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백지훈의 사촌 여동생은 엄청 못생겼다고 하지 않았나?
- 단 십여 분 만에 이 교실 안에서 백지연의 평판은 완전히 뒤집어져 있었다. 모두가 심윤아에게 세뇌를 당해 백지연을 18년간 심윤아의 부잣집 아가씨 자리를 꿰차고 있던 악독한 언니로 여겼다.
- 게다가 백지연은 은혜도 모르고 심윤아에게 독설을 퍼부은 그야말로 나쁜 여자라면서 말이다.
- ……
- 한편, 백지연은 조교와 함께 있었다. 조교가 몸을 돌려 백지연을 향해 예의 바르게 말을 꺼냈다.
- “백지연 아가씨, 아가씨의 어머니께서는 우리 학교를 졸업한 유명한 뮤지컬 배우이시죠. 아가씨께서 저희 한세대학교 연영과를 선택해 주셔서 저희로서는 영광입니다!”
- “그런 말씀 마세요. 한세대학교에 다니는 건 제 꿈이었어요. 엄마와는 상관없이요.”
- “앞으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저한테 얘기하세요.”
- 말을 마친 그는 다시 또 고개를 저었다.
- “제가 우스운 소리를 했네요. 아가씨 아버님께서 우리 학교 이사장님이신데 제가 도울 일 같은 게 있을 리가 없겠죠.”
- “전 여기 배우러 왔으니 그냥 평범한 학생일 뿐이에요. 저한테 특별대우 하시거나 하지 말아 주세요, 선생님. 그럼 엄청 이상할 거예요.”
- 백지연의 말에 조교는 굉장히 의아해했다. 보통 집안 형편이 괜찮은 학생들은 개학 첫날 일부러 그를 찾아오곤 했기 때문이었다.
- 하지만 백지연은 그러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백지연이 제출한 가족관계 서류를 살펴보던 중 무심결에 그녀의 어머니가 유명한 뮤지컬 배우인 강연화라는 사실을 보게 된 것이었다.
-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바로 서울 상업계를 주름잡고 있는 백정호였다. 그 정도 재벌이라면 백지연은 원한다면 학교를 손에 쥐고 주무를 수도 있는 것이다.
-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백지연은 꽤 겸손했다. 오늘 온 그 대전의 심씨 가문의 아가씨와는 달리 말이다. 그녀는 이날 아침 접수를 하러 오면서 하다못해 집안의 재산 정황까지 전부 다 말할 기세였었다.
- 이로써 조교의 마음속에서 그 두 사람에 대한 인상은 극명하게 갈리게 되었고, 그는 순식간에 백지연에 대해 엄청난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 “좋아요. 그럼 더 이상 잡아두고 있지 않겠습니다. 혹시 필요하시면 다른 학생더러 아가씨와 함께 학교를 둘러 보도록 해드리겠습니다.”
- 그러던 그때, 복도 저편에서 몇 명의 훤칠한 2학년 남학생들이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 그들 역시 연영과 학생들이었다. 그들을 발견한 조교가 누군가를 불렀다.
- “한정우, 잠깐 이리로 와 봐.”
- ‘한정우!’
- 그 이름을 들은 백지연은 순간 바짝 긴장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그녀의 눈에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한 잘생긴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 그였다. 정말 그였다. 한정우는 바로 지난 삶에서 백지연이 좋아했던 남자였다. 하지만 그는 결국에는 심윤아와 사귀었었다.
- 한정우 역시 명문가에서 태어난 한씨 가문의 도련님이었다. 그는 데뷔와 동시에 엄청난 유명세를 얻었었는데, 그가 출연한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게 되면서 연예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톱스타 반열에 오르게 되었었다.
- 그리고 그다음 해에 데뷔한 심윤아의 첫 작품이 바로 그의 상대역이었고, 이로 인해 그들 커플을 지지하는 팬들이 아주 많았었다.
- 그리고 나중에야 팬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던 그 커플이 실제로 사귀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심윤아가 실수로 손이 미끄러져 한정우와 침대 위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기 때문이었다.
- 그렇게 두 사람은 스캔들이 났었고, 한정우가 바로 당당하게 두 사람이 연인 사이임을 인정하며 공식적으로 사귀는 사이가 되었었다.
- 그는 그녀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사람이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그에게 첫눈에 반해 그를 계속 짝사랑해 왔었다.
- 이후 연예계에서 활동하면서도 백지연은 언젠가 한정우와 같은 작품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랐었다. 비중 없는 조연이라도 충분하다고 말이다.
- 사실 그녀에게도 기회가 있기는 했었다. 졸업 이후 첫 작품에서 그와 만날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 기회는 심윤아에게 빼앗겨 버렸었다.
- 백지연은 자신이 한정우를 좋아한다는 것을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지만 심윤아는 어떻게 알았는지 그녀보다 한발 앞서 한정우를 빼앗아 갔었다.
- 수작을 부려 한정우에게 접근했고, 결국에는 한정우와 연인 사이가 되었었다.
- 지난 삶에서 백지연은 이 점이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었다. 사실 지난 삶에서의 심윤아는 회귀자였기에 그녀보다 먼저 한정우에게 접근할 기회가 있었던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 지난 삶의 이런저런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 살면서 처음으로 설렘을 느꼈었고, 이에 한정우는 백지연의 마음속에 아쉬움으로 남았었다.
- 하지만 이상했다. 어쩌면 또 한 번의 삶을 살게 되어서인지, 이번 삶에서 한정우를 마주친 그녀는 지난 삶에서처럼 두근거리지는 않았다.
- 그와 마주친 장소가 달라져서일 수도 있겠지만, 또 어쩌면 변한 것은 그녀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 백지연은 천천히 시선을 거두어들였다. 조교 앞으로 다가온 한정우가 인사를 건넸다.
- “장 조교님.”
- 그러자 조교가 백지연을 한번 쳐다보며 소개했다.
- “백지연, 이쪽은 2학년 선배인 한정우야. 정우도 우리 연영과지. 마침 우연히 마주쳤으니, 정우가 널 데리고 학교를 좀 둘러보면 되겠다.”
- 이에 한정우는 시선을 내려 백지연을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새하얀 목덜미에 닿았다가 곧이어 백지연의 정교한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 “안녕.”
- 백지연은 한정우의 인사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바로 조교를 향해 말했다.
- “괜찮아요. 저 혼자 돌아볼 수 있으니까 성가시게 그러실 필요 없어요. 그럼 전 먼저 가볼게요.”
- 말을 마친 백지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녀는 심지어 한정우에게는 시선 한 번 주지 않은 채 그와는 눈을 마주치지도, 말 한마디 섞지도 않았다.
- 하지만 한정우의 시선은 그녀가 코너를 돌아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백지연을 쫓았다.
- “장 조교님, 쟤 조교님네 반이에요?”
- “응, 신입생이야. 대단한 집 딸이지.”
- 이번 학번의 학생회 회장이었던 한정우는 평소 선생님들과도 교집합이 있었던 터라 인맥이 굉장히 넓었다.
- 그리고 조교의 말에 한정우는 조금 전 자신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던 그 소녀에 대해 흥미가 생겼다.
- ‘신입생이라, 재밌네.’
- 그는 오후에 있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 ……
- 한편, 강의실 건물을 빠져나온 백지연이 숨을 돌리기도 전에 그녀의 눈에 또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앞쪽에서 네 개의 인영이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 임재현은 건들건들 거리며 세 남자의 중간에서 걷고 있었고, 그런 그의 왼쪽에는 백지훈이 있었다. 오른쪽에 있는 두 남자는 각각 캠퍼스의 또 다른 두 명의 유명 인사인 주강민과 안민석이었다.
- 갈색의 캐주얼한 야구점퍼 차림의 백지훈은 길을 걷는 내내 끊임없이 조잘대고 있었다.
- “재현아, 내 사촌 여동생 대체 어떻게 생겼냐니까? 너 설마 정말 걔를 차 밖으로 던져버린 거 아니지? 망했어. 저녁에 우리 아버지한테 뭐라고 설명하냐고!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너더러 데리러 가라고 하는 게 아니었는데. 다 내 탓이지, 내 탓이야…”
- 그러자 안민석이 말했다.
- “확실히 버리긴 버렸을 거야. 지훈이 너 진짜 무모하다. 재현이한테 너 대신 걔를 데리러 가라고 하다니. 아니지, 재현이가 왜 간 거지? 너희 둘 뭔가 이상한 거래 같은 거 한 거 아니야?”
- 그 말에 정곡을 찔린 백지훈은 괜스레 발끈하며 발뺌했다.
- “안민석, 거래는 무슨 거래야.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 하지만 재현이가 그쪽 취향이라면 내가 한 번 정도는 생각해 볼 수도…”
- “꺼져.”
- 임재현은 그를 향해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 이상한 거래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아버지라고 한 번 불렀을 뿐이었다.
- 그렇게 네 사람은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갔다.
- 임재현은 아직 목적지에 도착도 하기 전에 길 끝에 있는 백지연을 발견하고는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 그리고 그녀의 앞에 멈춰 서자, 백지훈과 다른 두 명도 백지연의 존재를 알아챘다. 그녀를 발견한 세 사람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 ‘헐! 올해 신입생 물 좋은데?! 예쁘잖아!’
- “재현아, 우리 여기서 기다리는 거야? 너무 일찍 온 거 아니야? 지훈이네 사촌 여동생 분명 아직 안 내려왔을 거야! 그냥 교실로 찾아가는 게 어때?”
- “걔 지금 너희들 앞에 서 있어.”
- “!!!”
- ‘헐!’
- ‘뭐?!’
- 세 사람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보이는 사람이라고는 자신들 앞에 서 있는 요정 같은 여자애뿐이었다.
- ‘지훈이네 사촌 여동생은 엄청 못생겼다고 하지 않았었나? 대박! 설마 얘가 백지훈 사촌 여동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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