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당신이랑 상관없잖아요!
- 이 가게에는 룰이 하나 있었다. 댄싱퀸이 춤을 다 추고 나면 제일 높은 가격을 낸 사람과 함께 술 한잔 마셔주는데 받은 팁은 모두 댄싱퀸이 가져가도 됐다.
- 한이서는 춤을 추는 것으로 버는 돈보다 춤을 다 추고 술 한잔 같이 마셔주는 대가로 받는 팁으로 돈을 더욱 많이 벌었다.
- 한이서는 사람들이 외치는 돈 액수를 들으며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 ‘오늘 조금 더 많이 벌게 해주세요!’
- 결국, 천만 원이라는 엄청난 액수를 부른 사람에게 한이서와 함께 술 한잔 마시는 기회가 낙찰되었다.
- “자, 저기 계신 선생님! 축하드려요! 천만 원 부르신 선생님께 우리의 바니걸과 술 한잔할 수 있는 기회가 차려졌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 한이서가 무대 밑으로 내려가 낙찰받은 남자에게로 다가가는 길 내내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환호성을 지르며 열광했다.
- 한이서는 과한 노출이 전혀 없는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지만 그게 더욱 남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모양이었다.
- 한이서는 출근하게 되면 가게에서 단 한 곡에 맞춰 춤을 추고 제일 높은 가격에 낙찰받은 사람과 술 한잔 같이 마셔주는 게 다였다.
- 물론 그녀가 입는 옷도 그녀 혼자 선택할 수 있었기에 한이서는 절대 노출이 심한 옷을 입지 않았다.
- 사실 처음에는 매니저가 한이서에게만 특혜를 주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한이서가 일주일 동안 출근해 엄청난 호응을 얻어내자, 장사를 위해 한이서의 모든 요구에 응했다.
- 매니저는 한이서가 자기 가게로 출근해 주는 것만 해도 아주 감지덕지했다.
- 한이서와 술 한잔 같이하는 기회를 낙찰받은 사람은 아주 건장하고 살집이 있는 남자였다. 목에는 금목걸이를 걸로 노골적인 시선으로 한이서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 한이서는 술잔을 들고 그의 옆에 다가가 앉으며 미소를 지었다.
- “이렇게 높은 가격에 낙찰해주셔서 감사드려요. 감사의 의미를 담아 같이 한잔해요.”
- 그러자 남자의 눈이 무섭게 이글거렸다. 그는 한이서의 말에 온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을 느끼며 한이서에게서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했다.
- “남은 시간 즐겁게 놀다 가시길 바랄게요!”
- 한이서가 술을 마시려는데, 남자가 한이서의 손목을 잡았다.
- 남자는 개기름이 줄줄 흐르는 얼굴에 게걸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바니걸, 내가 고작 너랑 술 한잔 마시자고 돈을 천만 원 씩이나 낸 줄 알아? 자, 내 곁에 바짝 붙어 앉으라고! 오늘 서비스 잘하면 돈 더 줄 수도 있어!”
- 한이서는 자기 손을 빼내려고 했으나 남자가 얼마나 단단히 힘을 줬는지 좀처럼 빼낼 수 없었다.
- 사실 술집에서 일하다 보면 이런 상황을 한두 번 겪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한이서는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 그녀는 평소대로 말했다.
- “저랑 같이 한 잔 마시고 다른 분 불러올게요. 그분이랑 더 마시면 되잖아요.”
- 한이서의 말에 남자의 안색이 단번에 어두워졌다.
-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고 한이서에게 욕지기를 퍼부었다.
- “망할 년이 돈만 받고 튀려고 그래? 오늘 밤, 너는 내 거야! 내가 어떻게 하고 싶으면 어떻게 할 거야! 알겠어?”
- 남자는 한이서를 품에 끌어안고 강제로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려 했다.
- “악!”
- 한이서는 조급한 마음에 그만 잔에 든 술을 남자의 얼굴에 뿌려버렸다.
- 그러자 남자는 한이서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는 성난 얼굴로 버럭버럭 소리 질렀다.
- “미친년이, 손님은 왕 몰라? 감히 손님 면상에 술 뿌린 거야? 죽고 싶어? 예쁘다, 예쁘다 했다니, 아주 기고만장하네?”
- 남자는 손을 들어 한이서를 때리려고 했다.
- 깜짝 놀란 한이서는 얼른 두 눈을 질끈 감았다.
- ‘오늘은 틀림없이 매를 맞겠군!’
- 그런데 이상하게도 몇초가 흘렀지만 아픔이 전해지지 않았다.
- 두 눈을 떠보니, 한이서를 때리려던 남자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 한이서가 어찌 된 영문인지 파악할 새도 없이, 그녀는 웬 남자에 의해 팔목이 잡혔다.
- 한이서는 깜짝 놀라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 ‘아? 이 사람은... 차재혁 씨잖아?’
- 자기 손목을 잡은 사람이 차재혁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한이서는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그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 ‘그래, 아무리 한여빈이 밉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 사람은 나를 구해준 사람이잖아.’
- 차재혁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한이서가 이런 곳에서 춤을 추고 다른 남자들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자기가 왜 이렇게 기분 나쁜 일인지 생각해 보았다.
- 한이서는 가게 밖을 나오니 한기에 몸이 살짝 떨었다.
- 그러자 차재혁은 화가 나는 와중에도 옷을 벗어 그녀에게 걸쳐주려고 했다.
- 옷을 주기 위해 그녀에게 다가가는 순간, 그녀에게서 매우 익숙한 향기가 풍겼다.
- 차재혁은 멈칫하며 한이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이 냄새... 예전에 맡아본 것 같은 익숙한 냄새야. 하지만 나는 예전에 한이서를 만난 적 없잖아?’
- 차재혁은 한이서의 어깨를 잡고 그녀를 품에 꽉 끌어안고 입술에 키스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 그때, 한이서가 옷을 꽁꽁 여미며 말했다.
- “고마워요!”
- 고맙다는 말에, 차재혁은 제정신이 번쩍 들었다.
- 그는 한이서의 손목을 놓고 자기 차가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그녀를 위해 문을 열어주었다.
- 하지만 한이서는 고개를 돌려 가게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내 휴대폰이랑 가방은 다 안에 있는데...’
- 차재혁은 한이서가 가게에 미련을 가지고 있는 줄 알고 잔뜩 굳은 얼굴로 물었다.
- “저 사람들이 당신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어떻게 대할 줄 뻔히 알면서도 돌아가고 싶은 거야?”
- 차재혁의 말투에는 약간의 조롱이 담겨 있었다.
- 차재혁이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느껴지자, 한이서는 번쩍 제정신이 들었다.
- ‘맞아, 이 남자는 한여빈의 약혼자였지? 그런 사람이 좋은 마음으로 나를 구해줬을 리가... 나를 아까 그 상황에서 구해준 건 내게 더욱 큰 모욕을 주기 위해서겠지. 그렇게 생각해 보니... 이 남자도 한여빈이랑 똑같아!’
- 한이서는 옷을 벗어 차재혁에게 건네며 말했다.
- “제가 어떤 상황에 놓이든, 저 사람들이 저를 어떤 시선으로 보든, 대표님과는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 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돌려 자기 갈 길을 가려고 했다.
- 순간, 차재혁의 몸에 한기가 돌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한이서의 손을 덥석 잡고는 그녀를 차 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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