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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우리의 아빠였으면 좋겠어!

  • 자기를 아줌마라고 부르자, 한여빈은 몹시 어이가 없었다.
  • ‘아... 아줌마?’
  • 한편, 한이서는 한아린이 일부러 한여빈을 아줌마라고 불렀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속으로 한아린을 응원했다.
  • ‘내 딸, 아주 잘했어!’
  • 한이서는 하마터면 통쾌하게 웃을 뻔했다.
  • 한재혁은 풀이 죽고 겁먹은 듯한 한아린의 모습을 보자 가슴이 아팠다.
  •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정수에게 명령했다.
  • “한여빈 씨, 모셔다드려!”
  • 정수는 한여빈을 향해 앞으로 가자는 뜻으로 손짓했다.
  • 한여빈은 씩씩거리며 한이서를 노려보았는데 눈으로 한이서를 욕하는 듯했다.
  • ‘한이서, 봤어? 이 남자는 내 미래의 남편이야! 너 따위는 말도 못 붙일 그런 남자라고!’
  • 한여빈은 정수와 함께 레스토랑을 벗어났다.
  • 정수와 한여빈이 나가자, 한아린은 한재혁의 다리를 덥석 안으며 말했다.
  • “아저씨, 아까 저 아줌마 너무 무섭게 생겼어요! 그러니까 예쁘게 생긴 우리 엄마를 아저씨한테 소개해 줄까요?”
  • 한아린은 손으로 한이서를 가리켰다.
  • “저 사람이 바로 하얗고 예쁘고 아름다운 우리 엄마 한이서예요!”
  • 차재혁이 말했다.
  • “저번에 네가 아팠을 때 병원에서 봤어.”
  • “그래요? 어때요? 우리 엄마 예쁘죠?”
  • 한이서는 차재혁이 한여빈과 결혼하게 될 거라는 말을 듣자, 그에 대한 호감이 완전히 사라졌다.
  • 한이서는 한아린을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며 혼내듯 말했다.
  • “한아린, 그만 해. 그 입 다물어.”
  • 한이서는 한아린의 손을 잡고 몸을 돌려 돌아가기 전, 차재혁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 “차 대표님, 옷 고마웠어요.”
  • 하지만 한이서의 말투에는 고마운 느낌이 전혀 없었다.
  • “나는 다른 사람이 입었던 옷은 안 입어. 그러니까 안 돌려줘도 되는데...”
  • 차재혁은 웃을 듯 말 듯한 얼굴로 한이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 ‘저 여자... 분명히 어디에서 봤는데. 어디에서 봤지? 통 기억이 안 난단 말이야.’
  • 자기가 입은 옷을 다시 입지 않을 거라는 말에 한이서는 차재혁이 자기를 모욕한다고 생각했다.
  • 한이서는 잔뜩 굳은 얼굴로 한아린의 손을 잡고 레스토랑을 벗어났다.
  • ‘흥!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실망이야!’
  • 한아린은 한이서가 갑자기 화를 내자, 오히려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 “엄마, 아까 그 아저씨 너무 개성 있게 잘 생기지 않았어? 정말 너무 멋진 것 같아!”
  • 한아린이 차재혁에게 푹 빠진 모습을 보이자, 한이서는 어이없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 ‘이 녀석은 대체 누굴 닮았기에... 잘생긴 사람을 좋아하는 거야?’
  • 한이서와 한아린이 집에 도착하자, 한지후와 한시후가 마중 나왔다.
  • 한 명은 손에 한이서에게 줄 실내화를, 다른 한 명은 한아린에게 줄 실내화를 들고 마중을 나왔다.
  • 큰아들 한지후는 또래의 아이들보다 훨씬 철이 들었다.
  • “엄마, 아까 집주인 아줌마가 왔는데 다음 주까지 방세 내지 않으면 방 빼라고 했어. 아참, 그리고... 방세 십만 원 올랐다고 전하래.”
  • 한이서는 멈칫하다가 이내 옅은 미소 지으며 답했다.
  • “그래, 알았어. 알았으니까, 동생들이랑 저기 가서 놀아!’
  • 속으로 통장 잔고와 당장 써야 할 돈을 계산해 보던 한이서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 ‘방세가 한 달에 50만 원이니까 반년 치를 내면 300만 원이고... 지후와 시후의 학원비 400만 원, 거기에 아린의 피아노 학원비 200만 원까지 합하면 아이들한테 들어갈 돈은 600만 원이야... 거의 천만 원이나 되는 돈을 어디에서 구한담? 급히 아르바이트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될 것 같은데...’
  • 결국 한이서는 예전에 하던 일을 다시 하기로 마음먹었다.
  • 그건 바로 밤무대에 나가 춤을 추는 것이었다.
  • 한이서는 밤무대에서 가장 환영받은 댄싱퀸이었는데 그동안 그 일로 돈을 벌어 아이들을 키웠다.
  • ‘아예 손을 씻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어. 제대로 된 일을 구하기 전까지는 다시 밤무대에 나가는 수밖에...’
  • 한지후는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겨있는 한이서를 바라보며 물었다.
  • “엄마, 집에 돈 있는 거 맞지?”
  • 한지후는 넌지시 한이서를 떠보았다.
  • ‘설마 아직도 우리가 보낸 돈을 못 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 한이서는 한지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 “너희들은 그런 걱정 전혀 할 거 없어. 내일 바로 방세 물 거야. 바닥에 쫓기는 일 없을 테니까 안심해.”
  • 사실 한지후가 더 어렸을 때 집주인에게 쫓겨 온 가족이 바닥에 나앉는 일이 있었다.
  • 그래서 한지후는 그게 두렵지 않았다.
  • 다만 자기와 동생들이 빨리 커서 엄마의 부담을 조금 덜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한편, 한아린은 한시후를 자기 방으로 몰래 데리고 들어가 금색의 명함을 내밀었다.
  • “오빠. 이것 봐! 오늘 오빠들이랑 똑같게 생긴 아저씨를 봤는데 그 아저씨가 우리의 아빠가 아닐까? 나는 그 아저씨가 우리의 아빠였으면 좋겠어!”
  • 한아린은 평소에 아빠 생각이 간절했는지 잘생긴 사람만 보면 자기 아빠라고 말하고 다녔기에 한시후는 이번에도 그런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 한시후는 동생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 “이리 줘봐.”
  • 명함에는 차현 그룹의 대표 차재혁이라고 쓰여 있었다.
  • 한시후는 그것을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안 돼. 이 사람은 너무 똑똑해서 엄마가 감당하기는 어려워.”
  • ‘엄마는 너무 착해. 그러니까 너무 잘나가는 남자한테 시집가면 힘들어질 수도 있어.’
  • 한아린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 “하지만 나는 이 아저씨가 우리의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어! 오빠랑 큰오빠는 똑똑하니까 우리가 지혜를 합치면 아저씨보다 더 똑똑할 수도 있잖아! 그리고 어쩌면 아저씨가 정말 우리의 아빠일 수도 있어!”
  • 한아린은 한시후의 옷자락을 잡고 옆으로 흔들며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한시후를 바라보았다.
  • 한지후와 한시후는 한아린과 동갑이었지만 한아린을 매우 아끼고 사랑했다.
  • 결국, 한시후는 한아린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