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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여우짓

  • 그야말로 여우짓이 따로 없었다. 심윤아의 그 말은 말 그대로 심지연과 부모님의 사이를 이간질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 지난 삶에서도 그녀는 그 말을 듣고 심씨 가문에 남아 은혜를 갚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그녀는 절대 심윤아가 원하는 대로 되도록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 은혜는 갚을 것이었지만, 심씨 가문에 남아 그 은혜를 갚을 생각은 없었다.
  • 심지연은 심윤아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냈다. 그리고는 은근슬쩍 옷 위에 손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 “엄마 아빠, 제 말은 엄마 아빠의 친딸이 돌아왔으니, 저도 제 친부모님을 찾아가 봐야 한다는 뜻이었어요.”
  • “너희 친부모님을 찾아가겠다고?”
  • 심현규와 윤혜선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사실 두 사람은 심지연이 자신들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조금 속상한 마음도 들었었다. 필경 심지연은 무척이나 뛰어난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 하지만 그 조금의 속상함보다는 심윤아가 밖에서 그 많은 고생을 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느꼈던 속상함이 훨씬 더 컸다.
  • 그들은 심윤아가 더 안타까웠다. 그렇기에 심지연더러 방을 심윤아에게 양보하고 개학하면 학교에서 지내라고 한 것이었다.
  • 그리고 현재 자신의 친부모님을 찾아가겠다는 심지연의 말에 그들은 그것도 꽤 합리적인 요구라고 생각했다.
  • 그때, 심지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 “이제껏 저를 키워주신 큰 은혜를 지금 당장은 갚을 능력이 없으니 우선 큰절이라도 받으세요!”
  • 말을 마친 심지연은 바로 큰절을 하려는 듯 바닥에 꿇어앉았다. 그러자 심현규와 윤혜선은 화들짝 놀라며 얼른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 “지연아, 그럴 필요 없어!”
  • “우리가 어떻게 너한테 큰절을 받겠어! 너도 친부모님을 찾고 싶을 만하지. 네 생각이 그렇게 확고하다면 우리가 어떻게 반대를 하겠니. 가고 싶으면 가.”
  •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심윤아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 ‘안돼! 저 계집애가 정말 떠나버리면, 내 복수는 어떡하라고?! 안돼, 심지연 저 계집애를 보내면 절대 안 돼!’
  • 심윤아는 얼른 입을 열었다.
  • “엄마, 아빠, 언니를 보내면 안 돼요. 사실 제가 돌아올 때 소식을 좀 알아봤는데, 언니의 친부모님 쪽 상황이 엄청 안 좋았어요!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이었어요! 아버지는 도박꾼에, 어머니는 학교라고는 다녀본 적도 없는 무식한 여자였어요. 막돼먹은 여자라는 소문이 온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더라고요. 게다가 언니한테는 오빠도 한 명 있는데 그 사람은 노총각이에요. 서른이 다 되도록 아직 결혼도 못 하고 있다더라고요! 엄마, 아빠, 절대로 그런 집에 언니를 보내면 안 돼요!”
  • “…?”
  • ‘나도 내 친부모님이 그런 사람들인 줄 모르고 있었는데, 심윤아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 심지연은 그녀가 이렇게까지 수를 써가며 자신을 이 집에 남겨두려 하는 것은 보나 마나 자신을 심씨 가문에 잡아두고 서서히 괴롭힐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 하지만 안타깝게도 심지연은 더 이상 지난 삶에서의 그런 생활을 할 생각이 없었다. 또한 그녀는 심윤아와 아웅다웅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을 뿐이었다.
  • “괜찮아. 그래도 어쨌든 내 친부모님이고, 나와 피가 섞인 가족들이니까, 가난하든 돈이 많든 난 그분들을 미워하지 않을 거야. 설마 넌 부모님이 돈이 많으신 걸 알고, 그것 때문에 돌아온 거야?”
  • 심지연은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심윤아는 순간 멈칫하며 말을 더듬더니 황급히 말을 내뱉었다.
  • “그럴 리가 없잖아요! 언니,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오해하지 말아요. 엄마, 아빠, 얼른 언니한테 말 좀 해주세요. 전 그런 사람이 아니란 말이에요!”
  • 횡설수설하며 다급해하는 심윤아의 모습에 심현규와 윤혜선은 급히 그런 그녀를 다독였다.
  • “진정해, 윤아야. 지연이도 그냥 물은 것뿐이니까 깊이 생각하지 마.”
  • “그래, 지연아, 너 어떻게 윤아를 그렇게 얘기할 수 있어? 우리가 윤아를 찾아냈을 때, 윤아는 우리가 돈이 많은지 아닌지 전혀 모르고 있었어.”
  • ‘몰랐을 리가 없지!’
  • 그런 말을 믿는 사람은 아마 심현규와 윤혜선밖에 없을 것이다. 심윤아는 처음부터 심씨 가문이 돈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군말 없이 돌아온 것이었다.
  • 그녀는 심씨 가문이 돈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연에게 복수를 하려 온 것이기도 했다. 미래에 벌어질 모든 것들을 알고 심지연을 질투해서 말이다.
  • ‘저 계집애는 회귀했단 말이에요!’
  • 심지연은 속으로 포효했다. 하지만 진실을 얘기할 수는 없었다. 심윤아가 이를 인정할 리도 없는 데다 그 사실을 이야기하면 남들은 분명 그녀가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친 것이라 생각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 이에 심지연은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 “엄마, 아빠, 저도 마찬가지예요. 제 친부모님이 어떻든 상관없이, 전 그분들을 찾아봐야 해요. 그게 맞는 거잖아요? 엄마 아빠가 친딸을 찾았으니, 저도 제 친부모님을 찾아가는 게 맞는 거 아닌가요?”
  • 심윤아는 심지연을 이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심지연의 말은 틀린 말이 한마디도 없었고, 그녀에게는 심지연을 막을 이유가 없었다. 이에 심현규와 윤혜선은 심지연의 뜻에 동의했다.
  • “그래. 너희 친부모님을 찾아가고 싶다면 가봐. 하지만 지연아, 비록 네가 우리의 친딸은 아니지만, 이것만은 기억해. 넌 영원히 우리의 딸이야. 심씨 가문의 대문은 언제나 너를 향해 열려있어.”
  • “고마워요, 엄마, 아빠.”
  • 심지연은 심현규와 윤혜선이 지금은 진심으로 그녀를 위해 그런 말을 하는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 하지만 그녀는 그들이 얼마 못 가 심윤아에게 세뇌를 당해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악독한 여자로 여기게 되리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 심지연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늦기 전에 지금 이 집을 떠나 그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이에 그들과 이야기를 마친 뒤, 심지연은 곧바로 그 집을 떠나기로 했다. 단 한시라도 그곳에 더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았다.
  • 심현규와 윤혜선은 심윤아의 말을 토대로 조사를 했고, 심지연의 친부모님의 주소를 찾아냈다.
  • 심지연은 차로 데려다주겠다는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려다 결국 그들의 차를 타고 터미널까지 가기로 했다.
  • 심씨 가문을 떠나가는 심지연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심윤아는 화가 치밀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 그녀는 심지연이 왜 심씨 가문을 떠나겠다 고집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는 그녀가 기억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 하지만 차분히 생각해 보던 심윤아는 이내 또 마음이 놓였다.
  • ‘저 계집애는 어려서부터 곱게 자라왔어. 하지만 친부모는 엄청 가난하잖아. 그러니까 분명 견디지 못하고 쪼르르 다시 돌아올 거야. 그럼 그때는 내 손바닥 안 아니겠어?! 후후,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 보자고!’
  • ……
  • 심지연을 터미널까지 데려다준 운전기사는 그녀에게 전화번호와 주소, 그리고 버스표 한 장을 건넸다.
  • “조심히 가세요, 아가씨.”
  • “고마워요.”
  • 심지연은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뒤, 차표를 손에 쥔 채 몸을 돌려 터미널로 들어갔다.
  • 두 시간을 달려 서울에 도착한 심지연은 터미널을 나서며 휴대폰을 꺼내 운전기사가 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이내 수화기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세요.”
  • 심지연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 “안녕하세요? 혹시 백지후 씨 맞나요? 저는 그 집 딸인데요, 혹시 지금 데리러 와주실 수 있을까요?”
  • “……”
  • 수화기 너머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이에 그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 심지연이 다시 입을 열려던 그때, 수화기 너머에서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차를 보낼 테니까, 꼼짝 말고 거기 있어요.”
  • 뚜뚜뚜-
  • 그 남자의 말이 끝나자, 전화는 곧바로 끊어졌다. 심지연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 ‘아직 내가 어디 있는지 얘기도 안 했는데 날 데리러 온다고?! 어디로 데리러 온다는 건데!?’
  • 심지연은 휴대폰을 손에 든 채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 무더운 날씨로 인해 그녀는 물을 한 병 사기 위해 옆에 있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그녀가 물을 한 병 사 들고 편의점에서 나오는 그 짧은 사이, 롤스로이스 두 대가 다가와 터미널 앞 도로변에 멈춰 섰다.
  • 그러더니 선글라스를 낀 경호원이 차에서 내려 무언가를 찾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심지연은 물을 손에 든 채 그쪽으로 다가갔다.
  • 그럼에도 그녀는 눈앞에 있는 그 두 대의 롤스로이스가 자신을 데리러 온 차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 필경 전에 심윤아가 그녀의 친부모님은 가난하다 못해 굶어 죽기 직전인 형편이라고 했었기에, 절대 비싼 차를 몰고 다닐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 하지만 뚜껑을 열고 물을 한 모금 들이켠 그녀가 미처 물을 삼키기도 전에, 태블릿을 든 채 그녀의 앞으로 다가와 무언가를 조작하던 경호원이 화면 위의 작은 점이 바로 그녀가 서 있는 그 위치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무척이나 반가운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 것이었다.
  • “아가씨! 모시러 왔습니다!”
  • “……”
  • 풉-!
  • 심지연은 입안에 머금고 있던 물을 그대로 다시 뿜어낼 수밖에 없었다.
  • “지금 절 뭐라고 부르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