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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아름다운 의사 선생님

  • “저랑 같이 가요!”
  • 영주혁은 정원으로 달려가 입술이 자줏빛이 된 백우리를 안아 든 뒤 교윤태와 함께 택시를 타고 경안구 상안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 백우리와 함께 다급히 진찰실로 들어가는 의사들의 모습을 확인한 뒤 영주혁은 입을 열었다.
  • “할아버지, 여기 잠시만 계세요. 저 연락 좀 하고 올게요.”
  • “알겠어. 가서 일 봐.”
  • 응급실에서 나온 뒤 영주혁은 조용한 곳을 찾아 구석 쪽으로 향했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천괴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천괴, 차 한 대 준비해서 경안구 상안 병원으로 보내.”
  • 보육원 입구에서 택시를 잡을 때 영주혁은 차가 없으면 아주 불편하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 “알겠습니다. 어떤 차를 준비할까요? 세단, 오프로드, 슈퍼 카 아니면 리무진으로 준비할까요?”
  • “평범한 세단이면 돼. 너무 눈에 띄는 건 말고. 20분 안에 도착해야 해.”
  • “알겠습니다. 지유가 20분 내로 상안 병원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보낼 겁니다.”
  • 전화를 끊자마자 등 뒤에서 여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긴 비흡연 구역이에요. 담배 끄세요.”
  • “죄송합니다. 습관이라서요.”
  • 영주혁은 담뱃불을 비벼 끄고는 쓰레기통 안에 버렸다. 고개를 돌리자 반짝이는 두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 그 눈동자는 더없이 싸늘했지만 순간 숨을 쉬는 것마저 잊을 정도로 아름다웠고 그 눈동자의 주인은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 흰 가운을 걸치고 있었음에도 그녀의 수려한 자태는 감출 수 없었다.
  • “다시는 병원에서 흡연하지 마세요.”
  • 얼음장처럼 쌀쌀맞게 구는 미인은 그를 호되게 꾸짖고는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 했다.
  • “잠깐만요!”
  • 부드러운 미소와 달리 영주혁은 일부러 방정맞은 어투로 말했다.
  • “선생님은 어느 과세요? 그 과에서 진찰받을 수 있는 병에 걸려야 할 것 같아서요.”
  • 그가 보육원을 떠날 때 일곱 명의 누나 중 가장 작은 누나가 13살이었으니 용모가 거의 정형화되어 있었다.
  • 그렇기에 10년이 지났음에도 그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 눈앞의 다가가기 어려운 아우라를 뿜어대는 의사는 그의 둘째 누나인 가윤슬이었다.
  • 영주혁은 전장에서 보통 사람들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고통과 시련을 겪었었고 그로 인해 키나 피부색, 분위기 같은 것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 이목구비를 자세히 살펴봐야 겨우 어린 시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 가윤슬은 눈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이 10년간 그리워했던 남동생이라는 걸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 가윤슬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 “저 장례지도사예요. 그래도 오고 싶으세요?”
  • 말을 마친 뒤 그녀는 단호히 고개를 돌려 응급실로 향했다. 어쩐지 발걸음이 다급해 보였다.
  •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미소 짓던 영주혁은 가윤슬이 커터칼을 들고 그의 복부를 열어보겠다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렸다. 그는 이내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그의 둘째 누나는 이제 당당하게 칼을 들 수 있었다.
  • 응급실로 돌아와 보니 백우리는 이미 진료를 마쳐 수술실로 들어간 뒤였다.
  • “할아버지, 우리 상태는 어떻대요?”
  • 교윤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수술해야 한대.”
  • “아, 참.”
  • 교윤태는 무언가 떠올린 듯 영주혁에게 말했다.
  • “네 둘째 누나 가윤슬이 이 병원에서 일해.”
  • “아까 만났어요.”
  • 영주혁은 미소를 띠며 말했고 교윤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러면 됐다. 수술하는 데 열 시간은 넘게 걸릴 것 같대. 난 다른 아이들도 보살펴야 하니 여기는 너희 둘에게 맡기마.”
  •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수술 마치면 제가 할아버지 데리러 보육원까지 갈게요.”
  • 영주혁은 교윤태를 병원 문 앞까지 바래다주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 수술실로 돌아왔다.
  • 수실실 밖의 복도에서 의사들이 무리 지어 서 있었는데 다툼이 있는 듯했다.
  • 가까이 다가가 보니 가윤슬의 목소리가 들렸다.
  • “우리는 제 동생이에요. 이 수술은 반드시 제가 집도해야 해요.”
  • 금빛 테두리의 안경을 쓴 중년 남성이 불쾌함을 드러내며 대꾸했다.
  • “윤슬 선생, 마음이 급한 건 알겠는데 지금 환자는 나이가 너무 어려. 게다가 이건 보기 드문 선천적인 질환이야. 이 수술은 조규진 선생에게 맡기는 게 좋을 것 같네.”
  • 옆에 있던 남자 의사는 ‘조규진’이라는 명찰을 가슴께에 달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맞아요. 이렇게 어려운 수술은 제가 더 잘하잖아요. 윤슬 선생님, 수술 빼앗으려 하지 마세요.”
  • “당신이 더 잘한다고요?”
  • 가윤슬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 “당신 수술 성공률이 어떤지 제가 굳이 얘기해야 하나요? 당신은 그저 보기 드문 난치병 수술을 맡는 걸 통해 승진하고 싶은 것뿐이잖아요?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저도 별말 안 했을 거예요.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봐요. 당신 실력으로 진짜 이 수술을 맡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 “무슨…”
  • 조규진의 표정이 굳었다.
  • “윤슬 선생님,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제가 어떤 신분인지는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게다가 주 교수님께서도 말씀하셨는데 왜 그렇게 뺏으려고 난리예요?”
  • 일의 자초지종을 알게 된 영주혁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의사와 간호사들 틈으로 걸어 나와 가윤슬의 앞에 서서 물었다.
  • “이 수술, 성공률이 얼마죠?”
  • 가윤슬은 미간을 구기면서 그에게 쓸데없이 관여하지 말라고 하려 했는데 영주혁의 담갈색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하자 귀신에 홀린 듯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 “제가 집도한다면 성공률은 80에서 85% 정도예요. 조규진 선생님이 집도한다면 60%도 안 돼요.”
  • “이분 말이 맞나요?”
  • 영주혁은 조규진을 보며 물었다.
  • “아... 아닌데요.”
  • 목을 빳빳이 쳐들며 반박하려 하던 조규진은 불현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의아한 듯 물었다.
  • “당신은 누굽니까? 누구신데 절 질의하는 거죠?”
  • 옆에 있던 주 교수는 헛기침하며 화가 난 듯 말했다.
  • “관계자가 아니라면 지금 당장 돌아가세요. 그렇지 않으면 경비원 부르겠습니다.”
  • “뭘 그리 급해 하시는 거죠?”
  • 영주혁은 가윤슬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 “전 가윤슬 선생님의 남편이니 관계자가 맞죠.”
  • “남편이요?”
  • 그의 말에 주위에 있던 의사와 간호사들은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 얼음 여왕처럼 차갑기만 하던 가윤슬이 유부녀라니?
  • “무슨 헛소리예요?”
  • 가윤슬은 저항하려 했지만 영주혁의 팔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 왕주원처럼 온몸이 근육으로 뒤덮인 건장한 남성도 영주혁을 뿌리치지 못했는데 가윤슬 같은 여자에게는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 영주혁은 씩 웃더니 그녀의 어깨에 올려진 손가락에 살짝 힘을 주었고 그 순간 가윤슬은 혈을 눌린 사람처럼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 “조규진 선생님, 심장 수술을 잘하시나요?”
  • 둘째 누나의 따뜻한 체온에 영주혁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고 조규진을 향한 말투마저도 살짝 누그러졌다.
  • 조규진은 고개를 쳐들면서 오만하게 얘기했다.
  • “당연하죠! 오늘 이 수술은 저희 성안 병원에서 저랑 가윤슬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하지 못합니다.”
  • “규진 선생, 저 사람이랑 쓸데없이 대거리할 필요 없어.”
  • 주건학은 성가시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 “얼른 경비원 불러서 소란 피우는 사람 데려가게 해.”
  • 영주혁의 미소가 서서히 싸늘해졌다. 그는 온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눈빛으로 주 교수를 바라보며 가윤슬에게 말했다.
  • “이 수술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