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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보는 눈이 나쁘지 않아요

  • 순간 온시안이 경직된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었다.
  • “에이, 그러지는 말고.”
  •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온시안은 바쁜 일정에 뛰어들었고 이빈은 또 경비실에서 하루를 보냈다.
  • 셋째 날 상대는 온훈이었다.
  • 온훈은 연예계에서 수천만 명의 팬을 보유하고 있는 탑 연예인이었다. 오늘은 마침 온훈의 생일이자 데뷔 10주년이 되는 날로 저녁에 열릴 콘서트를 준비하느라 이빈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 온 씨 가문 다섯 형제도 콘서트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 오후가 되자 방지연이 온 가에 방문했다.
  • 낮잠을 자고 깨어난 이빈이 일층으로 내려오자 방지연이 싱긋 웃으며 다가오더니 친근하게 말을 붙였다.
  • “이빈 씨, 저희 지금 온훈의 생일 선물도 고를 겸 쇼핑하러 백화점에 갈 예정인데 같이 갈래요?”
  • 잠시 고민하던 이빈은 부러 거절하지 않고 그들을 따라 온 가를 나섰다.
  • 백화점에 도착하자마자 방지연은 이빈을 데리고 고가 브랜드의 여성복 매장에 들어갔다.
  • “이빈 씨는 예쁘니까 원피스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
  • 그렇게 말하며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내 네 명을 힐긋 바라보던 방지연이 이내 진열대에서 짙은 녹색 원피스를 꺼내 들었다.
  • “이거 예쁜데 한번 입어볼래요?”
  • 힐긋 훑어본 원피스는 아주 올드 한 스타일이었다.
  • 이빈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방지연이 또 다른 원피스를 들이밀며 물었다.
  • “이거는 어때요?”
  • 가늘게 뜬 눈으로 펑퍼짐하고 노출이 심한 원피스를 바라보던 이빈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 “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걸 알겠으니까 그만하죠. 이렇게 유치한 방법으로 괴롭힐 필요도 없고요. 시골 출신인 건 사실이지만 제가 방지연 씨보다 보는 눈이 나은 것 같네요.”
  • “이빈 씨, 저한테 오해가 있으신 거 아니에요…”
  • 방지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 이빈의 말대로 시골 출신이라고 무시했던 건 사실이었다. 평범한 티셔츠만 주구장창 입는 모습을 보고 당연히 패션에 무지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 이빈은 방지연의 기분이 어떻든 아랑곳하지 않고 행거에 걸린 옷들을 훑어보다 마음에 드는 옷들을 점원에게 부탁해 포장하게 했다.
  • 그러고서 결제하기 위해 계산대에 다가가 휴대전화를 꺼내들었을 때였다.
  • 길쭉한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블랙카드가 불쑥 점원에게 내밀어졌다.
  • “카드로 하겠습니다.”
  • 온서준이었다.
  • 온서준의 수려한 외모를 멍하니 바라보던 점원이 흠칫 몸을 떨더니 황급히 블랙카드를 받아들었다.
  • “고마워.”
  • 이빈의 담담한 목소리에 온서준이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 “오해하지 마. 아버지가 시킨 거니까.”
  •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매장을 나갔다. 멀어지는 온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이빈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 두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던 방지연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빈을 응시하는 눈동자가 음산한 빛을 내며 번뜩였다.
  • 백화점을 나설 때, 등 뒤에서 따라오는 두 명의 경호원들 손에는 넘쳐날 만큼 많은 양의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6억은 넘게 쓴 것 같았다!
  • 그 옆에서 온혁이 시니컬하게 입을 열었다.
  • “누구는 참 염치없어. 남의 돈으로 아무렇지 않게 이렇게 많은 물건을 사다니. 역시 시골 출신이라 그런가 예의를 몰라.”
  • 온혁은 털도 제대로 자라지 않은 어린애라던 이빈의 조롱을 아직 잊지 못했다.
  • 온 씨 가문의 막내이긴 하지만 그도 이젠 18 살이었다.
  • 이빈이 무어라 반박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방지연이 불쑥 끼어들었다.
  • “온혁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이빈 씨는 그냥 생각 없이 산 것뿐이야.”
  • “두 번 생각 없었다가 재산이 거덜 나겠어!”
  • 그 말에 이빈이 흥 하고 콧방귀를 뀌고서 심드렁한 얼굴로 쏘아붙였다.
  • “내가 네 카드 썼어?”
  • 온혁의 안색이 굳어졌다.
  • “우리 형 돈이잖아!”
  • “그래, 네 돈이 아닌 네 형 돈이지. 네 형도 아무 말 하지 않는데 네가 뭔데 간섭이야!”
  •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차에 올라탔다.
  •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사람들이 너털웃음을 터드렸다.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는 이빈이 제법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