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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교실에서 펼쳐진 가식적인 연기

  • 얼마 안 가 심윤아가 도착했다. 심씨 가문의 아가씨는 역시나 등장부터 일반적이지 않았다.
  • 교실에 들어선 그녀의 뒤에는 꽤 오버스럽게 두 명의 고용인이 따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부잣집 아가씨의 위세를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 고용인들의 손에는 두 봉지 가득 버블티와 과자가 들려있었다.
  • 지난 삶에서는 백지연이 늦게 도착했었다. 그녀의 접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던 탓에 그녀는 길을 잘못 들었었고, 뒤늦게 교실에 도착한 그녀는 교실에 있는 동기들이 모두 환하게 미소 띤 얼굴로 심윤아를 대하며 그녀를 공주처럼 떠받들어 주고 있는 모습이었었다.
  • 그때만 해도 그녀는 심윤아가 인복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심윤아는 인복이 있는 것이 아닌 통이 컸었던 것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 오자마자 모두에게 선물을 주고, 버블티와 과자까지 주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 맨 뒷줄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백지연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꽤 적었다.
  • 심윤아는 고용인들에게 과자와 버블티를 나누어 주도록 지시하고는 상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 “여러분, 저는 심윤아라고 해요. 앞으로 함께 공부하게 될 텐데, 다들 잘 부탁드려요! 앞으로 제가 무언가 미흡하게 행동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너그럽게 봐주세요.”
  • “세상에, 윤아야, 너 너무 귀엽다!”
  • “맞아 맞아. 버블티 너무 달고 맛있어.”
  • “너 돈 엄청 많다. 이 과자들 다 해외에서 들여온 거지? 바삭바삭한 게 역시 다르네. 이렇게 맛있는 과자는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어. 윤아야, 너 재벌 2세야?”
  • 사람들의 아부 섞인 말들에 심윤아는 쑥스러운 듯 입을 가리고 몰래 웃음 지었다.
  • “어머, 너희들이 너무 거창하게 말하는 거야. 이것들은 나한테는 그저 매일 같이 먹는 간식들인걸. 그냥 너희들이랑 함께 나누고 싶어서 챙겨 온 거야. 맛있으면 앞으로도 자주 가져와서 나눠줄게. 어차피 난 매번 사 온 것들 다 먹지도 못해서 낭비해 버리거든!”
  • “그래서 윤아 네가 그렇게 날씬한 거구나. 나였으면 있으면 있는 대로 내가 다 먹었을 거야…”
  • “맞아 맞아. 윤아 너 지금 입고 있는 그 원피스 너무 예쁘다. 그거 루이비통 신상 아냐? 부럽다…”
  • 모두들 심윤아에게 아부를 해대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때, 고용인 중 하나가 뒷줄에 있는 백지연을 발견하고는 말했다.
  • “거기 뒷줄에 있는 학생, 학생도 얼른 와서 버블티랑 과자 받아 가요!”
  • 고용인의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백지연에게로 향했다. 백지연은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려 쌀쌀맞은 눈빛으로 그들을 힐긋 쳐다보더니 나직이 입을 열었다.
  • “필요 없어요.”
  • “……”
  • “!!!”
  • 뒷줄에 앉아 있는 백지연을 발견한 심윤아는 순간 깜짝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
  • ‘저 계집애는 어떻게 이렇게 일찍 와있는 거야! 어떻게 나보다 더 일찍 온 거지? 그럴 리가 없잖아!’
  • 하지만 심윤아는 이내 다시 침착함을 되찾고는 백지연에게 걸어가 친한 척 백지연의 팔에 팔짱을 끼며 말했다.
  • “언니, 나보다 일찍 왔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같은 차를 타고 올걸 그랬어요. 그렇지 않아도 엄마 아빠가 오늘 언니 얘기를 하셨었는데. 그렇게 집을 나가고 돌아오지 않는다고요. 엄마 아빠가 언니를 얼마나 걱정하고 계시는지 몰라요!”
  • ‘걱정? 걱정은 개뿔.’
  • 심윤아는 백지연이 떠난 뒤로 이제껏 계속 은근히 심현규와 윤혜선에게 백지연은 심씨 가문의 양녀가 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심어주며 자기 자신을 추켜세우고 있었다.
  • 거기에 더해 심현규와 윤혜선은 지난 오랜 시간 동안 밖에서 고생했던 심윤아에게 무척이나 잘해 주었다. 하다못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기세였다.
  • 지난 삶의 백지연이었다면 그 말을 듣고 어쩌면 감동을 받아 기꺼이 심씨 가문의 손에 휘둘렸겠지만, 이번 삶에서의 그녀는 더는 그런 바보 같은 짓은 할 생각이 없었다.
  • 이에 백지연은 심윤아의 팔 안에서 자신의 손을 빼내며 쌀쌀맞게 말을 내뱉었다.
  • “언니? 누가 네 언니야?”
  • 그런 그녀의 반응에 심윤아는 멈칫했다.
  • “그야 당연히 언니를 말하는 거죠. 언니는 내 언니잖아요.”
  • 그러자 백지연이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 “너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누구더러 언니래. 우리 집에 딸은 나 하나뿐이고, 위로는 오빠 하나밖에 없어. 그런데 동생이라고? 미안하지만 난 동생 같은 거 없어. 그리고 넌 심씨고, 난 백씨잖아. 우리 둘이 성도 다른데 누굴 보고 언니라고 하는 거야?”
  • 심윤아는 난처하기 그지없었다.
  • ‘이 계집애가 왜 이러는 거지? 왜 전이랑 다른 거야?!’
  • 하지만 모두가 보는 앞에서 본색을 드러낼 수 없었던 심윤아는 계속해서 연약한 척하며 백지연의 손을 잡고 말했다.
  • “언니, 이러지 말아요. 비록 내가 엄마 아빠의 친딸이고, 언니는 그저 양녀지만, 난 진심으로 언니랑 잘 지내보고 싶어요. 그러니까 날 모른 척하지 말아요. 우린 사이좋은 자매잖아요!”
  • 그러자 백지연은 진절머리 난다는 듯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 “만지지 마. 난 결벽증이 있어서 더러운 건 못 참아.”
  • 말을 마친 백지연은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하나 꺼내 심윤아와 닿았던 피부를 닦아냈다. 그리고는 그 손수건은 그대로 버렸다.
  • 눈썰미가 좋은 사람들은 백지연이 버린 손수건이 에르메스의 제품이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챘다. 그 손수건 한 장만 해도 몇십만 원을 호가하는 물건이었다.
  • “세상에, 저거 에르메스야!”
  • “쟤가 윤아보다 더 부자인 것 같은걸!!”
  • “세상에나! 버리지 마! 안 가질 거면 나 줘. 내가 가질래!”
  • 이에 심윤아는 순간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음 순간 바로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내뱉었다.
  • “언니, 내가 뭘 잘못한 거예요?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말해주세요. 내가 고칠게요. 그러니까 날 모른 척하지 말아요, 네?”
  • 백지연은 심윤아가 연기에 능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연기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 다짜고짜 눈물을 뚝뚝 떨구는 그 모습을 보니 지난 보름간 심현규와 윤혜선 앞에서도 적잖이 연기를 선보였을 것은 불 보듯 뻔했다.
  • 그런 그녀를 상대해 주고 싶지 않았던 백지연은 단 세 글자만을 내뱉었을 뿐이었다.
  • “더러워.”
  • 그 세 글자는 살상력은 강하지 않았지만, 극히 모욕적이었다.
  • 심윤아는 화가 치밀었다. 그녀는 분노로 이가 갈릴 지경이었다.
  • ‘이 계집애는 왜 이렇게 사납게 변한 거야! 분명 질투하는 거겠지. 아무래도 내가 돌아온 뒤로 자기는 심씨 가문에서 쫓겨났으니 말이야. 그리고 아까 바닥에 버린 그 손수건도 분명 심씨 가문에서 들고 나간 걸 거야. 허, 그렇겠지, 저 계집애네 집처럼 가난한 집안에서 에르메스를 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 이에 심윤아가 또 무언가 말하려던 그때, 조교가 들어와 공지 사항을 말했다.
  • “다들 일단 기숙사에 가서 물건들 정리하고 오후에 다시 교실에서 모여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할 거야. 그리고 백지연 너는 잠깐 나 좀 따라와.”
  • 백지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교를 따라 교실을 떠나갔다. 심윤아에게 그녀의 앞에서 계속 연기를 펼칠 기회 따위는 아예 주지 않은 채 말이다.
  • 떠나가는 백지연을 본 심윤아는 마음속의 분노를 눌러 내렸다.
  • ‘천한 년, 두고 봐!’
  • 그녀는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향해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 “미안해. 너희들한테 우스운 꼴을 보였네. 사실은 쟤가 내 언니야.”
  • “언니라고? 하지만 너희 둘은 성이 다르잖아. 게다가 쟤는 왜 너한테 그렇게 쌀쌀맞게 구는 건데?”
  • 심윤아는 황급히 얼굴을 가리며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곁에 있던 고용인이 다급히 말을 보탰다.
  • “사실 저분은 저희 사장님과 사모님께서 실수로 병원에서 잘 못 데려온 아이예요. 18년을 키워주셨는데 결국에는 머리 검은 짐승을 키워준 꼴이 됐죠. 여러분도 저분이 지금 우리 아가씨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셨겠지만, 정말이지 너무하지 않나요?! 아마도 우리 아가씨가 자기 자리를 빼앗았다고 생각하고 미워하는 거겠죠.”
  • 지난 시간 동안 심윤아는 모든 사람 앞에서 좋은 사람인 척해왔었다. 따지고 보면 이 두 고용인도 백지연이 자라는 과정을 다 지켜본 사람들이었지만 그들도 현재 심윤아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그녀를 도와 백지연의 험담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 그런 고용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다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런 거였구나. 세상에. 백지연 걔 너무하는 거 아니야? 분명히 자기가 가짜면서 진짜한테 그렇게 심하게 대하다니 말이야. 모르는 사람이 보면 걔가 진짜 아가씨인 줄 알겠어.”
  • “알겠다. 아까 걔가 버린 에르메스도 분명 윤아네 집에서 가져간 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