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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한이가 편을 들어주다

  • 그 목소리에 모두들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 어느새 귀엽고 말랑말랑한 호빵 같은 아이가 문 앞에 나타나 있었다.
  • 남자아이는 네 다섯 살쯤 돼 보였는데 하얀 셔츠에 검은색 멜빵바지를 입고 작은 구두까지 신고 있었다. 아이는 꼬마 신사, 귀족 도련님처럼 보였다.
  • “너무 귀여운 어린이다!”
  • “어디서 나타난 거지? 너무 귀여운 거 아닌가.”
  • 현장에 있던 사람들 중에는 그 아이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다들 귀엽다는 생각으로 그 아이를 훑어보았다.
  • 온시윤도 그 아이를 보았다. 통통한 얼굴에 세련되고 멋진 이목구비가 오밀조밀 박혀 있었는데 어른이 되면 얼마나 잘생겨질지 짐작할 수 있었다.
  • 아이는 나이가 어렸지만 얼굴을 찌푸린 모습이 엄숙해 보였다. 게다가 정말 위엄도 조금 있어서 어른 같았다.
  • “당신, 당신이 사과해야 할 사람이에요!”
  • 남자아이는 싸늘한 눈빛으로 온서아를 가리켰다.
  • 온서아는 안색이 확 달라지더니 이내 화를 냈다.
  • “어디서 나온 꼬맹이길래 이렇게 헛소리를 해? 현이 망가진 건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데 내가 왜 사과해야 하는데?”
  • “건방지군요!”
  •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의 뒤에 있던 두 명의 경호원이 엄격한 목소리로 온서아에게 호통쳤다.
  • “어디에서 온 여자길래 저희 꼬마 도련님께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 꼬마 도련님?
  • 온서아는 그대로 멈칫해서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 옆에 있던 이동준은 머리를 탁 쳤다. 저 아이가 바로 FJ 그룹의 꼬마 도련님이 아닌가!
  • 그는 서둘러 다가가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반 가 꼬마 도련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 그 말을 들은 온서아는 안색이 급격히 변했다.
  • 뭐라고?
  • 이 꼬맹이가 반 가의 꼬마 도련님이야? 오늘의 생일 주인공?
  • 녀석은 여전히 정색을 한 채 말랑말랑한 목소리였지만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 “내가 방금 여길 지나치다가 똑똑히 봤어요. 이 여자가 저기 예쁜 아줌마한테 발을 걸었어요.”
  • 온시윤은 자신과 일면식도 없는 아이가 편을 들어주자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더욱 부드러워졌다.
  • 온서아는 그 말에 당황했다. 그녀는 겁에 질려 웃으면서 다급히 설명했다.
  • “꼬마 도련님, 증거를 갖고 말씀하셔야죠. 증거가 없는 일은 함부로 말할 수 없어요.”
  • 녀석은 싸늘하게 웃더니 정색을 하고 말했다.
  • “누가 증거가 없대요?”
  • 아이는 말을 마치고 손뼉을 쳤다. 이내 문밖에서 카메라를 든 카메라맨이 들어왔다.
  • 카메라맨은 카메라를 들고 싸늘한 목소리로 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 “저는 오늘 도련님의 생일 연회 촬영을 맡은 담당자입니다. 아까 그 장면도 물론 찍혔고요. 당신이 저 아가씨에게 발을 걸어서 반 가 사모님의 바이올린이 망가진 겁니다.”
  • 그 말을 들은 온서아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 그녀는 분하고 화가 나서 얼굴을 찡그렸지만 대꾸할 말이 없었다.
  • 젠장, 조금만 운이 좋았다면 다시 온시윤을 지옥에 떨어뜨릴 수 있었을 텐데…
  • “그 바이올린은 할머니가 아끼시는 보물이에요. 12억이라고요! 당신, 물어내요!”
  • 꼬마는 엄숙하게 말했다.
  • 쾅!
  • 온서아의 얼굴이 순간 잿빛이 되었다.
  • 12억?!
  • 온 가는 요 몇 년 동안 사업이 안 좋아지고 있었다.
  • 그래서 온서아에게 12억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숫자였다!
  • 온서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서둘러 고개를 숙이고 잘못을 인정했다.
  • “죄송합니다, 도련님. 정말 죄송합니다. 아까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공간이 협소해서 미처 넘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 “그렇게 비싼 바이올린을 제가 어떻게 감히 망가뜨릴 수 있겠습니까! 온시윤… 너 빨리 도련님한테 말 좀 해!”
  • 마지막 말이 명령조로 들렸다.
  • 온시윤의 안색은 방금 전보다 더 어두워졌다.
  • 이 여자, 정말 파렴치하구나!
  • 그녀를 모함할 때는 쉽게 말하더니 이제 와서 부탁을 해?
  • 온시윤이 입을 열기도 전에 녀석은 사나운 말투로 온서아에게 쏘아붙였다.
  • “바이올린을 망가뜨렸으니까 물어내야 해요! 나쁜 짓을 했으니까 예쁜 아줌마한테 사과해야 하고요! 얼른, 돈 물어내고 사과해요!”
  • 녀석은 경단처럼 작았지만 어른스럽게 말했고 상대가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
  • 온서아의 얼굴이 순간 울그락 푸르락했다.
  • 온시윤을 골탕 먹이기는커녕 그녀한테 사과를 해야 한다고?! 그녀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 게다가 그녀 자신을 팔아도 12억을 물어낼 수가 없었다!
  •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리자 그녀는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온서아는 그렇게 정신을 잃고 말았다!
  • 현장은 조금 혼란스러워졌다.
  •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이의 눈 밑에 하찮음이 스쳤다.
  • 이 정도로 쓰러져?
  • 아까 사람을 모함할 때는 날뛰더니?
  • 녀석은 고개를 돌려 경호원에게 명령했다.
  • “데려가서 잘 지켜보고 있어요. 돈 물어내라고 하고 손해배상을 하지 못하면 경찰서에 보내요!”
  • “네.”
  • 명령을 받은 경호원 중 한 명이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가 온서아를 끌어냈다.
  • 휴게실에 있던 모두가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 그 꼬마 도련님은 반 가의 사람답게 어렸지만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 녀석은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돌려 온시윤을 바라보더니 차가운 표정을 거두었다.
  • 아이는 맑은 눈동자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는데 무언가를 살피고 있는 것 같았다.
  • 온시윤도 그 아이를 쳐다보았다.
  • 녀석은 입술이 붉고 이가 하얬는데 이목구비가 제대로 자라진 않았어도 이미 용모가 수려했다. 정색을 하고 시크한 모습이 마치 진지한 호빵처럼 사랑스러워서 한 입 베어 물고 싶어졌다.
  • 그 생각을 막 끝냈는데 녀석이 갑자기 뚜벅뚜벅 짧은 다리를 내디디며 온시윤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고개를 들고 그녀를 향해 팔을 벌렸다.
  • “안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