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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번갈아 가며 친해지기

  • 돌아가는 차 안은 내내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 중 속에 품고 있는 의문을 입 밖으로 내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현관을 들어서자 소파에서 이 여사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제 강성에 온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늦게까지 놀아? 어떤 돼먹지도 못한 놈이랑 붙어먹었는지도 모르는 너 같은 여자를 어떻게 우리 아들과 결혼시킬 수 있겠어?”
  • 그 말에 옆에 있던 온 회장도 인상을 구겼다. 이빈의 사람됨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늦어지는 귀가에 내내 걱정만 하다 연락하려던 찰나였다.
  • 하지만 이내 온서준과 함께 들어오는 이빈의 모습을 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서준이랑 함께 있었구나.”
  •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온서준의 모습에 온 회장이 흐뭇하게 웃었다.
  • “빈아, 이제 슬슬 결혼 상대를 정해야 하지 않겠어? 그래서 아저씨가 생각해 보았는데 다섯 형제랑 번갈아 가면서 만나보는 건 어때? 그러다가 가장 마음에 드는 놈을 네 짝으로 정하는 거야. 괜찮지?”
  • “좋아요, 아저씨.”
  • 이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이 여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찼다.
  • 온 회장의 결정에 불만이 가득했지만 쉽게 고집을 꺾을 양반이 아니었기에 그저 불쾌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이빈을 노려볼 뿐이었다.
  • 다음날 아침 일찍, 잠결에 들려오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이빈은 스르르 눈을 떴다.
  •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억누르며 문을 연 이빈은 불쾌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검은 정장 차림의 온서준이 응시했다.
  • 그러자 온서준이 일말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서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얼른 준비하고 나와. 회사 갈 거야.”
  • 회사는 뭐 하러?
  • 의문이 떠오름과 동시에 온서준을 시작으로 앞으로 한 사람씩 번갈아 가면서 만나보라던 온 회장의 목소리가 뇌리를 스쳤다.
  • 이빈은 기지개를 켜고서 느릿느릿 화장실로 걸어 들어갔다.
  • 준비를 마치고 나오자 이미 30 분이 흐른 뒤였다.
  • 이빈은 나른하게 온서준의 차에 올라탔다.
  • 온서준이 차에 시동을 걸더니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 “너랑 시간을 보내는 건 어디까지나 우리 아버지가 그걸 원해서야. 널 회사에 데려가면 맡은 바 소임은 다하겠지만 널 좋아할 리는 없어. 그러니까 너도 나에 대해 궁금해하지 마.”
  • 그 말에 이빈이 눈꺼풀을 들어 운전석에 앉은 온서준을 힐끗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방금 전까지 덕지덕지 묻어있던 졸음은 온데간데없었다.
  • 이빈이 짓궂게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입을 열었다.
  • “그래? 근데 어떡하지? 지난 이틀 동안 관찰해 본 결과, 그쪽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 온서준의 눈동자에 불쾌한 기색이 서렸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또다시 차 안에 울렸다.
  • “충고하는데 엄한 곳에 힘 빼지 마.”
  • 이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미소 지었다.
  • 회사에 도착하고 차에서 함께 내리는 두 사람의 모습에 지나가던 직원들의 시선이 쏠렸다.
  • “대박, 대표님 곁에 서있는 저 아리따운 여자는 누구야? 다리 길이 좀 봐. 세상에!”
  • “너무 예뻐. 대표님이랑도 너무 잘 어울려!”
  • “저 여자가 이빈이야. 어제 대표님 댁에 서류 배달하러 갔다가 봤어.”
  • 여자가 이빈이라는 얘기에 사람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변했다. 사진이랑 차이가 너무 큰 거 아닌가.
  • 작은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이빈이 당연히 못생기고 촌스러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고귀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더라는 소문은 빠르게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 퍼져 나갔다.
  • 경비실의 경비원에게 차 열쇠를 건네는 온서준의 옆에서 걸음을 내디디려던 이빈은 깜짝 놀라며 호들갑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 “철수 아저씨!”
  • 그 목소리에 경비복을 입은 사내가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반색을 했다.
  • “빈이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
  • 온서준은 의아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자 이빈이 온서준을 향해 말했다.
  • “먼저 올라가. 난 철수 아저씨랑 주차하러 갈게.”
  • 그러고는 임철수를 따라 차에 올라탔다.
  • 이빈이 가는 곳마다 그녀를 지켜보는 시선들이 진득하게 달라붙었다. 당연히 온서준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을 줄 알았던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이빈은 오전 내내 경비실에만 처박혀 있었다.
  • 그러자 사람들은 또다시 조롱 섞인 시선으로 이빈을 바라보았다.
  • “누가 시골 출신 아니랄까 봐 끼리끼리 어울리네.”
  • “그 경비원도 같은 시골 출신인가 보지 뭐.”
  • “예쁘면 뭐해. 이렇게 시야가 좁은데. 온 씨 가문에서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혼담에 응했는지 몰라.”
  • 사람들의 입에 어떻게 오르내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이빈은 교대를 마친 임철수와 함께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 통화 버튼을 누르자 전화기 너머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사무실에 올라와 밥 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