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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히고 싶게

괴롭히고 싶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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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2025-04-25

제1화 세쌍둥이의 엄마가 되다

  • 어느 호텔 방 안.
  • “뜨거워... 너무 뜨거워...”
  • 몽롱한 정신의 한이서가 중얼거렸다.
  • 한이서는 불구덩이에 들어간 것처럼 온몸이 뜨겁고 괴로워 이리저리 뒹굴었다. 얼굴은 잔뜩 상기되었으며 호흡도 점점 가빠졌다.
  • 한이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고는 이곳이 어디인지 확인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 ‘여긴 어디지?’
  • 몸은 점점 더 괴로워져만 갔다. 심장박동이 빨라 오고 몸에는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처럼 간지러웠는데 그 느낌이 소름 돋게 싫어 한이서는 옷을 한 겹 두 겹 벗기 시작했다.
  • 얼마나 간절하게 그 느낌을 벗어나고 싶었는지 옷을 벗는 한이서의 행동은 꽤 거칠었다. 한이서는 단추가 떨어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옷을 벗었다. 속옷 빼고 다 벗고 나니 차가운 공기가 살에 닿으며 그제야 조금 진정되는 듯했다.
  • 피부 겉면의 온도는 조금 내려갔으나 속은 여전히 괴로웠다. 한이서는 이불에 자기 다리를 비비적거리며 처음 느껴보는 아주 이상한 기분이라고 생각했다.
  • ‘하... 이상한 기분이야... 이러다 내 몸이 바싹 마르고 말겠어.’
  • 한이서는 침대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물을 찾기 시작했다.
  • ‘물... 물이 필요해... 지금 당장 물부터 마셔야겠어.’
  • 한이서는 속옷만 입은 상태로 침대에서 내려와 물이 있는 탁자로 비틀거리며 걸어가더니 병째로 들어 물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린 물이 그녀의 목덜미와 가슴을 적셨다.
  • 은은한 불빛 아래, 아름다운 곡선을 뽐내고 있는 여자의 모습은 아주 매혹적이었다.
  • 그때, 욕실 문이 열리고 웬 남자가 하반신에만 수건을 두른 채 나왔다. 금방 샤워를 마친 남자의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 그 물은 남자의 단단한 가슴과 굴곡이 선명한 복근에 떨어지기도 했다.
  • 한이서를 본 남자는 멈칫하더니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머리를 털었다.
  • 그리고 그 역시 몸에 이상을 느끼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남자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 ‘뭔가 이상해. 설마 아까 마신 술에 누가 약을?’
  • 남자는 침대 머리맡에 있는 술잔을 힐끗 바라보더니 한이서의 팔을 잡아당기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 “당신, 우리 할아버지가 보낸 사람이지?”
  • 남자는 할아버지가 자기에게 여자를 보냈을 것이라고 거의 확신했다.
  • ‘증손주... 증손주... 그놈의 증손주가 보고 싶다고 내게 약까지 타다니...’
  • 한편, 남자가 팔을 힘 있게 잡아당기는 바람에 한이서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다 그만 남자의 품에 안기며 그의 허리에 두르고 있던 수건을 잡아당기고 말았다.
  • 수건은 힘없이 툭하고 떨어졌다.
  • 금방 샤워를 마친 터라 남자의 몸은 차가웠는데 한이서는 그 품에 안기자 아주 편안하고 무언가 진정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한이서는 두 눈을 감고 남자의 목에 팔을 두르고는 그에게 바짝 더 붙었다.
  • 차재혁은 가뜩이나 속에서 열이 올라오고 있는 것 같았는데 여자가 자기에게 달라붙자, 욕망이 마구 들끓기 시작했다.
  • 한이서는 그에게 바짝 다가서고는 몸을 이리저리 비볐다. 한이서가 몸을 비빌수록 차재혁은 온몸의 피가 한곳으로 쏠리는 것 같았다.
  • 그렇게 이성의 끈이 툭하고 끊어졌다. 차재혁은 한이서의 입술에 키스했다.
  •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입술끼리 부딪치다가 키스는 점점 격렬해졌다. 차재혁은 한이서의 숨결을 느끼며 더욱 깊숙이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함께 침대로 향했고 서로를 뜨겁게 원했다.
  • “아파요...”
  • 한이서는 작게 신음하며 차재혁의 목을 더욱 꼭 끌어안았다. 차재혁은 그저 오로지 그녀의 몸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몇 번이나 사랑을 나누었을까, 또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먼저 기절하듯 곯아떨어진 건 한이서였다.
  • 다음 날 아침.
  • 한이서는 노크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녀는 머리가 하얗게 텅 빈 느낌이 들었다.
  • ‘뭐야? 여긴 어디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그때, 문이 열리고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리고 그 뒤에는 경찰들도 있었다.
  • “거기, 가만히 계세요. 당신을 성매매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두 손 머리 위로 들고 바닥에 쪼그려 앉으세요.”
  • 한이서는 성매매 혐의로 경찰서에 잡혀가면서도 자기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 그 뒤로 경찰은 한 씨 가문에 연락했고 한이서는 가족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 하지만 한 씨 가문에 돌아오니 더욱 난감한 상황이 펼쳐졌다.
  • 가족들 모두가 한이서를 안 좋은 시선으로 보며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
  • 소파에 앉아 있는 한대수의 안색이 몹시 안 좋았다.
  • 그는 자기가 평소에 제일 아끼던 손녀딸이 그런 낯부끄러운 짓을 했다는 것에 크게 실망하고 상심했다.
  • “할아버지...”
  • 한이서는 한대수 앞에 무릎 꿇고 자기 입장을 설명했다.
  • “할아버지가 생각하시는 그런 거 아니에요. 저는 집에서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정말 모르겠다니까요?”
  • 한이서는 아직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 그때, 한이서의 계모 도희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 “경찰한테 현장을 잡히고서도 아직 할 말이 남은 거야? 아직도 변명하려고 그래? 경찰이 집에 전화 오지 않았더라면 한씨 가문의 큰아가씨가 그렇게 황당무계한 일을 벌인 줄 누가 알았겠어? 경찰 말도 처음에는 의심했다니까! 참나! 가문에 먹칠을 하려고 아주 작정했구나? 창피한 줄도 모르고 말이야...”
  • 그러자 곁에서 듣고 있던 한여빈이 얼른 맞장구쳤다.
  • “언니 정말 역겹다. 아무하고 막 그렇게 자고 다니는 거야? 그러다 병이라도 걸리면 어떡하려고 그래?”
  • 한여빈의 말에 한대수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
  • “다들 그만해! 이서, 너 내일 당장 T 국에 유학 가. 그리고 내 동의가 있을 때까지는 절대로 돌아오지 마.”
  • 말을 마친 한대수는 한이서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지 않은 듯 바로 자리를 떴다.
  • “할아버지!”
  • 한이서는 한대수를 애타게 불렀으나 한대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 한편, 가문에 먹칠한 한이서를 유학 보내려는 한대수의 결정에 도희는 속으로 울분을 터뜨렸다.
  • ‘내가 왜 이 모든 걸 계획했는데? 한이서를 집안에서 내쫓아버리려고 그랬단 말이야! 그런데 쫓아내기는커녕 유학을 보내?’
  • 도희는 자기 딸 한여빈이 한 씨 가문 큰아가씨의 자리에 당당히 오르길 바랐다. 그런데 그러려면 한이서가 없어져야만 했다.
  • 도희의 눈에는 섬광이 번뜩였다.
  • ‘흥. 유학이라고? 꿈 깨! T 국으로 가는 길에 비명횡사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 ……
  • 6년 후, A 시티 공항.
  • 한이서는 캐리어를 이끌고 공항에서 걸어 나왔는데 그 곁으로 올망졸망 예쁘게 생긴 아이 세 명이 졸래졸래 따라왔다.
  • 어린이 모델 뺨칠 정도로 귀여운 아이들이 세 명씩이나 있자, 사람들의 시선은 자꾸만 그들에게 집중되었다.
  • 세 아이 중 두 남자아이는 거의 똑같게 생겼는데 만화 속에서 튀어나왔다고 해도 될 만큼 정교하게 잘 생겼다.
  • 그리고 셋 중 유일한 여자아이는 양 갈래머리에 노란색 치마를 입고 있어 그런지 병아리같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여자아이는 손에 인형을 쥐고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 길 가던 행인 중 어떤 사람들은 세 아이를 카메라로 몰래 찍으며 저희끼리 수군거렸다.
  • “연예인 아니야? 외모만 보면 연예인인데?”
  • “저렇게 사랑스러운 가족이라니! 현실감 없게 잘 생기고 예쁘잖아?”
  • “오~ 엄마도 아주 미인이네!”
  • 그때, 곁에 있는 VIP 출구 쪽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일렬로 쭉 줄지어 섰다.
  • 그리고 그 사이로 검은색 바람막이를 입은 연예인급 미모의 남자가 등장했다. 남자는 키가 크고 신수가 훤할 뿐만 아니라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 남자의 등장에, 사람들의 시선은 다시 그에게로 옮겨졌다.
  • 한이서 곁에 서 있는 꼬마 여자아이는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에 옆을 바라보았다.
  • 그리고 남자를 보는 순간, 여자아이는 그를 아빠라고 불렀다.
  • “아빠!”
  • 여자아이가 보기에 키가 크고 아주 잘생긴 남자는 자기 두 오빠와 똑 닮았다.
  • ‘오빠들이랑 똑같게 생겼어! 그러니까 저 사람은 우리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우리의 아빠일 거야!’
  • 여자아이는 아빠라고 부르며 사람들 속으로 뛰어갔다.
  • 옆에서 잘 따라오던 딸이 다른 길로 새자, 한이서는 급히 딸을 쫓아가며 두 아들에게 말했다.
  • “지후, 시후. 너희들은 문 앞에서 엄마 기다리고 있어. 아린이 금방 찾아서 데려올게.”
  • 남자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 “알겠어, 엄마!”
  • 한이서는 한아린이 달려간 쪽으로 부지런히 쫓아갔다.
  • 그리고 바로 멀지 않은 곳에서 한아린을 붙잡고는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 “한아린, 너 어디 가려고 그래? 엄마랑 오빠도 없이 혼자 달려가다 나쁜 사람한테 잡혀가면 어쩌려고 그래?”
  • 한아린은 활동적이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아주 많은 아이였다. 한이서는 세 아이 중 단 한 명이라도 없어진다면 자기 삶은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아, 엄마! 이거 놔! 나 아빠 봤단 말이야. 아빠는 오빠들이랑 아주 똑같게 생겼어! 나 아빠 찾아야 해!”
  • 한아린은 자꾸만 한이서의 손을 뿌리치며 멀리 사라져 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 ‘이대로 사라지면 안 돼!’
  • 한아린의 말을 들은 한이서는 속으로 생각했다.
  • ‘설마... 정말 그때 그 남자?’
  • 사실 한이서는 그때 호텔에서 만나 첫날밤을 보낸 의문의 남자를 만나 어떻게 된 일인지 제대로 물어보고 싶기도 했다.
  • 게다가 한아린에게 확인시켜 주지 않으면 고집 센 한아린은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릴 게 뻔했다.
  • 그래서 한이서는 한아린이 이끄는 대로 웬 차에 다가갔다.
  • 한이서는 차창을 똑똑 노크했다.
  • ‘그러니까 이 안에 있는 남자가 내 아들이랑 똑같게 생겼다는 거지?
  • 노크 소리에 웬 남자가 천천히 창문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