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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기대를 꺾는 재미

  • 온혁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온서준의 팔을 잡더니 불평을 늘어놓았다.
  • “형, 쟤 좀 봐. 자기 돈도 아니고 남의 돈 쓰면서 뭐가 그렇게 당당한 거야. 심지어 자기 것만 샀어. 셋째 형 선물은 하나도 없고!”
  • 차 안에서 들려오는 온혁의 불평에 이빈은 어이없다는 듯 눈을 희번덕거렸다.
  • 곧 저녁이 되어 식사를 마치고 이빈은 심플한 블랙 드레스로 갈아입고서 일행들과 함께 콘서트장으로 향했다.
  • 그들은 2 열에 착석했다. 방지연은 냉큼 온서준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 이빈도 개의치 않고 온시안의 옆자리에 앉았다.
  • 곧 콘서트가 시작되고 온훈이 무대에 나타났다. 검은색 양복을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온훈은 톱클래스 연예인답게 정말 수려한 외모를 자랑했다.
  • 온훈이 무대에 오르자 무대 아래에서 귀청이 터질 듯한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 온훈이 한 시간 동안 논스톱으로 노래 몇 곡을 부르고 다음 코너로 넘어가자 사회자가 천천히 무대에 올랐다.
  • “네, 오늘 온훈 씨 데뷔 10 주년을 맞이하여 여러분을 위해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곧 추첨을 통해 선택된 행운스러운 팬분은 무대에 올라 온훈 씨와 듀엣곡을 부를 수 있는 행운을 드리겠습니다.”
  • 그 말에 무대 아래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고 팬들이 잔뜩 격앙된 목소리로 환호성을 질렀다.
  • 스크린에 떠오른 숫자가 휘리릭 돌아가더니 이내 26에서 멈췄다.
  • 추첨되지 못한 팬들에게서 쏟아진 탄식들 틈에 26 번 자리에 누가 앉았는지에 대한 호기심 어린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 그때, 옆에 앉은 온시안이 호들갑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대박. 26 번이면 이빈 너잖아!”
  • 그 말에 이빈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무대 위에서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26번 팬을 무대로 모시겠습니다.”
  • 이빈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렇게 기막힌 우연이 있을 수 있다고?
  • 의심의 눈초리로 주변을 훑어보자 의미심장하게 웃고 있는 방지연이 보였다.
  • 그제야 어떻게 된 영문인지 깨달았다. 아무래도 누군가 그녀를 바보로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그 장단에 맞춰줘야지.
  • 이빈은 무수히 많은 시선을 견뎌내며 태연하게 무대 위로 올라갔다.
  • 무대 위로 올라오는 이빈의 모습에 온훈의 눈이 살짝 커졌다.
  • 그때, 사회자가 호탕하게 웃으며 감탄을 쏟아냈다.
  • “너무 아름다우시네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 “이빈입니다.”
  • 이빈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그 말에 무대 아래가 술렁거렸다.
  • 이빈이라면, 설마 온 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다는 그 촌뜨기?
  • 그 여자가 이렇게 예뻤다고?
  • 오늘 온훈의 콘서트를 보러 온 팬들 중에 반 이상이 유사 연애타입으로 덕 질하는 여자친구 팬들이었다. 덕택에 이빈을 향한 시선들에 시기와 질투가 넘실거렸다.
  • “다음으로 들려드릴 곡은 나린의 ‘굿나잇’을 리메이크한 곡입니다. 이빈 씨도 이 노래 들어보셨죠? 고조로 이어지는 부분만 듀엣으로 불러주시면 됩니다.”
  • 나린은 잘나가는 여가수였다. 극한의 신비주의자라 아무도 그녀의 외모를 본 적 없지만 그녀의 노래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졌다.
  • 사회자가 마이크를 건네주자 잠시 멈칫하던 이빈이 입술을 달싹였다.
  • “나린 님의 노래라면 당연히 들어본 적 있지만 제가 음치라서 노래를 못해요. 죄송합니다.”
  • 그러자 무대 아래가 또다시 소란스러웠다.
  • “망신당하기 전에 내려와! 노래 부를 줄도 모르면서 무슨 재주로 온 씨 가문과 혼약을 맺은 거야?”
  • “내 남신 옆에 서지 마. 짜증 나니까.”
  • “이빈은 꺼져!”
  • 이빈이 눈을 살짝 감았다. 그녀가 망신당하는 꼴을 보기 위해 혈안이었던 사람들은 지금쯤 아주 신이 나 있을 것이다.
  • 그럴수록 기대를 꺾는 재미도 쏠쏠한 법이지.
  • 사회자의 손에서 마이크를 받아든 이빈이 온훈을 응시하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지만 연주는 가능해.”
  • “굿나잇”의 사운드트랙은 피아노 연주곡이었다.
  • 온훈은 미심쩍은 얼굴로 이빈을 바라보았다. 노래 부를 줄은 모르는데 연주는 가능하다고? 지금 장난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