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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한이를 잃어버리다

  • 반 씨 그룹.
  • 첫 번째 미팅이 끝나기도 전에 반진혁은 진 씨 아저씨의 연락을 받았다.
  • 반민한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밖으로 나갔다.
  • “미팅은 여기서 마칩시다!”
  •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숨길 수가 없었다.
  • 쓸모없는 인간들, 아이 하나 제대로 못 보고 다들 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
  • 음침한 얼굴로 차에 올라 별장으로 돌아가려던 그때, 반진혁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 낯선 번호…
  • 반진혁은 전화를 끊으려 했지만 귀신에 홀린 듯 수락 버튼을 눌렀다.
  • 전화를 받자 다소 어색해하는 익숙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안녕하세요, 반…반 대표님, 저는 꼬마 도련님 생일 파티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했던 온시윤입니다. 저를 기억하세요?”
  • 핸드폰 너머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 긴장한 온시윤의 가슴은 빠르게 뛰었다!
  • 지난번 잠깐의 만남으로 반진혁이 아직도 자신을 기억하는지 그녀는 알 수가 없었다.
  • 물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 온시윤은 연락을 한 이유부터 설명했다.
  • “반 대표님, 오늘 한이가 혼자 악단으로 저를 찾아왔어요. 한이가 없어져서 다들 걱정하고 계실 것 같아 이렇게 연락드려요. 괜찮으시다면 번거로우시겠지만 한이를 데리러 와주실 수 있을까요?”
  • 그 말을 들은 반진혁의 눈가에는 순식간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갈게요. 감사합니다.”
  • 반진혁은 쌀쌀맞은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고 곧바로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 “지금 당장 온시윤이라는 여자에 대해서 알아봐.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정보,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찾아와!”
  • 핸드폰을 내려놓은 반진혁은 액셀을 끝까지 힘껏 밟았고 하모니 악단을 향해 질주했다.
  • 두 시간의 거리를 그는 한 시간 만에 도착했다.
  • 하모니 악단에 들어선 반진혁의 얼굴은 끔찍할 정도로 어두웠다.
  •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온시윤은 자기도 모르게 온몸이 굳어버렸다.
  • “반, 반 대표님!”
  • 이동준은 더욱 전전긍긍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반면 반민한은 자리에 앉아 짧은 두 다리를 흔들거리며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반진혁은 이마에 핏대를 세우고 마치 지옥에서 내려온 저승사자처럼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 “반민한, 너 간덩이가 부었구나. 감히 제멋대로 집을 나가!!!”
  • 온시윤과 이동준, 두 사람은 모두 깜짝 놀랐다!
  • 반면 반민한은 덤덤했고 심지어 도도하게 고개를 돌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 “난 잘못한 거 없어요, 아빠가 약속을 안 지켰잖아요. 분명히 날 데리고 예쁜 아줌마 찾으러 갈 거라고 했으면서, 약속을 안 지키니까 나 혼자 온 거예요.”
  • 앳된 목소리에서 실망과 원망의 감정이 느껴졌다.
  • 반진혁은 멈칫했다.
  • 부인할 수 없었다. 그는 확실히 시간을 끌어서 반민한이 이 일을 잊을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 물론 그걸 절대 인정할 수는 없었다.
  • 반진혁은 화를 억누르고 반민한 옆으로 다가가 그와 이치를 따지려고 했다.
  • “네가 아빠를 많이 이해해 줘야지. 아빠가 일이 많아서 시간이 있을 때 널 데리고 아줌마를 찾으러 갈 생각이었어. 이렇게 혼자 집을 나가서 사람들 걱정시키는 건 잘못된 행동이야!”
  • “흥!”
  • 반민한은 콧방귀를 뀌고는 앙칼지게 말했다.
  •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요? 집에 삼일이나 있었으면서, 바쁘게 일하는 건 보지도 못했어요.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아빠는 내가 어린애니까, 속이기 쉬우니까 그렇게 말한 거잖아요! 난 이제 네 살이에요, 세 살짜리 어린애가 아니란 말이에요. 이렇게 날 속일 수는 없어요!”
  • “풉…”
  • 그 말을 들은 온시윤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 아들의 질책에 반진혁은 가슴이 덜컹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 가슴속에 끓어오르던 화도 꼬마 녀석이 한바탕 큰소리를 치자 모두 사라졌다.
  •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계속하여 아들을 달랬다.
  • “그래, 이젠 예쁜 아줌마도 만났으니까 그만 아빠랑 같이 집에 돌아가야지?”
  • 반민한이 그 말에 동의할 리 없었다. 이제 겨우 예쁜 아줌마를 만났지 않은가!
  • 그는 의자에서 내려와 짧다란 다리로 몇 걸음 내디뎌 온시윤의 곁으로 달려갔다.
  • 반민한은 시큰둥하게 콧방귀를 뀌고는 말했다.
  • “돌아가려면 아빠 혼자 돌아가요. 난 예쁜 아줌마랑 있을 거니까 아빠랑 함께 돌아갈 생각이 없어요.”
  • 말을 마친 그는 이내 온시윤의 다리를 끌어안고 손을 놓지 않았다.
  • 반진혁의 시선은 온시윤에게로 향했고, 그 눈빛은 아주 차갑고 깊이를 알 수 없었지만 그녀에 대한 궁금증도 가득했다.
  • 온시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조금 난감했다. 반민한이 삐져서 심술을 부리는 걸 알기에 그녀도 얼른 그를 달랬다.
  • “한아, 네가 아줌마를 좋아하는 걸 알지만 이렇게 하면 안 돼. 아줌마도 해야 할 일이 있어, 단장님, 그렇죠?”
  • 온시윤은 말을 하면서 이동준 단장에게 눈짓을 했다.
  • 이동준은 상황을 다 알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맞장구를 쳤다.
  • “네, 꼬마 도련님. 시윤이는 이따가 일이 있어서 도련님과 같이 있어줄 시간이 없어요.”
  • “아, 그렇구나…”
  • 그 말에 반민한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 하지만 꼬마 녀석은 포기하지 않았다.
  • 그는 얇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더니 다시 고개를 들었고 반짝반짝 빛이 나는 맑은 눈동자로 귀엽게 물었다.
  • “그럼 아줌마, 우리 같이 점심 먹는 건 어때요?”
  • “그게…”
  • 온시윤은 거듭 반민한을 거절했지만 꼬마 녀석의 불쌍한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 그러나 반진혁의 침울한 안색을 본 온시윤은 반진혁이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 하여 어쩔 수없이 다시 거절했다.
  • “한아, 그것도 안 될 것 같아.”
  • 이 말을 들은 반민한은 코를 훌쩍이더니 순식간에 눈시울을 붉혔고 입을 삐쭉 내민 채 당장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 같았다.
  • 온시윤은 마음이 아팠고 반민한을 달래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얼른 고개를 들어 반진혁을 바라봤다.
  • 반진혁은 미간을 문지르며 어쩔 수 없이 말했다.
  • “밥만 먹고 나면 집에 돌아간다고 약속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