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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게 밴 너의 향기에 취해

짙게 밴 너의 향기에 취해

시온

Last update: 2023-03-03

제1화 생이별

  • “이 여자가 내 아이를 낳아줄 여자야?”
  • “네, 도련님. 운성에서 이분의 유전자만 도련님과 매칭됩니다.”
  • 어둠 속에서 온시윤은 흐릿한 정신으로 큰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온몸이 불에 타듯 뜨거워 무의식적으로 얇은 옷을 찢게 되었다.
  • “너무 더워, 고통스러워…”
  • 문이 닫히고 훤칠한 실루엣이 침대 옆으로 다가왔다.
  • 온시윤은 눈을 뜨고 그를 확인하려고 애썼지만 날카로운 얼굴 윤곽만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그의 내면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고귀한 포스가 느껴졌다.
  • 그가 다가올수록 숨이 막혀왔다.
  • 곧이어 몸이 무거워지더니 뜨거운 몸에 닿은 건장한 체구가 청량함을 선사했다.
  • “아, 너무 편해…”
  • 그 순간 온시윤은 겁을 먹을 틈도 없이 그저 그 남자에게서 시원함을 더 얻고 싶었다.
  • 그녀는 그에게 달라붙어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꿈틀거렸다.
  • “더 해줘…”
  • 반진혁의 눈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척추 깊은 곳에서부터 건조하고 뜨거운 열기가 퍼졌다.
  • “함부로 움직이지 마요.”
  • 나지막하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어두운 욕정에 물들어 있었다.
  • 반 가의 유전자가 특이해서 그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고 이 여자도 그중 한 명이었다.
  • 그는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오늘 이곳에 온 것도 어르신의 미션을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 다만 이 낯선 여자에게 충동이 생길 줄은 정말 몰랐다…
  • 품속의 여자는 그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그를 꽉 붙잡고 그의 몸에 마구 비볐다.
  •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금욕적이던 남자는 순간 사나운 늑대로 변신해 돌연 온시윤의 허리를 돌렸다.
  • “이거, 당신이 자초한 거예요!”
  • “아!”
  • 갑자기 찢어지는 듯한 심한 통증이 온시윤의 몸을 관통했다. 그녀는 그 순간 잠시 굳어졌다.
  • 극심한 아픔이 그녀의 머리를 잠시나마 맑게 했다.
  • 그는 누구야? 난 왜 여기 있는 거지?
  • 어머니가 그녀에게 물려준 유산에 대해 새엄마와 따지다가 정신을 잃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깨어나 보니 이 낯선 곳이었다…
  • 강렬한 충격이 그녀의 상념을 끊었다.
  • “아파…”
  • 온시윤은 거부했지만 남자는 조금도 멈추지 않고 강압적으로 그녀의 몸을 공략했다…
  • 땀과 숨결이 어두운 밤에서 뒤엉켰다. 남자는 지칠 줄 모르는 영구 기관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그녀를 괴롭혔다.
  • “아!”
  • 머리까지 찌릿한 오르가슴에 온시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신음했다. 그러고는 완전히 곯아떨어졌다.
  • 긴 머리가 등 뒤로 흘러내려 가느다란 어깨뼈가 드러났다. 날갯짓하는 어두운 나비 한 마리가 반진혁의 눈에 들어왔다…
  • 10개월 뒤, 제일병원 분만실.
  • “아! 아파요, 아파…”
  • 온시윤은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그녀는 하얗게 질린 손가락으로 침대의 가드레일을 꽉 움켜쥐고 극심한 복통을 한 번 또 한 번 받아냈다.
  • “힘을 주세요, 더 주세요. 아이 머리가 보입니다…”
  • “응애-”
  • 또랑또랑한 울음소리가 분만실에 울려 퍼지며 새 생명의 탄생을 알렸다.
  • “임무를 끝내셨습니다. 앞으로 온시윤 씨는 이 아이와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 싸늘한 목소리가 귓가에 흘러들었다. 온시윤은 창백해진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어서 막 태어난 아이가 다른 사람의 품에 안겨 나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아이, 내 아이…”
  •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 그때 그 낯선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 뒤, 온시윤은 연금되었다.
  • 얼마 뒤, 그녀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았다.
  • 그녀를 감시하는 사람은 아이가 태어나면 그녀의 남동생이 가장 좋은 치료를 받게 될 거라고 했다.
  • 그 말을 들은 온시윤은 고민도 하지 않고 승낙했다!
  • 남동생은 어려서부터 다리가 불편했고 심장이 약해서 병상에 누워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악독한 새엄마가 그녀를 집 밖으로 쫓아내고 동생의 치료비를 끊어버려 동생은 여러 차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다.
  •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남동생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 남동생을 살릴 수만 있다면 낯선 사람의 아이를 낳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녀는 목숨이라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 다만…
  • 뱃속의 작은 생명이 조금씩 자라면서 아이의 태동을 느끼고 활기찬 생명력을 느끼던 온시윤은 갈수록 아쉬움이 깊어졌다…
  • 아이는 그녀의 몸에서 떨어진 살 덩어리고 그녀의 목숨 반쪽이었다!
  • 이제, 그 반쪽 목숨은 그녀를 완전히 떠나버렸다…
  • 병원 밖에는 최고급 마이바흐 한 대가 어둠 속에 멈춰 있었다.
  • 뒷좌석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 그의 얼굴은 위엄 있었고 눈빛은 매서웠으며 온몸에 위압감이 감돌았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가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 “어르신 축하드립니다. 도련님이에요.”
  • 그 말을 들은 노인은 눈빛을 반짝이더니 활짝 웃으며 아직도 울고 있는 아기를 받았다.
  • “좋아, 아주 좋아! 드디어 나에게 증손자가 생겼군!”
  • 이내 노인은 말투가 돌변하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옆에 있던 보좌관에게 분부했다.
  • “반진혁한테 말해. 그 여자가 20억으로 아이를 바꾸고 바로 떠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