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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내기하시겠어요?

  • “아버지께서 오셨나 보네!”
  • 온수찬은 온기욱과 온아름을 데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온가네 주인을 마중했다.
  • 온범준은 70이 넘었음에도 정정했다.
  • 그는 자애로운 표정으로 온수찬의 옆에 자리를 잡았고 만족스레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 “그래. 우리 집안에 인재가 이렇게도 많은 걸 보니 앞으로도 집안이 번창하겠구나!”
  • 그는 갑자기 표정을 달리하며 온아름에게 물었다.
  • “아름아, 네 약혼자는 왜 아직도 안 온 거냐? 걔 얼굴 못 본 지도 오래된 것 같은데 말이다.”
  • “할아버지, 강훈씨는 조금 전에 집안에서 급한 일이 생겼다고 연락이 와서 일 처리하느라 조금 늦게 도착할 거 같아요.”
  • “그래…”
  • 온범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 “위씨 집안은 대가족이니 처리할 일도 많겠지. 그럼 우리는 걔가 올 때까지 잠시만 기다리자꾸나. 강훈이 온 다음 식사하자고.”
  • 영주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 ‘뭐 하는 작자길래 이 정도 대우를 해주는 거야? 온씨 집안의 열이 넘는 사람들이 전부 그 사람을 기다린다고?’
  • 바로 그때 온범준은 영주혁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 “자네는…”
  • 온나리는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 “할아버지, 얘는 보육원에 있던 제 동생이에요.”
  • “그리고 미래 남편이기도 하죠.”
  • 영주혁은 바로 말을 보탰다.
  • “장난치지 마.”
  • 온나리는 테이블 밑으로 그에게 살짝 발길질했다.
  • “그래?”
  • 온범준은 경멸이 담긴 눈빛으로 영주혁을 훑어보더니 온나리를 꾸짖기 시작했다.
  • “어쩐지 최근 들어 아벨 백화점의 실적이 자꾸 떨어진다 싶었는데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연애질해서 그랬던 거구나.”
  • “할아버지, 그런 거 아니에요. 그건 유성 상인연합회가…”
  • 그녀가 말을 마치지도 않았는데 온기욱이 그녀의 말허리를 잘랐다.
  • “온나리. 적당히 해. 네 창업 자금은 우리 집안에서 대준 거야. 그런데 네가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딴짓만 하는 걸 어떻게 그냥 보고만 있겠어? 그러니까 얼른 아벨 백화점 내놔.”
  • 다른 친척들도 맞장구를 쳤다.
  • “그래. 능력이 없으면 물러날 줄도 알아야지. 정말 낯짝 두껍긴.”
  • “우리 집안 산업은 당연히 온가네 사람이 장악해야지. 네가 아무리 온씨 성을 가지게 됐다고 해도 결국엔 피도 안 섞인 외부인이야.”
  • “당신들…”
  • 온나리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목청을 높였다.
  • “아벨 백화점은 제 피와 살을 갈아서 일으켜 세운 회사예요. 온씨 집안에서 창업 자금을 대준 건 맞지만 그때 그 빚 저는 오래전에 다 갚았어요.”
  • “됐다!”
  • 온범준이 테이블을 내리쳤다.
  • “다들 입 다물어!”
  • 분위기는 삽시에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 바로 그때 준수한 외모의 남성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얼어붙은 분위기를 깨부쉈다.
  • 그는 온화하고 우아한 어조로 말했다.
  • “죄송합니다. 제가 늦었네요.”
  • 그가 나타나자 온가네 사람들은 작게 감탄을 내뱉었다.
  • “저 사람이 바로 온아름의 약혼자, 위씨 집안의 도련님 위강훈이래.”
  • “금방 유학하고 돌아왔다던데 아주 앞길이 창창하다고 하더라.”
  • “세상에나, 위씨 집안이라면 경안구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집안이잖아. 온아름이 이렇게 좋은 집안과 연줄을 맺다니, 생각지도 못했어.”
  • 위강훈은 부러움에 찬 시선들을 즐기며 턱을 높이 쳐들었다.
  • 그는 온아름의 옆에 자리를 잡더니 예의 바르게 말했다.
  • “죄송합니다. 집안에서 갑자기 급한 볼일이 생겼다고 하길래 좀 늦었습니다. 여러분들을 기다리게 했네요.”
  • 온수찬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 “죄송할 것까지야. 당연히 우리 사위를 기다려야지.”
  • 온범준은 자애로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 “강훈아, 대체 무슨 급한 일이었는지 우리한테 얘기 좀 해줄 수 있겠니?”
  • 온범준은 상업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위강훈이 지각한 것에서 남다른 기운을 느꼈다.
  • 위강훈은 돌연 표정을 굳히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 “오늘 오전, 한 대기업이 경안구에 2조 원이라는 거액을 자본금으로 내 사업자등록을 했고 도원동 테크노밸리를 사들여 사업소로 지정했다고 합니다.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할 수 있죠. 그들이 협력 프로젝트를 몇 개 내놨는데 그중 하나라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출셋길에 오르는 격이죠. 어쩌면 경안구가 아니라 성운시에서 가장 잘 나가는 집안이 될 수도 있어요.”
  • “헉!”
  • 테이블에 앉아있던 뭇사람들은 헛숨을 들이키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 “자본금이 2조 원이라고? 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이렇게 통이 큰 거야?”
  • 위강훈은 선망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 “제울그룹이라고 하더군요. 실력이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 온범준은 많이 흥분했는지 목소리가 떨렸다.
  • “그래, 우리 손녀사위. 우리 집안도 그 협력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가 있을까?”
  • “그건…”
  • 위강훈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더니 허세를 부리며 대꾸했다.
  • “제울그룹에서 요 이틀간 협력 프로젝트 공모전을 한다고 합니다. 저희 집안에서 도와준다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죠.”
  • “잘됐네!”
  • 주름이 가득한 온범준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개했다.
  • “만약 일이 잘 풀리게 된다면 자네 장인어른의 오성 그룹에 16억 원을 지급해 제울그룹과의 협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겠네.”
  • “감사합니다, 아버지.”
  •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 온수찬과 온기욱 두 사람은 입꼬리가 귀에 걸렸고, 그와 반대로 온지후와 강서연의 안색은 한없이 어두웠다.
  • 이대로 가다가는 온가네 모든 재산이 온수찬 가족의 손에 들어갈 것 같았다.
  • 온나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로 말했다.
  • “할아버지, 16억이라 하셨어요? 그 돈은 어디서 나신 거예요? 설마 또 아벨 백화점 보고 내라는 건 아니겠죠?”
  • 온범준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 “그게 무슨 말이냐? 아벨 백화점은 우리 온가네 산업이야. 돈 좀 내는 게 뭐 어때서?”
  • “그러니까요. 제울그룹하고 협력할 수만 있다면 아벨 백화점을 팔 수도 있는 거죠.”
  • 온아름은 같잖다는 듯이 온나리를 흘겨봤다.
  • “내가 보기에 넌 우리 오성 그룹을 질투하는 것 같은데. 내 약혼자가 너한테 빌붙어 사는 기생오라비보다 능력 있어서 질투하는 거잖아.”
  • “너…”
  • 온나리는 이를 악물었고 화가 나서 호흡이 거칠어졌다.
  • 온가네 사람 중 그녀를 진짜 존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 사실에 온나리는 분통이 터졌다.
  • 영주혁의 얼굴에 언뜻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
  • 감히 제울의 무신인 자신의 누나를 욕보이다니,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 “누나, 그 일은 나한테 맡겨요.”
  • 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온가네 사람들을 쭉 둘러봤고 그의 시선은 온범준의 몸에 멈췄다.
  • “저랑 내기하실래요?”
  • “넌 뭐야? 감히 우리 아버지와 내기하겠다니, 겁도 없이!”
  • 온수찬은 탁자를 내리치며 욕했고 온나리도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서 낮은 목소리로 다급히 얘기했다.
  • “주혁아, 이 일은 농담으로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신경 쓰지 마.”
  • 그러나 영주혁의 시선은 온범준에게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도발적인 어투로 말했다.
  • “온가네 주인이신 분이 저랑 내기할 용기가 없나 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