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로운 인테리어의 침실, 심지연은 서서히 정신이 들었다. 그녀는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읏!”
머리가 너무 아팠다.
‘어떻게 된 거지? 나 이미 죽은 거 아니었어?!’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심지연은 이곳이 7년 전 심씨 가문에서 지내던 시절 자신의 침실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던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온 메이드가 깨어난 심지연을 보더니 무척이나 기뻐하며 입을 열었다.
“아가씨! 일어나셨군요. 너무 잘됐어요!”
메이드의 등장에 심지연은 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이에 손을 들어 머리를 만져본 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머리에 붕대가 칭칭 감겨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모든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녀는 돌아온 것이었다. 7년 전 심윤아가 돌아왔던 바로 그날로 말이다.
심씨 가문의 아가씨였던 그녀는 한차례 교통사고 이후 생각지도 못하게 자신의 혈액형이 부모님의 혈액형과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고, 뒤늦게 자신이 오래전 병원에서 실수로 바뀌어버린 아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었다.
그녀가 깨어났을 때, 심씨 가문에서는 진짜 딸인 심윤아를 찾았고, 이에 심지연은 심윤아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려 했었지만, 생각 밖에 심윤아가 극구 그런 그녀를 말렸었다.
계속 심씨 가문에 남아있어도 된다면서, 모든 것은 여전히 원래와 다를 것이 없다고, 자신들은 피를 나눈 자매보다도 더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다면서 말이다.
심지연은 어려서부터 심씨 가문에서 자라왔고, 이곳의 모든 것에 정이 들어 있는 상태였기에, 당연히 그 모든 것들을 떠나는 것이 아쉬웠고, 부모님을 떠난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에 그녀는 심씨 가문에 남아있기로 했었다.
하지만 그 결정이 틀린 결정이었을 것이라고는 그녀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심윤아는 돌아온 첫날부터 시시때때로 그녀를 밀어내고 모함했다. 처음에만 해도 심지연은 심윤아가 진짜 딸이고, 심씨 가문의 모든 것이 원래는 그녀가 누렸어야 했던 것이며, 자신이 그녀의 삶을 빼앗은 것이기에 그녀에게 돌려주는 것이 맞는 것이라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심윤아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심지연의 모든 것이었다. 그녀의 인간관계, 그리고 미래까지도 말이다.
따지고 보면 이상하긴 했다. 심윤아가 돌아온 뒤로, 심지연은 무슨 일을 하든 잘 풀리지 않았었다.
사이가 좋기만 했었던 친구들과 가족들이 전부 그녀를 떠나갔고, 그녀의 명성과 명예 또한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으며,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까지도 심윤아가 빼앗아 갔다.
심윤아는 마치 그녀의 인생을 다 알고 있는 듯이 언제나 한발 앞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갔고, 모두의 미움이 그녀에게 향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주위의 모두가 심윤아의 실체를 알아채지 못했다. 모두가 그녀에게 속아 넘어갔고, 모두가 심윤아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다고 여겼으며, 심지연이야말로 열등감에 찌든 악녀라고 생각했다.
번번이 모함을 당하던 심지연은 참지 못하고 심윤아와 끝까지 싸워보려 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죽던 날, 심윤아가 그녀의 귓가에 나직이 진실을 속삭였었다. 사실 심윤아는 회귀자이고, 심지연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돌아온 것이라고 말이다.
그녀는 심지연의 미래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었던 심지연이 질투가 나 자신이 한발 앞서 그녀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갔었던 것이다.
‘회귀?’
그때까지만 해도 심지연은 이 두 글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었다. 직접 그 상황을 겪고 난 지금에서야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회귀라는 것을.
바보같이 웃고 있는 심지연의 모습에 메이드가 침대 옆으로 다가와 그녀의 이마를 만져보며 말했다.
“왜 그러세요, 아가씨? 설마 교통사고 후유증이에요?”
심지연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아래층에 심윤아가 돌아온 거죠?”
“……”
메이드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아가씨?”
이에 심지연은 시선을 내리깔며 담담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지난 삶에서 그녀가 교통사고 이후 정신을 차린 그날이 바로 심윤아가 돌아온 이날이었다.
이제 그녀는 심씨 가문의 진짜 딸은 자신이 아닌 심윤아라는 사실을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될 것이다.
지난 삶에서 심지연은 심윤아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려 했었지만 심윤아의 설득에 심씨 가문에 남게 되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번 삶에서는 절대로 지난번과 똑같은 삶을 살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친부모님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이에 심지연은 이불을 걷어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와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메이드가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아가씨,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심지연은 담담하게 답했다.
“절 아가씨라고 부르지 말아요. 전 심씨 가문의 딸이 아니에요.”
“!!?”
그녀의 말에 메이드는 충격을 받은 듯한 눈치였다.
물건들을 챙길 생각이었지만, 심지연은 챙길 물건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곳에 있는 그 무엇도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이에 잠시 생각하던 심지연은 동작을 멈추고는 그대로 방을 나섰다.
“얘야, 네가 우리의 친딸이었구나. 그동안 고생 많았어!”
“윤아야, 앞으로 우리가 꼭 제대로 보상해 줄게!”
심지연은 담담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다 곧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소파에 앉아 있는 심윤아는 색이 바랜 청바지에 평범한 티셔츠 차림이었는데, 그 모습이 청순하기 그지없었다.
붉어진 눈시울을 한 채 심씨 부부를 바라보고 있던 심윤아는 위층에서 내려오는 심지연을 힐긋 쳐다보더니 얼른 소파에서 일어나 수줍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언니, 내려왔네요.”
‘언니? 허, 정말이지 가식이 따로 없네! 가식 빼면 시체만 남겠어. 지난 삶에서는 심윤아 저 계집애가 저렇게나 가식적이라는 걸 왜 일찍 알아채지 못했을까!’
심지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윤혜선이 눈물을 훔치며 입을 열었다.
“지연아, 일어났니? 이리 와. 너한테 할 얘기가 있어.”
심현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내뱉었다.
“지연아, 사실 넌 우리 친딸이 아니다. 윤아가 우리 친딸이야. 이번에 네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면서 혈연관계 조사를 했었는데, 당시 병원에서 아이가 바뀐 거였더구나. 윤아가 돌아왔으니, 앞으로 윤아한테 네 방을 쓰게 할 생각이다. 어차피 곧 개학이니, 개학하면 넌 학교에서 지내도록 해라.”
두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 심지연에게 진실을 쏟아냈다.
교통사고 이후 이제 막 정신을 차린 그녀가 그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것 같았다.
사실 이 시점부터 그들의 마음은 이미 심윤아에게로 기울어져 있었지만, 지난 삶에서 심지연은 멍청하게도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었다.
바보같이 부모님은 그녀 역시 사랑하시지만 단지 심윤아를 위해 그녀에게 모질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심지연은 그들 쪽으로 걸어가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부모님의 눈빛을 마주한 채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엄마, 아빠, 18년 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친딸이 돌아왔으니, 방을 양보하는 건 당연한 거죠. 제가 나갈게요.”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심윤아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뭐지? 이 계집애가 왜 먼저 나가겠다고 하는 거지? 게다가 울며불며 난리도 안 치고 말이야. 내가 기억하는 거랑 다른데?’
심현규와 윤혜선 역시 순간 놀란 듯하더니 급히 입을 열었다.
“지연아, 우리 말은 그런 뜻이 아니야. 윤아가 돌아왔다고 널 쫓아내려는 게 아니야!”
심윤아 또한 얼른 심지연의 옆으로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맞아요, 언니. 우리 앞으로 친자매처럼 지낼 수 있잖아요. 그 오랜 시간을 엄마 아빠랑 함께 지내왔는데, 쉽게 떠날 수 있을 리가 없겠죠. 그리고 내가 돌아오고 언니가 나가버리면, 모르는 사람들은 엄마 아빠가 언니를 쫓아낸 줄 알 거예요. 그러면 앞으로 엄마 아빠의 체면은 어떡하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