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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큰누나가 돌봐줄게

  • ‘끼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당장이라도 해체될 듯한 차량을 끌고 영주혁은 아벨 백화점 주차장에 도착했다.
  • 주차장을 지키고 있던 직원은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경멸을 담아 얘기했다.
  • “주차 비용은 한 시간에 2,400원이고요, 주차차단기 망가뜨리면 100만 원입니다.”
  • “알겠어요.”
  • 영주혁은 어이가 없었다. 그 직원은 아마도 그가 주차비를 낼 수 없을 정도의 형편이고 주차차단기를 망가뜨릴 거로 생각하는 듯했다.
  • 하긴, 이런 고물을 끌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몇천 원을 내는 것도 아까울 터였다.
  • 천괴가 보내온 파일을 통해 영주혁은 온나리의 사무실이 백화점 뒤쪽에 있는 빌딩 꼭대기 층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 그는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기에 곧장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보니 세 면이 유리로 되어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홀이 보였다.
  • 그곳은 녹음이 우거졌고 물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 영주혁은 큰누나의 취향이 변함없이 고상하고 우아한 것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 땅값이 가장 비싸다는 이곳에 이렇게 운치 있는 스카이 가든을 만들다니.
  • 영주혁이 회장 사무실을 찾고 있는데 한 경비원이 비뚤어진 모자를 바로 하며 그를 향해 다급히 달려왔다.
  • “여기는 회장님 개인 구역입니다. 다른 분들은 들어오실 수 없어요!”
  • “회장님한테 볼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 경비원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성가시다는 듯이 대꾸했다.
  • “볼 일이 있든 없든 제 알 바 아닙니다. 회장님을 만나고 싶으신 거면 먼저 고 비서님을 찾아가 예약하세요.”
  • 영주혁은 턱을 긁적거리며 물었다.
  • “고 비서요? 남자예요 여자예요?”
  • “그게 중요합니까? 당장 여기서 나가세요. 낯선 사람이 이곳에 있는 걸 회장님이 보시면 저까지 혼날 겁니다.”
  • 경비원이 막 팔을 움직여 영주혁을 내보내려는데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금 열렸다.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은 절세미인이 미간을 구기더니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며 물었다.
  • “어떻게 된 일이죠?”
  •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영주혁의 큰누나 온나리였다.
  • “회, 회장님. 사무실에 계신 거 아니셨어요?”
  • 경비원은 겁에 질려서 더듬거리더니 영주혁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 “이 사람이 제멋대로 쳐들어와서 쫓아내던 중이었습니다.”
  • 온나리는 싸늘한 얼굴로 영주혁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빼어난 미모에서는 기품과 도도함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 “큰누나, 오랜만이에요.”
  •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큰누나라고 부르려니 어쩐지 입안이 썼다.
  • 영주혁이 온나리를 큰누나라고 부르자 경비원은 눈을 부릅뜨면서 욕을 해댔다.
  • “지금 누굴 보고 큰누나라고 하는 겁니까? 회장님은 올해 고작 스물일곱이신데…”
  • 그러나 뒷말은 내뱉지도 못하고 그대로 뱃속으로 삼켜야 했다.
  • 온나리의 얼음장처럼 차갑던 표정이 사르르 녹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손으로 빨간 입술을 가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너... 너 주혁이니?”
  • “네, 저예요. 큰누나, 저 돌아왔어요.”
  • “진짜 너구나… 진짜 너야…”
  • 온나리는 영주혁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왈칵 눈물을 쏟았다.
  • 그렇게 1분 동안 영주혁의 얼굴을 세세히 살피던 그녀는 돌연 영주혁의 품을 파고들면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 “우리는… 우리는 네가 죽은 줄 알았어… 심지어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진 얼굴을 한 시체를 너라고 생각해 인계받았었는데… 흑흑… 왜 이제야 돌아온 거니…”
  • 오랜만에 온정을 느낀 영주혁은 온나리의 가녀린 등을 토닥이며 그녀를 위로했다.
  • “그래도 지금 왔잖아요.”
  • “앞으로는 어디 안 갈 거지?”
  • “네, 안 가요. 절대 안 떠나요.”
  • 영주혁의 떠나지 않겠다는 말에 온나리는 뺨을 적신 눈물을 닦아냈고 그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살포시 내리치면서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 “이 자식, 우리를 10년이나 걱정하게 만들고. 앞으로 또 집 나가면 진짜 다리를 부러뜨릴 거야!”
  • 두 사람이 실랑이하고 있을 때 옆에 서 있던 경비원은 맨몸으로 한겨울을 나는 사람처럼 벌벌 떨고 있었다.
  • 한참 뒤에야 불현듯 정신을 차린 온나리는 영주혁의 품에서 벗어나 자신의 깊게 파인 드레스를 정리했고 다시 고고한 자태를 회복했다.
  • “앞으로 이 사람은 언제든지 올 수 있으니까 막지 마세요.”
  • “네, 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회장님…”
  • 경비원은 이마를 적신 식은땀을 닦아내면서 바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허리를 깊이 숙였다.
  • 사무실에 들어선 영주혁은 온나리의 맞은편에 놓인 의자에 앉으며 씩 웃어 보였다.
  • “큰누나, 고 비서는 남자야 여자야?”
  • “여자야, 왜?”
  • “여자면 다행이네.”
  • 영주혁의 미소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 “기억 안 나? 예전에 나 7살 때 큰누나 포함해서 다른 누나들도 나랑 약속했잖아. 크면 다 나랑 결혼할 거라고.”
  • “그건 어릴 때 멋모르고 한 소리지. 그게 어떻게 약속이야?”
  • 온나리는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화제를 바꿨다.
  • “아, 참. 걔네는 너 돌아온 거 아직 모르지? 며칠 뒤에 우리 한 번 모이자.”
  • “누나들도 다 경안구에 있는 거야?”
  • “여섯째랑 일곱째 빼고는 다 여기 있어.”
  • 영주혁은 재밌다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
  • “둘째 누나가 의사인 건 알았고, 다른 누나들은 뭐 하고 지내?”
  • “셋째는... 좀 특별한 고객들 모시고 있고, 넷째는 찻집 경영하고 있어. 음… 일단은 찻집이라고 해두자. 다섯째가 그나마 제일 속 안 태우지. 걔는 모델인데 지금 엄청 잘 나가. 여섯째는 일 년에 한 번 설쯤에 돌아오는데 뭐 하는지는 몰라. 걔 행방을 아는 애가 없어. 일곱째는 다른 지역에서 학교 다니고 있고. 그런데 아이큐가 200이 넘다 보니까 좀 특이한 행동을 해…”
  • “음… 얘기 들어보니까 정상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이 몇 안 되는 것 같은데…”
  • 온나리가 얘기해준 다른 누나들의 근황을 듣고 나니 영주혁의 입꼬리가 살짝 떨렸다.
  • “특별한 고객들 모시고, 찻집 비슷한 걸 꾸리고, 행방을 알 수 없고, 특이한 행동을 한다니… 이게 다 뭐야?”
  • 어릴 적에도 그는 누나들이 좀 남다른 면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 그런데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남들과 다른 길을 갈 줄은 몰랐다.
  • “걔들이랑 만나게 되면 직접 물어봐.”
  • 온나리는 비밀스럽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 “어쩌면 놀랄 만한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
  • “알겠어. 어차피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인걸.”
  • 영주혁은 한숨을 내쉬면서 웃음을 거두어들였다.
  • “그럼 우선은 큰누나 일부터 얘기하자.”
  • “나? 나 별일 없는데?”
  • 영주혁의 진지한 표정에 온나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 “너도 봤다시피 난 지금 이 백화점의 회장이야. 엄청 잘 나가.”
  • 영주혁은 유성 상인연합회의 제재를 받은 일은 어떻게 된 거냐고, 온가네 사람들이 사사건건 누나를 겨냥하지는 않냐고 묻고 싶었지만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말을 도로 삼켰다.
  • 그는 큰누나가 어릴 때부터 기가 세고 고상한 성격이란 걸 알고 있었다.
  • 이렇게 직접적으로 묻는다면 절대 원하는 답안을 얻지 못할 것 같았다.
  • 그런 생각이 들자 영주혁은 싱긋 웃으며 내친김에 물었다.
  • “그럼 앞으로 돈 없으면 회장님인 누나가 나 책임져 주겠네?”
  • “참 나, 웃겨. 앞으로 돈 없으면 누나한테 얘기해. 누나가 책임져 줄게.”
  • 온나리는 안도한 듯 온화한 미소를 띠었다.
  • “누나, 10년을 못 봤는데 그새 많이 섹시해졌다.”
  • 영주혁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온나리의 정교한 드레스를 보며 화두를 돌렸다.
  • “그런데 평소에도 이렇게 화려하게 입고 다녀? 너무 거추장스러운 거 아냐?”
  • 그 말에 온나리는 짧게 소리를 지르며 놀란 얼굴로 말했다.
  • “어머! 너 만나서 너무 들떴나 봐. 중요한 일을 잊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