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3화 백씨 가문의 아가씨

  • “아가씨요. 방금 아가씨께서 전화하신 거 아닙니까?”
  • “저 맞아요.”
  • 심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멀지 않은 곳에 멈춰 서있는 비싼 차를 힐긋 쳐다보던 그녀는 어리둥절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 “그럴 리가 없는데…”
  • “그럼 아가씨가 틀림없습니다. 얼른 타세요.”
  • 경호원은 두말없이 여전히 어리둥절한 채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심지연을 번쩍 들어 올려 차에 태웠다. 이에 심지연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요즘 경호원들은 다 이렇게 거친 거야?! 이거 설마 인신매매 그런 거 아니야?! 대체 누가 롤스로이스를 몰고 와서 납치를 하는 건데?!’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죠?”
  • “도착하면 알게 되실 겁니다, 아가씨.”
  • ‘참나, 뭐가 이렇게 비밀스러워?’
  • 얼마 지나지 않아 롤스로이스는 한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차에서 내린 심지연은 눈앞에 펼쳐진 저택의 모습에 경악에 가득 찬 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그런 그녀를 향해 경호원이 말을 내뱉었다.
  • “들어가시죠!”
  • 이내 저택의 대문이 열리며 두 줄로 늘어선 메이드들이 그녀를 맞이했다.
  • 심지연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내부는 휘황찬란하게 꾸며져 있었고, 여기저기에 골동품으로 보이는 장식품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 ‘이거 가난한 가정형편 맞아? 내가 생각한 거랑 너무 다른데? 설마 내가 잘못 찾은 건가?’
  • 그러던 그때, 위층에서 한 백발의 노부인이 달려내려 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옷차림의 노부인은 금사남목으로 만든 지팡이를 짚고 감격스러운 얼굴을 한 채 심지연의 앞으로 다가왔다.
  • 노부인이 눈시울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 “네가 바로 전화한 그 아이니?!”
  • 이에 심지연이 답했다.
  • “맞아요. 하지만 제가 통화한 건 남자분이었는데,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 하지만 그녀가 미처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이 어딘가에서 의료팀이 달려 나오더니 재빨리 의료 상자를 내려놓고는 현장에서 심지연의 피를 뽑아 친자 확인 검사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그런 그들의 행동에 심지연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노부인은 그런 심지연의 손을 잡고 그녀를 소파에 앉혔다.
  • “이리로 오렴, 아가. 우리 앉아서 천천히 얘기하자꾸나. 아가, 이름이 뭐니?”
  • “심지연이에요.”
  • 노부인은 그 이름을 한번 되뇌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네가 우리 집안의 아이라는 건 어떻게 알게 된 거니?”
  • “사실 저도 너무 확신하는 건 아니에요. 지금 이 상황이 제가 생각한 것과는 너무 많이 달라서요. 저한테 정보를 알려준 사람의 말에 따르면 우리 집은 찢어지게 가난한 데다 아버지는 도박꾼에, 어머니는 무식한 여자, 그리고 오빠도 한 명 있는데, 노총각이라고 했었거든요.”
  • “도박꾼에, 무식한 여자, 그리고 노총각이라고? 하하하…”
  • 노부인은 웃음을 터트렸다.
  • “누군가 우리 백씨 가문을 그렇게 평가하는 건 또 처음이구나!”
  • 옆에 있는 의료팀은 신속히 심지연의 피로 친자 검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이내 기계 위에 결과가 나타났다. 친자 검사의 결과는 99.999%였다. 그러자 의사가 흥분하며 외쳤다.
  • “사모님!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분이 바로 아가씨세요!”
  • “뭐요? 그게 사실이에요?!”
  • 노부인은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며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심지연의 손을 덥석 잡더니 감격에 겨워 말을 내뱉었다.
  • “지연아! 드디어 네가 돌아왔구나! 드디어 네가 돌아왔어! 하늘이 도우셨나 보구나! 너무 잘됐어! 네 성은 심씨가 아니야! 백씨라고 해야지! 넌 백지연이야!”
  • “백지연이요?”
  • 그녀는 갑자기 바뀐 성이 적응되지 않았다. 하지만 친가족을 찾았으니, 성을 바꾸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거죠?”
  • “내가 차근차근 얘기해 줄 테니, 급해 말렴.”
  • 백현숙은 백지연의 손을 잡고 당시 병원에서 아이가 바뀐 사실을 알아챘던 일을 차근차근 이야기해 주었다.
  • 그녀가 갓 태어났을 때, 간호사가 신생아들을 목욕시키는 과정에서 실수로 아기를 헷갈려 백지연과 다른 아기가 바뀌게 되었던 것이었다.
  • 하지만 그 사실을 알아채고 다시 그녀를 찾아오려 했을 때, 그녀는 이미 누군가의 품에 안겨 퇴원을 한 상태였고, 그 이후로 더는 그녀의 소식을 알지 못했다고 했다.
  • 당시 백지연과 바뀌었던 아기는 백씨 가문에서 수소문하여 늦지 않게 진짜 가족들을 찾아 돌려보냈지만, 백지연은 그때 이후로 행방이 묘연해졌었고, 그들은 오랜 시간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녀를 찾으려 했지만, 아무런 수확도 건질 수 없었다.
  • 애초에 공개했던 조건이 너무 유혹적이었던 탓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돈을 노리고 자신이 이 집안의 친딸이라며 찾아왔었고, 결국 그들은 아예 자신들의 조건을 바꾸어버렸다.
  • 현재 외부에 공개된 그들의 정보는 모두 거짓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하다느니, 도박꾼이라느니, 무식한 여자라느니, 노총각이라느니 하는 것들은 전부 꾸며낸 이야기들이었다. 바로 돈을 노리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걸러내기 위해서 말이다.
  • 그러니까, 당시 세 명의 아기가 바뀌었던 것이었다. 백씨 가문에서는 아이가 바뀐 것을 곧바로 알아챘고, 아이가 친부모님의 품에서 자랄 수 있도록 돌려보냈지만, 심씨 가문은 이를 전혀 알아채지 못한 채 백지연을 집으로 데려가 18년을 키워온 것이었다.
  • 백지연이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심윤아가 자신의 신분을 알아채고 직접 찾아오기 전까지 말이다.
  • 심윤아가 말했던 것들은 전부 그녀가 조사한 표면적인 정보들이었고, 그것은 백씨 가문이 일부러 던진 연막탄이었다.
  • 사실 백지연의 친부모님은 굉장히 부유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가난하다기에는 이 집은 휘황찬란하기 그지없었고, 벽에 붙어있는 타일 하나까지도 금빛으로 번쩍이는 듯했다.
  • 이는 절대로 가난한 집안 형편일 수가 없었다. 차라리 가진 것이라고는 돈밖에 없다고 해야 더 맞을 듯해 보였다.
  • “그럼 저희 아버지는 도박꾼이 아닌 건가요?”
  • “당연히 아니지! 우리 백씨 가문은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재벌가란다!”
  • “그럼 저희 어머니는 무식한 여자가 아닌 건가요?”
  • “헛소리야. 너희 엄마는 예술가란다! 뮤지컬 배우지!”
  • “그러면 저희 오빠도… 노총각이 아닌 거예요?!”
  • “루… 그건 루머가 아니야. 너희 오빠는 할아버지의 유전을 물려받아 지금 에너지 사업을 하고 있어. 하지만 확실히 서른이 다 되어 가도록 아직 애인이 없긴 하지. 어휴, 못난 놈!”
  • 그 말에 백지연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물었다.
  • “그럼 전에 제가 전화했을 때는 대체 누가 전화를 받았던 거예요?”
  • “그건 너희 사촌 오빠인 백지훈이었어.”
  • ‘백지훈… 백지후… 그것도 예명이었던 거구나!’
  • 백씨 가문은 아주 부유했다. 이는 백지연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호재였다. 백현숙은 백지연의 손을 잡은 채 눈물을 떨구며 말을 이어갔다.
  • “지연아, 그동안 밖에서 고생 많았지? 엄마랑 아빠도 이제 곧 돌아올 거야. 드디어 우리 가족이 완전해지겠구나! 단지 너희 할아버지가 널 못 보고 간 게 안타까울 따름이지. 난 나 또한 네가 돌아오는 걸 보지 못하게 될 줄 알았어. 그런데 하늘이 날 굽어살펴주신 모양이구나! 그 오랜 시간 기도해 온 보람이 있어. 지연아, 내 예쁜 손녀!”
  • 백지연은 그녀의 그 말에 감동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백지연도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 “할머니, 제 할머니 맞으시죠?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너무 좋아요, 할머니!”
  • 지난 삶에서 그녀는 심윤아와의 싸움에 휘말려 죽을 때까지도 자신의 친부모님은 만나보지 못했었다.
  • 주위 사람들이 모두 떠나갔고, 지키고자 했던 모든 것 또한 지켜내지 못했었다.
  •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우습기도 했다. 지난 삶에서 그녀가 지키고자 했던 모든 것은 전부 그녀의 것이 아닌 것들이었고, 오히려 진정 그녀의 것이었던 것들은 그녀에게 버려졌으니 말이다.
  • 그리고 다시 삶을 부여받은 지금에서야 백지연은 자신이 바보 같은 실수를 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그녀는 진즉 이들을 찾아왔어야 했다. 그 오랜 시간 자신을 찾고 있었던 이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말이다.
  • 백현숙은 백지연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에 백지연 역시 참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다급한 브레이크 소리가 들려오더니 한 쌍의 남녀가 문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