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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미스터리 여인

  • “그럼 이제 진정하고 이빈 씨와 온훈 씨의 컬래버레이션 곡 ‘굿나잇’을 들어보겠습니다.”
  • 이빈이 피아노 스탠드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자 장내는 일순 고요해졌다.
  • 이어 인트로가 흘러나오자 이빈이 실제로 연주할 줄은 몰랐던 온훈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 온훈은 곧 진지한 모습으로 노래를 불렀다.
  • 사전 리허설도, 컬래버레이션 경험도 없었지만 두 사람이 선보인 연주는 그야말로 찰떡궁합이었다.
  • 온훈이 마이크를 잡은 채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이빈을 그윽하게 바라보자 팬들이 또다시 고함을 질렀다.
  • 그 모습에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방지연도 흐뭇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 “이빈 씨 연주 실력이 이렇게 출중할 줄 몰랐어. 저 정도 실력이면 상급자일 것 같은데. 한 명은 연주하고 다른 한 명은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두 사람 그림처럼 잘 어울리네!”
  • 입으로는 짐짓 감탄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이빈을 아니꼽게 생각했다.
  • 지금 그들이 위치한 체육관은 BK 그룹 소유였다. 덕분에 추첨 기계에 손쉽게 다가갈 수 있었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 살짝 손을 보았다.
  • 이빈을 무대에 올려 창피당하게 할 예정이었는데 이렇게 될 줄은…
  • 그 말에 온서준의 시선이 다시 무대 위에 있는 이빈을 향했다.
  • 목뒤로 자연스럽게 드리운 웨이브 진 머리카락이 조명 빛을 받아 고혹적이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녀는 어딘가 사람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력이 있었다.
  • 온훈과 함께 무대에 서있는 이빈의 모습이 어쩐지 눈에 거슬렸다. 저게 어울려?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데.
  • 노래가 끝나자 무대 아래에서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 무대에서 내려온 이빈은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볼일을 마치고 화장실을 나오다 문 앞에서 갈색 원피스를 입은 미모의 여성 한 분을 마주쳤다.
  •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온몸으로 내뿜는 우아하고 고상한 분위기는 여러모로 보아도 부잣집 사모님임이 틀림없었다.
  • “이빈 씨 맞죠? 아까 연주가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이거 선물이에요.”
  • 그렇게 말하며 여인은 섬세하게 포장된 튤립을 이빈에게 건넸다. 이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꽃다발을 받아 들었다.
  • “저 아세요?”
  • “아니요. 연주가 너무 좋아서요. 그럼 이만 가볼게요.”
  • 몸을 돌린 여인의 눈에는 미처 갈무리하지 못한 슬픔이 가득 배어 있었다.
  • 이빈은 멍하니 멀어지는 여인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손에 든 묵직한 꽃다발을 바라보자 기묘한 감정이 일렁였다.
  • 그로부터 2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콘서트가 막을 내렸다.
  • 온 씨 가문 다섯 형제와 방지연과 함께 돌아온 온 가에는 온시형 내외가 온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풍성한 저녁상을 차리고서 기다리고 있었다.
  • 촛불을 불고 케이크를 자르자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한 선물들을 꺼냈다.
  • 재벌 가문 답지 않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느끼며 이빈도 느릿하게 준비한 선물을 내놓았다.
  • 온훈은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서 선물 포장을 하나씩 뜯기 시작했다.
  • 부동산 문서, 고급 시계, 유람선 등 전부 값비싼 선물들뿐이었다.
  • 이빈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선물 상자를 온훈에게 내밀었다. 오늘 백화점에서 이빈이 온훈의 선물로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녀가 대충 준비한 선물로 적당히 때우려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 무심한 얼굴로 선물 박스를 뜯던 온훈의 표정이 경악으로 변했다.
  • 박스 안에는 전 세계에 단 하나뿐인 lare 브랜드의 마이크가 들어있었다. 일전에 경매에 부쳐진 적이 있었는데 베일에 싸인 누군가가 20억에 낙찰했다고 들었다.
  • 경매를 놓쳤지만 내내 잊을 수 없어 온훈이 여러 루트를 통해 낙찰자를 찾았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 온혁이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다.
  • “설마 가짜는 아니겠지?”
  • 의심하고 있는 온혁과 달리 그 마이크가 가짜가 아님을 단번에 알아챈 온훈은 격앙된 목소리로 횡설수설했다.
  • “x 발, 정말 이걸 나한테 주는 거야?”
  • 이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고작 마이크 하나에 이렇게 흥분하다니, 이렇게 시야가 좁은 사람이었나.
  • “어디서 구한 거야?”
  • 온훈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 “내가 피아노 좀 치잖아. 예전에 그 마이크를 낙찰한 사람이 가수 데뷔하라며 선물한 건데 내가 노래를 못해서 너 줄게.”
  • 대충 생각해둔 핑계를 늘어놓던 이빈이 이내 말을 덧붙였다.
  • “생일 축하해. 전 피곤해서 이만 올라가 볼게요.”
  • 온 씨 일가는 다시 한번 이빈에게 놀랐다. 아무래도 그들이 준비한 선물들은 이빈의 선물에 묻혀버린 것 같았다.
  • 이번 일로 이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 빛 좋은 개살구에 아무것도 모르는 천치라고 생각하던 사람들도 자신들이 잘못 생각했음을 슬슬 깨닫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