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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아줌마, 죄송해요!

  • 한여빈은 잠깐 멍해 있다가 제정신을 차리며 물었다.
  • “그럼 이 아이가... 그때 그... 벌써 이렇게 컸단 말이야?”
  • 한아린은 성격이 쾌활한 아이였다. 한아린은 한여빈과 한이서가 친구 사이인 줄 알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 “맞아요! 저 이제 다섯 살 됐어요. 저한테는 오빠가 두 명이나 있는데 모두 다섯 살이에요. 우리는 세쌍둥이거든요.”
  • 한이서는 얼른 한아린의 입을 틀어막았다.
  • 그녀는 한여빈에게 자기에 관해 아무것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한아린은 세쌍둥이라고 말을 한 뒤였다.
  • “세쌍둥이라고?”
  • 한여빈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 “너 아주 대단한데? 아니, 아니지. 네가 대단한 게 아니라 그 늙은이가 대단한 건가? 아, 그래서 그렇게 촌스럽게 입고 있는 거야? 혼자 벌어서 아이 셋 키우기 만만치 않지?”
  • 한이서가 궁핍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생각에 한여빈은 어깨가 으쓱해졌다.
  • ‘훗.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것처럼 살고 있겠군. 한이서는 제일 밑바닥에서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틀려. 나는 앞으로 차 씨 가문의 안주인이 될 사람이야! 그러니 한이서 따위가 어떻게 감히 내게 덤비겠어?’
  • 눈치 빠른 한아린은 한이서와 한여빈의 안색을 살피더니 한여빈이 한이서의 친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 한아린은 입을 삐죽거리다가 이내 무슨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두 눈을 반짝였다.
  • 한아린은 자리에서 내려와 기름이 잔뜩 묻은 손으로 순백의 한여빈 치마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 “우와, 치마가 너무 예뻐요!”
  • ‘흥! 우리 엄마한테 촌스럽다고 했지? 그럼, 아줌마도 똑같이 촌스럽게 만들어주겠어!’
  • 하얀 치마에 기름이 잔뜩 묻자, 한여빈은 새된 비명을 지르며 말했다.
  •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이게 얼마나 비싼 줄 알기나 해?”
  • 한여빈은 손을 들어 한아린을 때리려고 했다. 그때, 한이서가 한여빈의 손목을 잡자, 한여빈은 옴짝달싹할 수 없어 입으로만 푸념했다.
  • “한이서, 네 자식새끼가 너만큼이나 짜증 나는 거 알아? 잡놈의 새끼...”
  • 한여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이서는 한여빈의 뺨을 있는 힘껏 때렸다.
  • “한여빈, 말조심해. 너야말로 잡놈의 새끼야. 알겠어?”
  • 한이서에게 뺨을 맞은 한여빈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 ‘뭐야, 나 지금 한이서한테 맞은 거야? 이게 진짜 미쳤나...’
  • 한여빈은 한이서의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려고 했다. 그런데 한이서의 손은 한여빈의 손보다 훨씬 빨랐다.
  • 한이서가 한여빈을 밀치는 바람에 한여빈은 휘청이며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다가 식탁에 넘어지면서 음식물을 몸에 가득 뒤집어쓰고 말았다.
  • 한여빈은 이 상황이 너무 기가 막혀 분노가 차올랐다. 한여빈은 증오심 가득한 얼굴로 한이서에게 달려들며 말했다.
  • “한이서, 가서 죽어!”
  • 한이서가 몸을 살짝 피하는 바람에 한여빈은 룸에서 나오던 정수의 몸에 부딪칠 뻔했다.
  • 그리고 정수 역시 재빠르게 몸을 피했기에 한여빈은 하마터면 차재혁에게 부딪힐 뻔했다.
  • “대표님, 괜찮으세요?”
  • 정수는 깜짝 놀라며 차재혁에게 묻고는 고개를 돌려 한여빈에게 말했다.
  • “뭐야? 당신 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이렇게 함부로 돌아다니는 거야? 그러다 우리 대표님 다치시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 한여빈이 머리가 헝클어진 채 앞으로 돌진하는 바람에, 정수는 한여빈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 한여빈은 고개를 들고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넘기더니 뒤로 뒷걸음질 쳤다.
  • 그러고는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한이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차재혁에게 말했다.
  • “재혁 씨, 저 여자가 저 괴롭혀요.”
  • 차재혁은 시선을 돌려 한이서를 바라보았다.
  • 한이서는 베이지색 상의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간단하지만 말끔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주었다.
  • ‘저번에 병원에서 보았던 초라한 모습과는 다르게 오늘은 아주 예쁘군. 특히 저 눈...’
  • 차재혁이 보기에 한이서의 커다란 눈은 마치 우주를 담고 있는 듯 그윽하고 신비로웠다.
  • 차재혁은 흠칫했다.
  • ‘저 눈... 어디에서 보던 눈 같은데?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지?’
  • 차재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한여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 “재혁 씨, 나 당신 약혼녀잖아요. 나 방금 저 여자한테 괴롭힘당했다니까요?”
  • 차재혁은 한여빈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 “한여빈 씨, 너무 빠른 거 아닌가?”
  • 차재혁의 말에 한여빈은 적잖이 당황했다. 그녀는 두 사람 사이의 가짜 결혼에 대해 한이서 앞에서 얘기할까 봐 더럭 겁이 났다.
  • 한아린은 못된 아줌마와 잘생긴 아저씨가 서로 아는 사이라는 사실에 적잖이 실망했다.
  • 하지만 한아린은 이내 두 눈을 반짝이며 한여빈 앞에 달려더니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아줌마, 죄송해요. 일부러 아줌마 치마를 망가뜨린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제발 저랑 엄마 때리지 말아 주세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