있다면 앞으로 A 시티에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한여빈의 욕망이 마구 꿈틀거렸다.
- ‘훗, 내 미모에 반해서 나한테 데이트 신청을 하는 거겠지? 남자들이란.’
- “안녕하세요. 혹시 예전에 아주 이상한 경험 같은 거 해본 적 없어요? 꿈결에 어떤 일을 저질렀다든가...”
- 한여빈은 차재혁이 갑자기 왜 그런 걸 묻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 ‘뭐가 됐든 차현 그룹의 안주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겠어!’
- “있어요. 어릴 때 꿈에서 이빨이 빠졌는데 이튿날 깨어나 보니 정말로 빠진 거 있죠? 정말 신기하지 않아요?”
- 차재혁은 한여빈의 말에 답하지 않고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 “처음 남자란 잔 게 언제예요? 맑은 정신이었나요, 아니면 몽롱한 정신이었나요? 혹시... 반지 같은 거 받은 적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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