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당장이라도 해체될 듯한 차량을 끌고 영주혁은 아벨 백화점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을 지키고 있던 직원은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경멸을 담아 얘기했다.
“주차 비용은 한 시간에 2,400원이고요, 주차차단기 망가뜨리면 100만 원입니다.”
“알겠어요.”
영주혁은 어이가 없었다. 그 직원은 아마도 그가 주차비를 낼 수 없을 정도의 형편이고 주차차단기를 망가뜨릴 거로 생각하는 듯했다.
하긴, 이런 고물을 끌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몇천 원을 내는 것도 아까울 터였다.
천괴가 보내온 파일을 통해 영주혁은 온나리의 사무실이 백화점 뒤쪽에 있는 빌딩 꼭대기 층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기에 곧장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보니 세 면이 유리로 되어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홀이 보였다.
그곳은 녹음이 우거졌고 물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영주혁은 큰누나의 취향이 변함없이 고상하고 우아한 것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땅값이 가장 비싸다는 이곳에 이렇게 운치 있는 스카이 가든을 만들다니.
영주혁이 회장 사무실을 찾고 있는데 한 경비원이 비뚤어진 모자를 바로 하며 그를 향해 다급히 달려왔다.
“여기는 회장님 개인 구역입니다. 다른 분들은 들어오실 수 없어요!”
“회장님한테 볼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경비원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성가시다는 듯이 대꾸했다.
“볼 일이 있든 없든 제 알 바 아닙니다. 회장님을 만나고 싶으신 거면 먼저 고 비서님을 찾아가 예약하세요.”
영주혁은 턱을 긁적거리며 물었다.
“고 비서요? 남자예요 여자예요?”
“그게 중요합니까? 당장 여기서 나가세요. 낯선 사람이 이곳에 있는 걸 회장님이 보시면 저까지 혼날 겁니다.”
경비원이 막 팔을 움직여 영주혁을 내보내려는데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금 열렸다.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은 절세미인이 미간을 구기더니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며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죠?”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영주혁의 큰누나 온나리였다.
“회, 회장님. 사무실에 계신 거 아니셨어요?”
경비원은 겁에 질려서 더듬거리더니 영주혁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이 사람이 제멋대로 쳐들어와서 쫓아내던 중이었습니다.”
온나리는 싸늘한 얼굴로 영주혁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빼어난 미모에서는 기품과 도도함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큰누나, 오랜만이에요.”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큰누나라고 부르려니 어쩐지 입안이 썼다.
영주혁이 온나리를 큰누나라고 부르자 경비원은 눈을 부릅뜨면서 욕을 해댔다.
“지금 누굴 보고 큰누나라고 하는 겁니까? 회장님은 올해 고작 스물일곱이신데…”
그러나 뒷말은 내뱉지도 못하고 그대로 뱃속으로 삼켜야 했다.
온나리의 얼음장처럼 차갑던 표정이 사르르 녹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손으로 빨간 입술을 가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너 주혁이니?”
“네, 저예요. 큰누나, 저 돌아왔어요.”
“진짜 너구나… 진짜 너야…”
온나리는 영주혁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렇게 1분 동안 영주혁의 얼굴을 세세히 살피던 그녀는 돌연 영주혁의 품을 파고들면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우리는 네가 죽은 줄 알았어… 심지어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진 얼굴을 한 시체를 너라고 생각해 인계받았었는데… 흑흑… 왜 이제야 돌아온 거니…”
오랜만에 온정을 느낀 영주혁은 온나리의 가녀린 등을 토닥이며 그녀를 위로했다.
“그래도 지금 왔잖아요.”
“앞으로는 어디 안 갈 거지?”
“네, 안 가요. 절대 안 떠나요.”
영주혁의 떠나지 않겠다는 말에 온나리는 뺨을 적신 눈물을 닦아냈고 그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살포시 내리치면서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자식, 우리를 10년이나 걱정하게 만들고. 앞으로 또 집 나가면 진짜 다리를 부러뜨릴 거야!”
두 사람이 실랑이하고 있을 때 옆에 서 있던 경비원은 맨몸으로 한겨울을 나는 사람처럼 벌벌 떨고 있었다.
한참 뒤에야 불현듯 정신을 차린 온나리는 영주혁의 품에서 벗어나 자신의 깊게 파인 드레스를 정리했고 다시 고고한 자태를 회복했다.
“앞으로 이 사람은 언제든지 올 수 있으니까 막지 마세요.”
“네, 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회장님…”
경비원은 이마를 적신 식은땀을 닦아내면서 바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허리를 깊이 숙였다.
사무실에 들어선 영주혁은 온나리의 맞은편에 놓인 의자에 앉으며 씩 웃어 보였다.
“큰누나, 고 비서는 남자야 여자야?”
“여자야, 왜?”
“여자면 다행이네.”
영주혁의 미소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기억 안 나? 예전에 나 7살 때 큰누나 포함해서 다른 누나들도 나랑 약속했잖아. 크면 다 나랑 결혼할 거라고.”
“그건 어릴 때 멋모르고 한 소리지. 그게 어떻게 약속이야?”
온나리는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화제를 바꿨다.
“아, 참. 걔네는 너 돌아온 거 아직 모르지? 며칠 뒤에 우리 한 번 모이자.”
“누나들도 다 경안구에 있는 거야?”
“여섯째랑 일곱째 빼고는 다 여기 있어.”
영주혁은 재밌다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
“둘째 누나가 의사인 건 알았고, 다른 누나들은 뭐 하고 지내?”
“셋째는... 좀 특별한 고객들 모시고 있고, 넷째는 찻집 경영하고 있어. 음… 일단은 찻집이라고 해두자. 다섯째가 그나마 제일 속 안 태우지. 걔는 모델인데 지금 엄청 잘 나가. 여섯째는 일 년에 한 번 설쯤에 돌아오는데 뭐 하는지는 몰라. 걔 행방을 아는 애가 없어. 일곱째는 다른 지역에서 학교 다니고 있고. 그런데 아이큐가 200이 넘다 보니까 좀 특이한 행동을 해…”
“음… 얘기 들어보니까 정상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이 몇 안 되는 것 같은데…”
온나리가 얘기해준 다른 누나들의 근황을 듣고 나니 영주혁의 입꼬리가 살짝 떨렸다.
“특별한 고객들 모시고, 찻집 비슷한 걸 꾸리고, 행방을 알 수 없고, 특이한 행동을 한다니… 이게 다 뭐야?”
어릴 적에도 그는 누나들이 좀 남다른 면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남들과 다른 길을 갈 줄은 몰랐다.
“걔들이랑 만나게 되면 직접 물어봐.”
온나리는 비밀스럽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어쩌면 놀랄 만한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
“알겠어. 어차피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인걸.”
영주혁은 한숨을 내쉬면서 웃음을 거두어들였다.
“그럼 우선은 큰누나 일부터 얘기하자.”
“나? 나 별일 없는데?”
영주혁의 진지한 표정에 온나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너도 봤다시피 난 지금 이 백화점의 회장이야. 엄청 잘 나가.”
영주혁은 유성 상인연합회의 제재를 받은 일은 어떻게 된 거냐고, 온가네 사람들이 사사건건 누나를 겨냥하지는 않냐고 묻고 싶었지만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말을 도로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