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11화 첫 번째 스파이

  • 아벨 백화점으로 향하면서 날이 어두워졌고 영주혁은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물었다.
  • “누나, 온가네 사람들이 누나를 그렇게 대하는 데 왜 그냥 참고만 있어? 누나 실력이라면 굳이 참지 않아도 되잖아?”
  • “예전에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에 나한테는 두 개의 선택지가 있었어. 하나는 계속 학교에 다니는 거고 다른 하나는 일을 시작하는 거였어.”
  • 온나리는 운전하면서 기억을 떠올렸다.
  • “난 첫째니까 이기적이면 안 되잖아. 그래서 나는 돈 벌어서 다른 애들 계속 학교 다닐 수 있게 뒷바라지할 셈이었어. 그렇게 지망 쓰는 날이 됐고 그때 지금의 내 양아버지께서 날 찾아왔어. 그분은 우리 담임 선생님의 오래된 친구였는데 내 사정을 알고서는 내가 대학 다닐 수 있게 도와주시겠다고 하셨어. 그때 그분은 나한테 신 같은 존재였지. 날 절망의 늪에서 구해주신 분이었으니까.”
  • 영주혁은 답답한 심정에 고개를 돌려 온나리를 바라봤다.
  • “다른 조건은 없었어?”
  • “없었어.”
  • 오나리는 고개를 저었다.
  • “그분은 자선가 같으셨어. 내가 상업 쪽으로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으셨고 그래서 내가 가난 때문에 빛을 잃는 게 싫으셨던 거야.”
  • 영주혁이 물었다.
  • “그래서 그 은혜에 보답하고 싶은 거야?”
  • “맞아. 그분이 날 왜 도와주셨는지 그 이유는 모르지만, 그분이 내 인생을 바꾼 건 사실이니까.”
  • 온나리는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 “은혜는 은혜고 원망은 원망이야. 난 온가네 사람들을 위해 20년 동안 일하거나 양아버지께 200억을 드릴 거라고 맹세했어. 그래야만 내 인생을 바꿔준 그 은혜에 보답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 영주혁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 “고작 200억인데, 주면 그만이지.”
  • “뭐라고?”
  • 온나리가 그의 말을 듣지 못해 다시 물으려는데 영주혁이 갑자기 허리를 펴고 앉으면서 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 “누나, 길가에 차 세워줘.”
  • 조금 전 그는 천괴에게서 N국 스파이의 행적을 찾아냈다는 문자를 받았다.
  • “왜 그래?”
  • 온나리는 깜짝 놀라서 급히 브레이크를 밟고 길가에 차를 세웠고, 영주혁은 곧바로 차에서 내리며 다급히 말했다.
  • “누나, 나 병원 못 갈 것 같아. 누나가 나 대신 할아버지 모셔다드려.”
  • “왜 그래, 주혁아? 무슨 일이야?”
  • “친구가 내 도움이 필요하대.”
  • 영주혁은 아무렇게나 핑계를 댔다.
  • 온나리가 계속 물을 것 같아지자 그는 얼른 말을 보탰다.
  • “남자 간의 일이야.”
  • 온나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조심해.”
  • 온나리의 빨간색 BMW가 멀리 떠나고 나서야 영주혁은 천괴에게 전화를 걸었다.
  • “무슨 상황이야?”
  • “보스, 조금 전 저희 쪽 비밀 연락원이 N국 사람 중 행적이 이상한 사람이 있다며 소식을 전했습니다. 아마 스파이인 듯합니다.”
  • “무슨 신분인데?”
  • “대학 교수인데 학술 세미나 때문에 D국에 왔다고 합니다.”
  • 영주혁의 눈에 언뜻 살기가 스쳤다.
  • “잡아. 잘못 잡는 한이 있더라도 놓쳐서는 안 돼. 정확한 장소는 어딘데?”
  • 천괴가 대답했다.
  • “북천로 예람 타운 45번 구역이라고 합니다. 지유가 사람을 데리고 그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 “나도 그 근처니까 지유더러 날 기다리라고 해.”
  • 영주혁은 택시를 불러 세웠다.
  • “기사님, 북천로 예람 타운으로 가주세요.”
  • 지유와 그가 데리고 온 사람들은 예람 타운 밖에서 영주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제울섬 출신의 정예들이었다.
  • 영주혁은 그들이 몸을 숨기고 있는 그늘진 곳으로 향했다.
  • “지유, 탐색은 끝마쳤어?”
  • 지유는 어둠에 완전히 녹아든 듯이 모습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렸다.
  • “교수 이름은 이케다 야스히라입니다. N국에서 아주 존경받는 학자라고 하더군요. 그가 D국에 1차로 잠입해 들어온 스파이라고 거의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 예람 타운은 경비가 아주 삼엄해요. 등록한 인원과 차량만 들어갈 수 있어서 강제로 들어가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 “괜히 경계만 강화될 수 있어.”
  • 영주혁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 “두 사람이 한 팀이 돼서 1조는 세보플루란으로 경비원을 제압하고 2조는 모든 감시 카메라를 차단해. 3조는 밖에 남아서 대기하고 4조는 나와 함께 들어가서 사람을 잡을 거야.”
  • 지유는 경악하며 말했다.
  • “제울, 직접 움직일 생각이십니까?”
  • “이건 첫 번째 목표물이야. 예상 밖의 일이 터진다면 앞으로 스파이를 찾아내는 게 더 어려워질 수 있어.”
  • ...
  • 달이 중천에 높이 걸렸고 영주혁은 시계를 한 번 보더니 손짓했다.
  • “작전 개시.”
  • 그의 명령에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조용히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 약 10분 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감시 카메라의 빨간 불빛이 꺼지고 영주혁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됐어. 진입한다.”
  • 대문 쪽에 있는 경비실을 지나치자 어둠 속에서 몸을 감추고 있던 1조가 안전하다는 손짓을 해 보였고 영주혁 일행은 순조롭게 입구를 통과했다.
  • 가는 길 내내 아무런 일도 없었고 그들은 아주 순리롭게 45번 별장에 도착했다.
  • 별장 안의 어느 방 안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니 이케다 야스히라는 아직 잠이 들지 않은 듯했다.
  • “지유, 이 집에 저 사람 한 명뿐이야?”
  • “비밀 연락원의 말로는 혼자 살고 있다고 합니다.”
  • “알겠어. 문 열어.”
  • 한 병사가 앞으로 나오더니 조용히 허리를 숙이고 문을 따기 시작했다.
  • 제울섬의 모든 정예군은 저마다 여러 가지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고 문을 따는 건 그들에게 있어서 어린아이들 소꿉장난처럼 쉬운 일이었다.
  • “철컥!”
  • 대문이 소리를 내며 열렸다.
  • 그들은 조심스럽게 별장 안으로 진입했고 불빛의 방향을 따라 2층 서재 문 앞에 도착했다.
  • 살짝 열린 문틈으로 서재 안의 불빛이 어두운 복도까지 쭉 이어졌다.
  • 문 앞에 서니 안에서 책을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 그들이 숨까지 참아가며 온 신경을 집중해 그를 잡으려고 할 때, 영주혁은 갑자기 머리털이 쭈뼛 서면서 뼈까지 시릴 정도의 어마어마한 위기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