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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잘난 척

  • 뭐라고?
  • 나서희는 잠깐 흠칫하더니 이내 목청을 높이며 말했다.
  • “고객님. 미리 말씀드리지만 아홉 개 반지의 총가격은 100억이 넘습니다.”
  • “알아요. 100억. 얼른 포장하세요.”
  • “포... 포장이요?”
  • 나서희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 “고객님, 소란 피우실 생각이라면 경찰 부르겠습니다.”
  • 그 말과 함께 그녀는 VIP 응접실 입구에 서서 큰 소리로 말했다.
  • “점장님, 여기 어떤 분이 다이아몬드 반지를 9개나 구매하시겠다고 하네요. 얼른 와 보세요.”
  • 그 말에 샵 전체가 떠들썩해졌고 그곳에 있던 모든 고객과 직원들이 그곳에 모여들었다.
  • 그들은 그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다.
  • 하지만 평범하디 평범한 옷차림을 한 영주혁을 보는 순간,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의논하기 시작했다.
  • “쳇, 나는 진짜 엄청난 부자가 온 줄 알았는데 그냥 평범한 사람이잖아.”
  • “잘난 척하긴. 내가 보기에 저 사람은 반지 하나도 못 살 것 같아.”
  • “여자 앞이라고 잘난 척하려는 것 같은데 조금 이따가 돈 낼 때 되면 아주 볼만하겠다.”
  • 사람들의 의논 소리에 도유진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 잘나가는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이렇게 큰 망신을 당한 적이 없었다.
  • “나리야, 네 동생 어디 아픈 거 아냐? 왜 굳이 창피한 짓을 골라서 해?”
  • 사람들의 손가락질에 도유진은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 들었다. 온나리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당장 자리를 떴을 것이다.
  •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온나리가 말했다.
  • “주혁아, 너 뭐 하는 거야? 여기는 네가 제멋대로 굴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냐!”
  • “누나, 그런 거 아니야. 난 그냥 누나한테 선물을 주고 싶은 것뿐이야. 걱정하지 마. 나 돈 많아.”
  • “너...”
  • 온나리는 화가 나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 그가 끌고 다니는 산타나를 본 적이 있는 그녀로서는 영주혁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 바로 그때, 화려한 차림의 여자가 천천히 걸어왔다.
  • 그녀는 온몸에서 여유롭고 느긋한 아름다움을 내뿜고 있었고 눈빛 하나, 미소 한 번에도 우아함이 느껴졌다.
  • 그녀는 부첼라 주얼리의 점장 소하윤이었다.
  • “나서희 씨, 무슨 일이야?”
  • 나서희는 영주혁을 가리키며 말했다.
  • “점장님, 여기 이 사람이 저희 샵에서 소란을 피웠어요. 이 다이아몬드 반지 9개를 전부 사겠다고 하더라니까요.”
  • 그 말에 소하윤은 깜짝 놀랐다.
  • 경안구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이 정도 능력을 갖춘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로 아주 적었고 그들은 전부 어마어마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 그러나 눈앞의 남자는 너무 젊었다.
  • 소하윤은 잠깐 주저하다가 아주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 “고객님, 결정 내리셨으면 저와 함께 제 사무실로 가서 거래하시죠.”
  • 금액이 너무 크다 보니 사람들이 다 있는 곳에서 결제하기에는 부적절했다.
  • “점장님!”
  • 나서희는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 “설마 이 사람이 진짜 이 반지들을 살 능력이 된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딱 봐도 잘난 척하려고 괜히 큰소리치는 것 같은데요.”
  • 소하윤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 “일자리 잃고 싶은 게 아니라면 입 다물어.”
  • “전...”
  • 나서희는 뭐라 더 말하고 싶었으나 점장의 차가운 시선에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 그녀는 영주혁을 단단히 노려보았다. 마치 어떻게 이런 거액을 지불할지 지켜보겠다는 듯이 말이다.
  • 영주혁은 몸을 일으키며 개의치 않는 듯 말했다.
  • “가시죠. 거래해야죠.”
  • “주혁아!”
  • 온나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 “너 이러면 진짜 큰일 나. 얼른 가자.”
  • “누나는 선물만 기다리고 있으면 돼.”
  • 영주혁은 싱긋 웃어 보이더니 소하윤과 함께 사무실로 향했다.
  •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서희는 입을 비죽였다.
  • “잘난 척하는 것 좀 봐. 누가 보면 진짜인 줄 알겠네. 조금 이따가 경비원들한테 쫓겨나면 사진 찍어서 인터넷에 뿌려야겠어. 사람들도 저 잘난 척하는 인간이 어떻게 생겼는지 봐야지.”
  •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속닥거렸다.
  • “인터넷에 뿌리면 엄청 웃기겠네.”
  •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면 다들 저 사람 얼굴 알게 되겠네. 인플루언서 되겠다.”
  • “하하, 그러면 조금 뒤에 저 사람이랑 같이 사진 찍어야겠어. 나도 좀 유명해지게 말이야.”
  • 도유진은 안색이 안 좋았다.
  • “나리야,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 그녀는 그곳에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 사람들한테 비웃음당하는 기분은 뜨거운 불 위를 걷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 그 시각, 사무실 안.
  • 영주혁은 소하윤의 맞은편에 앉으며 궁금한 듯 물었다.
  • “제가 돈이 없을까 두렵지 않으세요?”
  • “제가 두려울 게 뭐가 있죠?”
  • 소하윤이 옅은 미소를 짓자 보조개가 드러났다.
  • “정말 돈이 있다면 내기에서 이긴 사람은 제가 되죠.”
  • “축하해요. 내기에서 이기셨으니.”
  • 영주혁은 금빛의 카드를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 “긁으세요.”
  • “이... 이건...”
  • 카드 위에 새겨진 문양을 본 순간 소하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 “이건 27개국에서 연합해 만들었다는 무제한 골드 카드가 아닌가요?”
  •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레 카드를 들고 자세히 살폈다.
  • 전설 속의 무제한 골드 카드가 맞았다.
  • 그녀는 경제학 교과서에서 그 사진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카드는 마치 외계인처럼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인 줄로 알았다.
  • 아무도 실물을 본 적이 없을 터였다.
  •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의 손에 그 골드 카드가 쥐어져 있었고 그녀는 지나치게 흥분해 숨을 쉬는 법마저 잊었다.
  • “고객님... 성...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 소하윤은 멍한 얼굴로 영주혁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 “성은 영씨입니다.”
  • “고객님, 우선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전 소하윤이라 하고 경안구 소가네 장녀입니다. 전...”
  •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