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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잘못 데려온 아이

  • “딸아!”
  • 정장 차림의 백정호와 원피스를 입고 있는 강연화가 다급히 거실로 뛰어 들어왔다.
  • 백현숙의 옆에 앉아 있는 백지연을 발견한 그들은 곧바로 달려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사방에서 퍼져오는 은은한 향기에 고개를 돌려 그들을 쳐다보던 백지연도 이내 팔을 들어 그들을 감싸안았다.
  • 두 사람은 이미 친자 검사 결과에 대해 알고 있는 상태였다. 이 소식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백정호는 한창 회의 중이었다. 하지만 소식을 듣고 회의도 제쳐둔 채, 회의실 가득 앉아 있는 직원들을 뒤로하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고, 극장에서 리허설을 하고 있던 강연화 역시 친딸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리허설도 내팽개치고 얼른 딸을 만나러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 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백지연을 찾고 있었다. 자그마치 18년을 말이다.
  • 이에 그들은 딸이 그리워 병이 날 지경이었던 것이다.
  • 그리고 이미 지난 삶 동안 심씨 가문 사람들에게 모진 괴롭힘을 당했었던 백지연은 지금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가족의 사랑을 느끼고 있었다.
  • 그녀는 코끝이 시큰거렸다. 지난 삶의 힘들었던 기억에 이번 삶에서 친부모님을 만나게 된 기쁨이 더해져 그녀는 더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 그녀는 자신의 설움을 전부 눈물로 토해냈다. 다 큰 성인 남자인 백정호 역시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히며 눈가에 눈물을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 “얘야, 고생 많았다. 드디어 집에 돌아왔으니 엄마 아빠는 이제 더는 너한테 그 어떤 고생도 시키지 않을 거다! 그 어떤 설움도 당하게 하지 않을 거야!”
  • 강연화는 오열했다.
  • “내 아가! 엄마는 널 엄청 오랫동안 찾았단다. 드디어 네가 돌아왔구나. 드디어 돌아왔어…”
  • “아빠… 엄마…”
  • 백지연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백정호는 이제 흰머리가 희끗희끗 보이고 있었다.
  • 비록 강연화는 꽤나 관리를 잘한 듯해 보였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두 눈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 지난 시간 그들은 백지연을 찾기 위해 그야말로 힘든 시간을 보내왔던 것이다. 강연화는 손을 들어 백지연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 “네가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 걸 듣게 되다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
  • 강연화는 백지연을 낳을 당시 나이도 적지 않았던 데다 출산 과정에서 대량의 출혈이 있었다.
  • 첫째는 아들이라 둘째는 딸을 원했었고, 바라던 딸을 낳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아이가 바뀌어버린 탓에, 강연화는 당시 산후 우울증에까지 걸렸었다.
  • 딸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이제껏 버텨오지 않았다면 그녀는 아마 진즉에 수년 전 그때 병원 옥상에서 몸을 던졌을 것이다.
  • 백지연은 곁에 있는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너무 좋았다. 이번 생에는 엇갈리지 않고 그들을 만나게 된 것이 말이다.
  • 지난 삶에서 그들이 도대체 얼마나 자신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랐을지 백지연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 하지만 그녀가 돌아오기를 바랐던 그들의 염원은 끝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결국 죽어버렸기 때문이었다.
  • 이에 백지연은 이번 생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어떤 아쉬움도 남기지 않으리라 속으로 다짐했다.
  • 그러던 그때, 실수로 이마의 머리카락이 들리게 되면서 그들 모두가 백지연의 이마 위에 남아 있는 아직 아물지 않은 교통사고로 인한 상처를 보게 되었다.
  • 이에 백현숙은 깜짝 놀라며 심각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 “지연아! 이마는 왜 그렇게 된 거니?! 누가 때리기라도 한 거니?!”
  • 백정호와 강연화 역시 잔뜩 심각해진 얼굴로 백지연은 바라보았다. 그들의 두 눈에는 걱정과 애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 백지연은 그런 그들의 눈빛에 감동하며 그들에게 설명했다.
  • “아니에요. 얼마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난 상처예요. 엄마, 아빠, 할머니,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그러자 강연화가 물었다.
  • “교통사고라고? 어쩌다 교통사고를 당한 거니?! 우리한테 자세히 얘기해 봐, 지연아.”
  • 백정호도 입을 열었다.
  • “여기, 이따가 전체 건강 검진을 진행해 지연이의 몸 상태를 제대로 한번 검사해 보도록 해!”
  • 이에 백지연은 그들의 손을 잡아 소파에 앉히고는 설명을 이어 나갔다.
  • “교통사고가 난 덕에 제가 양부모님의 친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거고, 그래서 엄마 아빠를 찾기로 결정했던 거예요.”
  • “그런 거였구나. 지연아, 양부모님은 어디 분들이시니? 이렇게 오랜 시간 널 키워주셨고, 또 이렇게 다 큰 처녀로 키워주셨으니, 우리가 감사의 의미로 선물이라도 보내야겠어!”
  • “대전의 심씨 가문이에요.”
  • 백지연은 자신을 키워준 심씨 가문의 은혜는 단 한 번도 부정한 적이 없었다. 지난 삶에서 그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면서도 끝내는 계속 심씨 가문에 남아있었던 것도 바로 은혜를 갚기 위해서였다.
  • 백정호가 입을 열었다.
  • “대전의 심씨 가문?”
  • 그러자 강연화가 고개를 돌려 백정호를 바라보며 물었다.
  • “여보, 아는 집안이에요?”
  • 대전과 서울은 아예 수준이 다른 도시였다. 서울은 수도였고, 대전은 그저 광역시에 지나지 않았다.
  • 백씨 가문은 서울의 재벌가였고, 심씨 가문은 그저 광역시의 재벌이었다. 재벌이라고 칭한 것도 꽤 듣기 좋게 평가한 것이었다.
  • 백씨 가문에 비하면 심씨 가문은 그저 돈이 조금 있는 집안에 불과했다.
  • 백정호가 말을 내뱉었다.
  • “들어 본 적 있는 것 같아. 생각났어! 올해 하반기에 대전과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중 한 회사의 이름이 신우 그룹이었던 것 같아. 그 회사는 이미 후보에서 탈락했었는데, 그분들이 이제껏 지연이를 키워주신 양부모님이라면, 이렇게 하는 게 좋겠군. 그 프로젝트를 그 회사에 맡기면 되겠어! 그분들께 드리는 소소한 선물인 셈이지.”
  • 이에 백지연은 담담하게 미소 지었다.
  • “고마워요, 아빠. 하지만 그분들은… 아니, 아니에요.”
  • 그러자 이상함을 감지한 강연화가 물었다.
  • “지연아, 하지만 뭐니? 설마 그 사람들 집에 있을 때 그 사람들이 널 괴롭힌 거니?! 그 사람들이 널 학대한 거야?!”
  • 백지연은 손을 내저었다.
  • “아니에요.”
  • 사실 심윤아가 돌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심현규와 윤혜선은 그녀에게 꽤 잘 대해주었었다. 단지 심윤아가 돌아온 이후로 서서히 마음이 기울기 시작하더니 끝내는 완전히 심윤아의 편이 되었던 것뿐이었다.
  • 지난 삶에서 백지연은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얼마나 비굴해졌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를 가장 낙심하게 만들었던 것은, 그녀가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심현규와 윤혜선은 재수가 없다면서 그녀를 한 번도 보러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 이는 그녀에게는 절대 지워지지 않는 상처였다. 그녀는 굉장한 실망감에 사로잡혔고, 앞으로의 결말 또한 예상할 수 있었다.
  • 이에 잠시 생각하던 백지연은 부모님을 향해 말했다.
  • “엄마, 아빠, 사실 그분들은 저한테 잘해주셨어요. 다만 이제 그분들의 친딸도 돌아왔으니, 우리 갑자기 찾아가 그분들에게 실례를 끼치지 말고 사람을 시켜 선물을 보내는 게 좋겠어요. 두 분 생각은 어떠세요?”
  • “그래, 지연이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정호 씨, 그냥 사람을 시켜 선물을 보내면 될 것 같아요. 그래도 그분들께 빚을 지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 강연화는 여자의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백지연은 분명 마음속에 감추고 있는 설움이 있었다. 그저 말을 하지 않을 뿐이었다.
  • 모녀는 서로 마음이 통한다고, 백지연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그녀도 더는 물을 생각이 없었다.
  • 다만 심씨 가문에 대한 그녀의 인상은 이미 마이너스로 떨어져 있는 상태였을 뿐이었다.
  • 그렇게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그때, 또 한 대의 차가 밖에 멈춰 섰다. 차 소리를 들은 강연화가 기쁜 듯 입을 열었다.
  • “지연아, 너희 오빠가 돌아왔나 봐!”
  • 그녀가 말을 내뱉는 동안 백도훈은 이미 성큼성큼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의 훤칠한 모습이 문 안으로 들어섰다.
  • 백정호의 늠름함과 강연화의 이목구비를 그대로 물려받은 그의 잘생긴 얼굴은 곧 서른의 나이임에도 여전히 멋지기 그지없었고, 보기에는 이십 대 초반의 청년으로 보였다.
  • “도훈아!”
  • “어머니, 아버지.”
  • 백도훈이 입을 열었다. 그러다 소파 중간에 앉아 있는 예쁜 여자애에게 시선이 닿은 순간, 그의 눈빛이 순식간에 부드럽게 풀어졌다.
  • “이 아이가 제 여동생이에요?”
  • 강연화가 답했다.
  • “그래, 이 아이가 지연이야. 어서 와서 한번 안아보렴.”
  • 그 말에 백도훈이 그녀 쪽으로 다가오며 기다란 두 팔을 벌렸다.
  • “지연아!”
  • 그러자 백지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품에 안기며 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