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재혁이 다소 거칠게 그녀를 차 안으로 밀어 넣는 바람에 한이서의 머리가 차 좌석에 부딪히고 말았다.
‘아파...’
한이서는 두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고 마치 성난 고양이처럼 차재혁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봐요, 차 대표님. 우리가 아는 사이인가요? 제가 죽든 말든 상관하실 바 아니잖아요!”
‘이상한 사람이야 정말!’
차재혁이 그녀를 금방 구해줬을 때만 하더라도 한이서는 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컸다. ‘하지만 저 눈빛, 저 태도... 이건 분명히 나를 무시하는 거야! 쳇! 내가 그렇게 하찮게 생각되면 구해주지 않으면 될 거 아니야! 구해줘 놓고 이렇게 모욕하는 건 또 뭐야?’
차재혁은 차가운 얼굴로 운전기사에게 말했다.
“거기...”
하지만 차재혁은 한이서가 어디에 사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어디 살아? 데려다줄게.”
한이서는 예쁜 얼굴로 가소로운 듯 웃으며 말했다.
“차 대표님, 제 말 못 알아들으셨어요? 대표님이 데려다주지 않으셔도 되니까 당장 차에서 내리게 해줘요!”
한이서는 억지로 차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러자 차재혁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한이서, 정신 차려! 당신의 귀여운 딸을 생각해 봐! 그렇게 귀여운 딸을 놔두고 이런 곳에 와서 일하는 게 말이 돼? 얼마나 위험한지 생각 안 해봤어? 이런 일을 계속하다가 만약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어떡할 거야?”
아이 얘기가 나오자, 한이서는 참지 못하고 흥분했다.
“그래요! 저는 이정도 밖에 안 되는 사람이에요! 어린 나이에 임신해서 아이를 낳았고 대학교도 다니지 못했어요! 게다가 지금은 아주 못난 엄마예요! 아이들도 저 따라 고생해서 얼마나 죄스러운지 모르겠다고요! 대표님 눈에는 제가 정말 한심해 보이겠죠? 하지만 저는 대표님더러 도와달라고 한 적 없어요. 그러니까 저한테 그만 뭐라고 하세요!”
말을 마친 한이서는 차재혁의 손을 뿌리치고 억지로 차 문을 연 뒤, 가게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차재혁은 성난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무언가 말하려다 말고 도로 입을 닫았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
사실 차재혁 본인 역시 자기가 왜 자꾸 한이서에게 이끌리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한이서가 고생하거나 난감한 상황에 빠지면 차재혁은 몹시 마음이 쓰이고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돕고 싶은데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불쌍한 여자라고 생각해서 도와주고 싶은 건가? 그런데 저 여자는 왜 나를 저런 눈빛으로 보는 거야?’
차재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코웃음을 치더니 운전기사에게 말했다.
“출발해. 집으로 가지.”
운전기사는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얼른 시동을 걸었다.
운전기사가 차재혁의 운전기사로 지내는 동안, 차재혁이 자신의 차에 여자를 태우는 모습은 처음 봤다.
‘아주 어여쁘지만, 성격은 별로인 아가씨군. 게다가 대표님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여자라니... 담이 아주 큰가 봐.’
한이서는 가게에 돌아와 무대 뒤에서 옷을 갈아입고 짐을 챙겨 집으로 가려고 했다.
‘오늘, 이 난리를 피웠으니... 앞으로 이곳에서는 일할 수 없겠지? 손님은 왕이라고 하는데 그 왕을 단단히 건드려버렸으니... 어떡할 거야.’
한이서가 밖으로 걸어 나가려는데 한이서 주변으로 가게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들 중에는 손님과 술을 함께 마셔주는 아가씨도 있었고 한이서처럼 춤을 위주로 추는 아가씨도 있었다.
그들을 보며 한이서는 흠칫했다.
‘뭐야? 나한테 뭐라고 하려는 건가?’
그런데 한이서의 생각과는 다르게 다들 그녀에게 아주 친절하게 대했다.
“바니, 오늘 무대 최고였어.”
“힘들지 않아? 피로가 쫙 풀리는 칵테일 만들어줄까?”
“어깨 주물러줘?”
갑자기 다들 너무 친근하게 굴자, 한이서는 그만 벙쪄 버렸다.
“비켜! 저리 비켜! 다들 일 안 하고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나가서 일해!”
가게 매니저가 엉덩이를 실룩이며 안으로 들어와서는 아가씨들을 한바탕 혼냈다.
가게 매니저는 관록이 넘치는 중년 여성이었는데 한이서의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며 그녀의 어깨를 대뜸 주물러주는 것이었다.
“바니야, 컴백한 김에 앞으로 자주 나와줘. 오늘 일당은 바로 이체했어. 참, 그리고 너 아까 그 차씨 가문 도련님이랑 친해? 아는 사이야? 앞으로 그분한테 우리 가게에 대해 잘 좀 말해줘. 알겠지?”
매니저한테 호되게 혼날 줄 알았던 한이서는 의외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
‘당장 꺼지라고 욕할 줄 알았는데 이게 뭐지? 차씨 가문 도련님? 그러니까 나는 지금 차재혁 씨 후광으로 무사할 뿐만 아니라 일당까지 결제받은 거지? 그래, 뭐가 됐든 일자리는 지켰으니, 다행이야. 어떻게든 일을 해야 아이들 학원도 보내고 할 수 있어...’
……
집으로 돌아와 씻고 나니 한이서는 으슬으슬 춥고 온몸이 떨리며 자꾸만 재채기가 나왔다.
‘가게에서 갑자기 나갔다가 바람을 맞아서 그런가... 감기에 걸린 것 같네.’
이튿날 아침.
세 아이는 나란히 앉아 아침을 먹은 뒤, 평소처럼 한이서가 자기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한이서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오한이 들었는지 연거푸 기침만 해댔다.
한이서가 좀처럼 방에서 나오지 않자, 한아린이 방으로 쳐들어가며 말했다.
“엄마, 빨리 나와! 이러다 우리 다 늦겠어!”
한이서는 겨우 눈을 떴다. 그런데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이 어지러워 다시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