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한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밖으로 나갔다.
“미팅은 여기서 마칩시다!”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숨길 수가 없었다.
쓸모없는 인간들, 아이 하나 제대로 못 보고 다들 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
음침한 얼굴로 차에 올라 별장으로 돌아가려던 그때, 반진혁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낯선 번호…
반진혁은 전화를 끊으려 했지만 귀신에 홀린 듯 수락 버튼을 눌렀다.
전화를 받자 다소 어색해하는 익숙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반…반 대표님, 저는 꼬마 도련님 생일 파티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했던 온시윤입니다. 저를 기억하세요?”
핸드폰 너머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긴장한 온시윤의 가슴은 빠르게 뛰었다!
지난번 잠깐의 만남으로 반진혁이 아직도 자신을 기억하는지 그녀는 알 수가 없었다.
물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온시윤은 연락을 한 이유부터 설명했다.
“반 대표님, 오늘 한이가 혼자 악단으로 저를 찾아왔어요. 한이가 없어져서 다들 걱정하고 계실 것 같아 이렇게 연락드려요. 괜찮으시다면 번거로우시겠지만 한이를 데리러 와주실 수 있을까요?”
그 말을 들은 반진혁의 눈가에는 순식간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갈게요. 감사합니다.”
반진혁은 쌀쌀맞은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고 곧바로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당장 온시윤이라는 여자에 대해서 알아봐.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정보,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찾아와!”
핸드폰을 내려놓은 반진혁은 액셀을 끝까지 힘껏 밟았고 하모니 악단을 향해 질주했다.
…
두 시간의 거리를 그는 한 시간 만에 도착했다.
하모니 악단에 들어선 반진혁의 얼굴은 끔찍할 정도로 어두웠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온시윤은 자기도 모르게 온몸이 굳어버렸다.
“반, 반 대표님!”
이동준은 더욱 전전긍긍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반면 반민한은 자리에 앉아 짧은 두 다리를 흔들거리며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진혁은 이마에 핏대를 세우고 마치 지옥에서 내려온 저승사자처럼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반민한, 너 간덩이가 부었구나. 감히 제멋대로 집을 나가!!!”
온시윤과 이동준, 두 사람은 모두 깜짝 놀랐다!
반면 반민한은 덤덤했고 심지어 도도하게 고개를 돌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난 잘못한 거 없어요, 아빠가 약속을 안 지켰잖아요. 분명히 날 데리고 예쁜 아줌마 찾으러 갈 거라고 했으면서, 약속을 안 지키니까 나 혼자 온 거예요.”
앳된 목소리에서 실망과 원망의 감정이 느껴졌다.
반진혁은 멈칫했다.
부인할 수 없었다. 그는 확실히 시간을 끌어서 반민한이 이 일을 잊을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물론 그걸 절대 인정할 수는 없었다.
반진혁은 화를 억누르고 반민한 옆으로 다가가 그와 이치를 따지려고 했다.
“네가 아빠를 많이 이해해 줘야지. 아빠가 일이 많아서 시간이 있을 때 널 데리고 아줌마를 찾으러 갈 생각이었어. 이렇게 혼자 집을 나가서 사람들 걱정시키는 건 잘못된 행동이야!”
“흥!”
반민한은 콧방귀를 뀌고는 앙칼지게 말했다.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요? 집에 삼일이나 있었으면서, 바쁘게 일하는 건 보지도 못했어요.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아빠는 내가 어린애니까, 속이기 쉬우니까 그렇게 말한 거잖아요! 난 이제 네 살이에요, 세 살짜리 어린애가 아니란 말이에요. 이렇게 날 속일 수는 없어요!”
“풉…”
그 말을 들은 온시윤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들의 질책에 반진혁은 가슴이 덜컹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가슴속에 끓어오르던 화도 꼬마 녀석이 한바탕 큰소리를 치자 모두 사라졌다.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계속하여 아들을 달랬다.
“그래, 이젠 예쁜 아줌마도 만났으니까 그만 아빠랑 같이 집에 돌아가야지?”
반민한이 그 말에 동의할 리 없었다. 이제 겨우 예쁜 아줌마를 만났지 않은가!
그는 의자에서 내려와 짧다란 다리로 몇 걸음 내디뎌 온시윤의 곁으로 달려갔다.
반민한은 시큰둥하게 콧방귀를 뀌고는 말했다.
“돌아가려면 아빠 혼자 돌아가요. 난 예쁜 아줌마랑 있을 거니까 아빠랑 함께 돌아갈 생각이 없어요.”
말을 마친 그는 이내 온시윤의 다리를 끌어안고 손을 놓지 않았다.
반진혁의 시선은 온시윤에게로 향했고, 그 눈빛은 아주 차갑고 깊이를 알 수 없었지만 그녀에 대한 궁금증도 가득했다.
온시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조금 난감했다. 반민한이 삐져서 심술을 부리는 걸 알기에 그녀도 얼른 그를 달랬다.
“한아, 네가 아줌마를 좋아하는 걸 알지만 이렇게 하면 안 돼. 아줌마도 해야 할 일이 있어, 단장님, 그렇죠?”
온시윤은 말을 하면서 이동준 단장에게 눈짓을 했다.
이동준은 상황을 다 알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맞장구를 쳤다.
“네, 꼬마 도련님. 시윤이는 이따가 일이 있어서 도련님과 같이 있어줄 시간이 없어요.”
“아, 그렇구나…”
그 말에 반민한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꼬마 녀석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얇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더니 다시 고개를 들었고 반짝반짝 빛이 나는 맑은 눈동자로 귀엽게 물었다.
“그럼 아줌마, 우리 같이 점심 먹는 건 어때요?”
“그게…”
온시윤은 거듭 반민한을 거절했지만 꼬마 녀석의 불쌍한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반진혁의 침울한 안색을 본 온시윤은 반진혁이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여 어쩔 수없이 다시 거절했다.
“한아, 그것도 안 될 것 같아.”
이 말을 들은 반민한은 코를 훌쩍이더니 순식간에 눈시울을 붉혔고 입을 삐쭉 내민 채 당장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 같았다.
온시윤은 마음이 아팠고 반민한을 달래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얼른 고개를 들어 반진혁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