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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누나, 속살 보여

  • “말해 봐. 무슨 내기를 하고 싶은 거냐?”
  • 온범준은 그늘이 진 표정으로 말했다.
  • “제울그룹과의 협력을 내기로 걸죠. 오성 그룹이 제울그룹과 협력할 수 있다면 저희 누나가 아벨 백화점을 당신들한테 줄 겁니다.”
  • 그 말에 온수찬의 눈빛이 번뜩였다.
  • 그는 오래전부터 아벨 백화점을 탐내고 있었다.
  • “아직 좋아하기엔 이르죠.”
  • 영주혁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 “그러나 아벨 백화점이 먼저 제울그룹과 협력하게 된다면 오성 그룹의 모든 주식을 누나 명의로 해야 할 겁니다.”
  • 그건...
  • 온범준의 안색이 급변했다.
  • 온나리를 따돌리고 싶은 것은 맞으나 이렇게 큰 판돈을 걸고 싶지는 않았다.
  • “해야죠! 내기하세요.”
  • 온기욱은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 “여자한테 빌붙어 사는 기생오라비가 이 업계의 규칙을 어떻게 알겠어요?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겠어요? 내 말이 맞지, 매제?”
  • 위강훈은 경멸 어린 시선으로 영주혁을 흘겨보며 말했다.
  • “제울그룹의 프로젝트가 아무나 따낼 수 있는 건 줄 아세요? 이런 얘기 듣기 싫겠지만 아벨 백화점은 공모전에 참여할 자격도 없어요.”
  • 그 말에 온범준은 마음이 한결 놓였는지 자신 있게 말했다.
  • “그래. 네 말대로 너랑 내기하겠다.”
  • 온범준의 말에 홀 전체가 떠들썩해졌다.
  • “정말 주제도 모르고 까부네. 이거 완전 자기 발등 자기가 찍는 격 아냐?”
  • “온나리 큰일 났네. 아벨 백화점이 뭐라고 위가네랑 겨룬다는 거야?”
  • “공모전에서 좋은 구경이나 하자고. 온나리는 저 기생오라비 때문에 큰코다치겠다.”
  • 온아름은 환히 웃으며 말했다.
  • “언니 정말 멍청하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기생오라비가 결정하게 놔둬? 언니 집안에는 정말 믿을만한 사람이 없나 봐.”
  • 그 말에 홀에 있던 사람들은 박장대소했다.
  • 온지후는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강서연은 울먹이며 말했다.
  • “온나리, 이 원수 같은 년. 죽을 거면 혼자 죽지 왜 우리까지 끌어들이는 거야? 정말 내가 전생에 뭔 죄를 지었길래...”
  • 온나리 또한 넋이 나가 있었다.
  • “주혁아, 너... 너 진짜 큰 사고 쳤어...”
  • 영주혁은 온나리의 손을 잡고 일어서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그들을 둘러보았다. 그는 무감한 얼굴로 말했다.
  • “내기는 정해졌고 온가네 가족 모임에 대한 흥미도 다 떨어졌으니까 저희는 먼저 가볼게요. 나오지 마세요.”
  • 말을 마친 뒤 그는 온나리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 “주혁아... 주혁아!”
  • 호텔 문 앞에 도착하자 온나리는 영주혁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
  • “주혁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아벨 백화점이 나한테 뭘 의미하는지 몰라서 그래?”
  • “알아. 아니까 이러는 거야. 내가 누나 아벨 백화점 지켜줄게.”
  • “하지만...”
  • 온나리는 눈시울을 붉혔다.
  • “넌 이 업계의 이해관계를 아예 모르잖아. 위강훈의 집안은 네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강해!”
  • 영주혁은 앞에 나서더니 담갈색 눈동자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누나, 나 믿어?’
  • “난...”
  • 온나리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당연히 믿지. 하지만...”
  • “그럼 됐어.”
  • 영주혁은 씩 웃어 보이며 돌연 화제를 바꿨다.
  • “그런데 누나, 나 지금 너무 배고프다. 누나가 해준 음식 먹고 싶어.”
  • 역시나 동생이 막무가내로 굴자 온나리는 또 한 번 그에게 져줬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어떻게든 되겠지. 내가 제울그룹하고 연락할 방법을 알아볼게. 가자. 우선 집에 가서 밥부터 먹자...”
  • 온나리의 집은 경안구 교외 쪽의 평범한 별장 구역에 있었고 너무 좋지도, 또 나쁘지도 않았다.
  • 운전해서 별장 앞에 도착하자 온나리가 입을 열었다.
  • “주혁아, 나 여기 근처에 있는 슈퍼에 가서 장 좀 보고 올 테니까 너 먼저 들어가. 비밀번호는 0 여섯 개야.”
  • “내가 같이 가 줄까?”
  • “아니. 슈퍼 가까워서 괜찮아. 너 먼저 돌아가서 씻고 쉬고 있어.”
  • 영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그는 따뜻한 물에 샤워할 필요가 있었다.
  • 제울섬을 떠나고 그는 많은 고생을 거쳐 이곳에 도착했고 지금까지 쉬지 못했기에 별장 안에 들어선 뒤 곧장 2층 샤워실로 향했다.
  • “솨아아...”
  • 안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와 영주혁은 의아했다.
  • ‘큰누나 혼자 사는 거 아니었나? 왜 다른 사람이 여기서 샤워하고 있는 거지?’
  • 그의 인기척을 들은 건지 물소리가 멈췄고 샤워하고 있던 사람이 말했다.
  • “언니 왔어? 밖에 있는 내 잠옷 좀 가져다주라.”
  • 언니?
  • 영주혁은 발걸음을 멈추고는 미소를 지었다.
  • 안에서 샤워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일곱 누나 중 한 명인 듯했다.
  •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욕실 입구의 선반 위에 검은색 레이스가 달린 잠옷이 있는 걸 보았고 그걸 문틈으로 건네줬다.
  •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상대에게 손목이 잡혔다.
  • “당신 누구야?”
  • 깨끗하지만 살기가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 영주혁이 막 입을 열려는데 갑자기 눈앞에 흰 물체가 나타났고 잠옷을 걸친 여자가 다짜고짜 발길질을 날렸다.
  • “누나, 속살 보여!”
  • 영주혁은 웃음기 섞인 어조로 말하면서 상대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했으나 그는 곧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 상대의 모든 공격은 정확하게 그의 급소를 노리고 있었고 전부 치명적이었다.
  • 이렇게 숙련된 살인 기술을 갖추고 있다니, 제울섬의 정예도 그녀를 이길 수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 잠깐... 살인?
  • 영주혁은 불현듯 정신이 들었다.
  • 눈앞의 엄청난 몸매를 자랑하는 여자는 아마도 자신의 셋째 누나인 인해은인 듯했다.
  • 예전에 셋째 누나는 둘째 누나와 마찬가지로 칼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했는데 둘째 누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였고 셋째 누나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였다.
  • 게다가 그녀가 사용하는 건 칼뿐만이 아니었다.
  • 독극물을 만들어 투하하고, 매복해서 불의의 일격을 가하는 등등 모두 그녀가 잘하는 일이었다.
  • 그녀가 있었기에 7년이란 시간 동안 영주혁은 보육원에서 살아있는 쥐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 과거 10살의 인해은은 7살의 영주혁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 “난 죽여야 할 사람과 죽여야 할 동물만 죽여.”
  • 그런 생각이 들자 영주혁은 돌연 두 손에 힘을 주고 그녀 뒤에서 와락 끌어안으며 씩 웃었다.
  • “너무 한다. 남편 죽이려고 그래?”
  • “이거 놔!”
  • 품 안에 안긴 여자는 레이스가 달린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한바탕 싸우고 나니 옷차림이 흐트러져 있었다.
  • “당신 대체 누구야? 왜 다른 사람의 집에 침입한 거지?”
  • 인해은은 힘껏 발버둥 쳤으나 그의 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대체 누구길래 실력이 이렇게 대단하단 말인가?
  • “그건 내가 묻고 싶어. 왜 다짜고짜 사람을 때리려고 그래, 셋째 누나?”
  • “무슨...”
  • 뭐라고 대꾸하려던 인해은은 잠시 흠칫하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자신의 코앞에 있는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 “방금... 뭐라고 불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