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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감기

  • “악!”
  • 차재혁이 다소 거칠게 그녀를 차 안으로 밀어 넣는 바람에 한이서의 머리가 차 좌석에 부딪히고 말았다.
  • ‘아파...’
  • 한이서는 두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고 마치 성난 고양이처럼 차재혁을 노려보며 말했다.
  • “이봐요, 차 대표님. 우리가 아는 사이인가요? 제가 죽든 말든 상관하실 바 아니잖아요!”
  • ‘이상한 사람이야 정말!’
  • 차재혁이 그녀를 금방 구해줬을 때만 하더라도 한이서는 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컸다. ‘하지만 저 눈빛, 저 태도... 이건 분명히 나를 무시하는 거야! 쳇! 내가 그렇게 하찮게 생각되면 구해주지 않으면 될 거 아니야! 구해줘 놓고 이렇게 모욕하는 건 또 뭐야?’
  • 차재혁은 차가운 얼굴로 운전기사에게 말했다.
  • “거기...”
  • 하지만 차재혁은 한이서가 어디에 사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 “어디 살아? 데려다줄게.”
  • 한이서는 예쁜 얼굴로 가소로운 듯 웃으며 말했다.
  • “차 대표님, 제 말 못 알아들으셨어요? 대표님이 데려다주지 않으셔도 되니까 당장 차에서 내리게 해줘요!”
  • 한이서는 억지로 차 문을 열려고 했다.
  • 그러자 차재혁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 “한이서, 정신 차려! 당신의 귀여운 딸을 생각해 봐! 그렇게 귀여운 딸을 놔두고 이런 곳에 와서 일하는 게 말이 돼? 얼마나 위험한지 생각 안 해봤어? 이런 일을 계속하다가 만약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어떡할 거야?”
  • 아이 얘기가 나오자, 한이서는 참지 못하고 흥분했다.
  • “그래요! 저는 이정도 밖에 안 되는 사람이에요! 어린 나이에 임신해서 아이를 낳았고 대학교도 다니지 못했어요! 게다가 지금은 아주 못난 엄마예요! 아이들도 저 따라 고생해서 얼마나 죄스러운지 모르겠다고요! 대표님 눈에는 제가 정말 한심해 보이겠죠? 하지만 저는 대표님더러 도와달라고 한 적 없어요. 그러니까 저한테 그만 뭐라고 하세요!”
  • 말을 마친 한이서는 차재혁의 손을 뿌리치고 억지로 차 문을 연 뒤, 가게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 차재혁은 성난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무언가 말하려다 말고 도로 입을 닫았다.
  •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
  • 사실 차재혁 본인 역시 자기가 왜 자꾸 한이서에게 이끌리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 한이서가 고생하거나 난감한 상황에 빠지면 차재혁은 몹시 마음이 쓰이고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돕고 싶은데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 ‘불쌍한 여자라고 생각해서 도와주고 싶은 건가? 그런데 저 여자는 왜 나를 저런 눈빛으로 보는 거야?’
  • 차재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코웃음을 치더니 운전기사에게 말했다.
  • “출발해. 집으로 가지.”
  • 운전기사는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얼른 시동을 걸었다.
  • 운전기사가 차재혁의 운전기사로 지내는 동안, 차재혁이 자신의 차에 여자를 태우는 모습은 처음 봤다.
  • ‘아주 어여쁘지만, 성격은 별로인 아가씨군. 게다가 대표님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여자라니... 담이 아주 큰가 봐.’
  • 한이서는 가게에 돌아와 무대 뒤에서 옷을 갈아입고 짐을 챙겨 집으로 가려고 했다.
  • ‘오늘, 이 난리를 피웠으니... 앞으로 이곳에서는 일할 수 없겠지? 손님은 왕이라고 하는데 그 왕을 단단히 건드려버렸으니... 어떡할 거야.’
  • 한이서가 밖으로 걸어 나가려는데 한이서 주변으로 가게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 그들 중에는 손님과 술을 함께 마셔주는 아가씨도 있었고 한이서처럼 춤을 위주로 추는 아가씨도 있었다.
  • 그들을 보며 한이서는 흠칫했다.
  • ‘뭐야? 나한테 뭐라고 하려는 건가?’
  • 그런데 한이서의 생각과는 다르게 다들 그녀에게 아주 친절하게 대했다.
  • “바니, 오늘 무대 최고였어.”
  • “힘들지 않아? 피로가 쫙 풀리는 칵테일 만들어줄까?”
  • “어깨 주물러줘?”
  • 갑자기 다들 너무 친근하게 굴자, 한이서는 그만 벙쪄 버렸다.
  • “비켜! 저리 비켜! 다들 일 안 하고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나가서 일해!”
  • 가게 매니저가 엉덩이를 실룩이며 안으로 들어와서는 아가씨들을 한바탕 혼냈다.
  • 가게 매니저는 관록이 넘치는 중년 여성이었는데 한이서의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며 그녀의 어깨를 대뜸 주물러주는 것이었다.
  • “바니야, 컴백한 김에 앞으로 자주 나와줘. 오늘 일당은 바로 이체했어. 참, 그리고 너 아까 그 차씨 가문 도련님이랑 친해? 아는 사이야? 앞으로 그분한테 우리 가게에 대해 잘 좀 말해줘. 알겠지?”
  • 매니저한테 호되게 혼날 줄 알았던 한이서는 의외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
  • ‘당장 꺼지라고 욕할 줄 알았는데 이게 뭐지? 차씨 가문 도련님? 그러니까 나는 지금 차재혁 씨 후광으로 무사할 뿐만 아니라 일당까지 결제받은 거지? 그래, 뭐가 됐든 일자리는 지켰으니, 다행이야. 어떻게든 일을 해야 아이들 학원도 보내고 할 수 있어...’
  • ……
  • 집으로 돌아와 씻고 나니 한이서는 으슬으슬 춥고 온몸이 떨리며 자꾸만 재채기가 나왔다.
  • ‘가게에서 갑자기 나갔다가 바람을 맞아서 그런가... 감기에 걸린 것 같네.’
  • 이튿날 아침.
  • 세 아이는 나란히 앉아 아침을 먹은 뒤, 평소처럼 한이서가 자기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기를 기다렸다.
  • 하지만 한이서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오한이 들었는지 연거푸 기침만 해댔다.
  • 한이서가 좀처럼 방에서 나오지 않자, 한아린이 방으로 쳐들어가며 말했다.
  • “엄마, 빨리 나와! 이러다 우리 다 늦겠어!”
  • 한이서는 겨우 눈을 떴다. 그런데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이 어지러워 다시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 “아린아, 오늘은 장 아주머니한테 데려다 달라고 해. 알겠지? 콜록... 콜록...”
  • 고통스러워하는 한이서의 모습을 보며 한아린은 한달음에 그녀에게 달려가 이마를 만져보았다.
  • “엄마, 이마가 너무 뜨거워! 열나는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