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여우짓이 따로 없었다. 심윤아의 그 말은 말 그대로 심지연과 부모님의 사이를 이간질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난 삶에서도 그녀는 그 말을 듣고 심씨 가문에 남아 은혜를 갚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그녀는 절대 심윤아가 원하는 대로 되도록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은혜는 갚을 것이었지만, 심씨 가문에 남아 그 은혜를 갚을 생각은 없었다.
심지연은 심윤아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냈다. 그리고는 은근슬쩍 옷 위에 손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엄마 아빠, 제 말은 엄마 아빠의 친딸이 돌아왔으니, 저도 제 친부모님을 찾아가 봐야 한다는 뜻이었어요.”
“너희 친부모님을 찾아가겠다고?”
심현규와 윤혜선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사실 두 사람은 심지연이 자신들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조금 속상한 마음도 들었었다. 필경 심지연은 무척이나 뛰어난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조금의 속상함보다는 심윤아가 밖에서 그 많은 고생을 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느꼈던 속상함이 훨씬 더 컸다.
그들은 심윤아가 더 안타까웠다. 그렇기에 심지연더러 방을 심윤아에게 양보하고 개학하면 학교에서 지내라고 한 것이었다.
그리고 현재 자신의 친부모님을 찾아가겠다는 심지연의 말에 그들은 그것도 꽤 합리적인 요구라고 생각했다.
그때, 심지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껏 저를 키워주신 큰 은혜를 지금 당장은 갚을 능력이 없으니 우선 큰절이라도 받으세요!”
말을 마친 심지연은 바로 큰절을 하려는 듯 바닥에 꿇어앉았다. 그러자 심현규와 윤혜선은 화들짝 놀라며 얼른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지연아, 그럴 필요 없어!”
“우리가 어떻게 너한테 큰절을 받겠어! 너도 친부모님을 찾고 싶을 만하지. 네 생각이 그렇게 확고하다면 우리가 어떻게 반대를 하겠니. 가고 싶으면 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심윤아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안돼! 저 계집애가 정말 떠나버리면, 내 복수는 어떡하라고?! 안돼, 심지연 저 계집애를 보내면 절대 안 돼!’
심윤아는 얼른 입을 열었다.
“엄마, 아빠, 언니를 보내면 안 돼요. 사실 제가 돌아올 때 소식을 좀 알아봤는데, 언니의 친부모님 쪽 상황이 엄청 안 좋았어요!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이었어요! 아버지는 도박꾼에, 어머니는 학교라고는 다녀본 적도 없는 무식한 여자였어요. 막돼먹은 여자라는 소문이 온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더라고요. 게다가 언니한테는 오빠도 한 명 있는데 그 사람은 노총각이에요. 서른이 다 되도록 아직 결혼도 못 하고 있다더라고요! 엄마, 아빠, 절대로 그런 집에 언니를 보내면 안 돼요!”
“…?”
‘나도 내 친부모님이 그런 사람들인 줄 모르고 있었는데, 심윤아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심지연은 그녀가 이렇게까지 수를 써가며 자신을 이 집에 남겨두려 하는 것은 보나 마나 자신을 심씨 가문에 잡아두고 서서히 괴롭힐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심지연은 더 이상 지난 삶에서의 그런 생활을 할 생각이 없었다. 또한 그녀는 심윤아와 아웅다웅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을 뿐이었다.
“괜찮아. 그래도 어쨌든 내 친부모님이고, 나와 피가 섞인 가족들이니까, 가난하든 돈이 많든 난 그분들을 미워하지 않을 거야. 설마 넌 부모님이 돈이 많으신 걸 알고, 그것 때문에 돌아온 거야?”
심지연은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심윤아는 순간 멈칫하며 말을 더듬더니 황급히 말을 내뱉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언니,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오해하지 말아요. 엄마, 아빠, 얼른 언니한테 말 좀 해주세요. 전 그런 사람이 아니란 말이에요!”
횡설수설하며 다급해하는 심윤아의 모습에 심현규와 윤혜선은 급히 그런 그녀를 다독였다.
“진정해, 윤아야. 지연이도 그냥 물은 것뿐이니까 깊이 생각하지 마.”
“그래, 지연아, 너 어떻게 윤아를 그렇게 얘기할 수 있어? 우리가 윤아를 찾아냈을 때, 윤아는 우리가 돈이 많은지 아닌지 전혀 모르고 있었어.”
‘몰랐을 리가 없지!’
그런 말을 믿는 사람은 아마 심현규와 윤혜선밖에 없을 것이다. 심윤아는 처음부터 심씨 가문이 돈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군말 없이 돌아온 것이었다.
그녀는 심씨 가문이 돈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연에게 복수를 하려 온 것이기도 했다. 미래에 벌어질 모든 것들을 알고 심지연을 질투해서 말이다.
‘저 계집애는 회귀했단 말이에요!’
심지연은 속으로 포효했다. 하지만 진실을 얘기할 수는 없었다. 심윤아가 이를 인정할 리도 없는 데다 그 사실을 이야기하면 남들은 분명 그녀가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친 것이라 생각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심지연은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엄마, 아빠, 저도 마찬가지예요. 제 친부모님이 어떻든 상관없이, 전 그분들을 찾아봐야 해요. 그게 맞는 거잖아요? 엄마 아빠가 친딸을 찾았으니, 저도 제 친부모님을 찾아가는 게 맞는 거 아닌가요?”
심윤아는 심지연을 이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심지연의 말은 틀린 말이 한마디도 없었고, 그녀에게는 심지연을 막을 이유가 없었다. 이에 심현규와 윤혜선은 심지연의 뜻에 동의했다.
“그래. 너희 친부모님을 찾아가고 싶다면 가봐. 하지만 지연아, 비록 네가 우리의 친딸은 아니지만, 이것만은 기억해. 넌 영원히 우리의 딸이야. 심씨 가문의 대문은 언제나 너를 향해 열려있어.”
“고마워요, 엄마, 아빠.”
심지연은 심현규와 윤혜선이 지금은 진심으로 그녀를 위해 그런 말을 하는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이 얼마 못 가 심윤아에게 세뇌를 당해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악독한 여자로 여기게 되리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심지연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늦기 전에 지금 이 집을 떠나 그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에 그들과 이야기를 마친 뒤, 심지연은 곧바로 그 집을 떠나기로 했다. 단 한시라도 그곳에 더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았다.
심현규와 윤혜선은 심윤아의 말을 토대로 조사를 했고, 심지연의 친부모님의 주소를 찾아냈다.
심지연은 차로 데려다주겠다는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려다 결국 그들의 차를 타고 터미널까지 가기로 했다.
심씨 가문을 떠나가는 심지연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심윤아는 화가 치밀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녀는 심지연이 왜 심씨 가문을 떠나겠다 고집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는 그녀가 기억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차분히 생각해 보던 심윤아는 이내 또 마음이 놓였다.
‘저 계집애는 어려서부터 곱게 자라왔어. 하지만 친부모는 엄청 가난하잖아. 그러니까 분명 견디지 못하고 쪼르르 다시 돌아올 거야. 그럼 그때는 내 손바닥 안 아니겠어?! 후후,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 보자고!’
……
심지연을 터미널까지 데려다준 운전기사는 그녀에게 전화번호와 주소, 그리고 버스표 한 장을 건넸다.
“조심히 가세요, 아가씨.”
“고마워요.”
심지연은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뒤, 차표를 손에 쥔 채 몸을 돌려 터미널로 들어갔다.
두 시간을 달려 서울에 도착한 심지연은 터미널을 나서며 휴대폰을 꺼내 운전기사가 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이내 수화기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심지연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백지후 씨 맞나요? 저는 그 집 딸인데요, 혹시 지금 데리러 와주실 수 있을까요?”
“……”
수화기 너머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이에 그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 심지연이 다시 입을 열려던 그때, 수화기 너머에서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를 보낼 테니까, 꼼짝 말고 거기 있어요.”
뚜뚜뚜-
그 남자의 말이 끝나자, 전화는 곧바로 끊어졌다. 심지연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아직 내가 어디 있는지 얘기도 안 했는데 날 데리러 온다고?! 어디로 데리러 온다는 건데!?’
심지연은 휴대폰을 손에 든 채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더운 날씨로 인해 그녀는 물을 한 병 사기 위해 옆에 있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그녀가 물을 한 병 사 들고 편의점에서 나오는 그 짧은 사이, 롤스로이스 두 대가 다가와 터미널 앞 도로변에 멈춰 섰다.
그러더니 선글라스를 낀 경호원이 차에서 내려 무언가를 찾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심지연은 물을 손에 든 채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럼에도 그녀는 눈앞에 있는 그 두 대의 롤스로이스가 자신을 데리러 온 차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필경 전에 심윤아가 그녀의 친부모님은 가난하다 못해 굶어 죽기 직전인 형편이라고 했었기에, 절대 비싼 차를 몰고 다닐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물을 한 모금 들이켠 그녀가 미처 물을 삼키기도 전에, 태블릿을 든 채 그녀의 앞으로 다가와 무언가를 조작하던 경호원이 화면 위의 작은 점이 바로 그녀가 서 있는 그 위치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무척이나 반가운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