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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우아한 욕설

  • 이빈은 목소리의 주인이 온서준임을 단박에 알아차리고서 주저 없이 거절했다.
  • “철수 아저씨랑 밖에서 먹고 왔으니까 신경 쓰지 마.”
  • 통화를 마친 이빈은 맞은편에 있는 임철수를 향해 싱긋 미소 지었다. 임철수도 이빈이 회사로 오게 된 이유를 막 알게 되었던 참이었다.
  • “빈아, 내가 온 씨 가문 다섯 도련님들 모두 만나 뵌 적 있잖아. 그중에서 남편감으로는 온서준이 가장 나은 것 같아. 회사 대표 자리에 앉은 뒤로 실적이 몇 배는 뛰었다고 들었어. 사람됨도 듬직하고 훌륭하니 잘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거야.”
  • 그 말에 물을 들이켜던 이빈의 얼굴이 불쾌하게 일그러졌다.
  • “싫어요. 그 사람은 얼음장 같아서 마음에 안 들어요.”
  • 이빈은 온서준처럼 고압적이고 차가운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다. 아침에 했던 말도 사실은 일부터 온서준을 화나게 하기 위해 내뱉은 것이었다.
  • 불만 섞인 목소리로 구시렁거리는 이빈의 모습에 임철수가 껄껄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온 씨 일가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 점심을 먹고 회사로 돌아온 뒤에도 이빈은 여전히 임철수의 경비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 오후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온서준은 비서에게 이빈의 행방을 물었다. 이빈이 아직도 경비실에 있다는 얘기를 들은 온서준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 아침까지만 해도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하더니 하루 종일 경비실에만 틀어박혀 있는다고? 대체 무슨 속셈이지?
  •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온서준이 이내 입을 열었다.
  • “임철수에 대해 조사해 봐. 이빈과 무슨 관계인지도 알아오고.”
  • “네, 대표님.”
  • 비서가 사무실을 나가려던 찰나, 온서준이 다시 지시를 내렸다.
  • “이빈을 불러와.”
  • 잠시 후 사무실에 나타난 이빈은 무감한 눈으로 사무실을 훑어보더니 나른하게 물었다.
  • “왜?”
  • “하루 종일 경비실에 있었다는 사실이 아버지 귀에 들어가면 안 좋을 것 같은데.”
  • 터무니없는 이유에 이빈이 눈을 흘겼다.
  • “그쪽이 올라오라고 했으니까 업무에 방해가 되더라도 날 탓하지 마.”
  • 그러고는 소파에 털썩 걸터앉았다.
  • 온서준은 무시하고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제 집인 양 소파에 기대어 있던 이빈이 볼륨을 최대로 높인 채 폰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 그 모습에 온서준은 불쾌한 듯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 그로부터 정확히 8 분 뒤, 이빈이 팀원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소리가 들렸다.
  • “지금 어디서 트롤 질이야!”
  • “제발 발 말고 손으로 게임하면 안 돼?”
  • “너 이 자식 부활 가능한 미니언이지!”
  • “…”
  • 욕도 아주 우아하고 맛깔나게 했다.
  • 상대도 화가 많이 난 상태인지 이내 휴대전화 너머로 차마 입에 담기에도 험한 욕설들이 난무했다.
  • 순간 온서준은 이빈을 사무실로 데려온 것을 진심으로 후회했다. 어쩌면 일부러 그를 괴롭히기 위해 볼륨을 높였으리라.
  • 이빈이 가장 마음에 든 상대가 자신이라던 얘기도 의심스러웠다. 제일 싫어하는 상대면 몰라도. 아니, 제일 싫은 건 온혁이려나.
  • 다행히 온서준이 일을 마칠 때 즈음 이빈의 게임도 끝난 것 같았다. 온서준은 이내 외투를 챙기고 몸을 일으켰다.
  • 하지만 사무실을 막 나서려던 찰나, 비서가 들어왔다. 비서를 힐긋 바라보던 온서준은 이빈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어.”
  • 이빈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사무실을 나섰다.
  • 이빈이 나가자 비서가 조사 결과를 보고하기 시작했다.
  • “대표님께서 예상하신 대로 임철수 확실히 보통내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강성에 본인 명의로 되어있는 오피스텔과 아파트 등,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이 어마어마합니다.”
  • 그 말인즉슨, 수천억대 몸값을 자랑하는 어르신이 무료한 삶을 견디기 위한 일탈로 경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 “이빈 씨랑은 무슨 사이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 그 말에 온서준은 생각에 잠겼다. 강성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빈이 어떻게 그런 사람과 알고 지냈을까. 그러고 보니 허민우와도 아는 사이였지.
  • 은연중에 이빈이 결코 만만한 사람은 아닐 것이라는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 하지만 온서준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 설령 그렇다고 한들 그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지 않는가. 그는 그냥 임철수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지 확인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