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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100번의 암살

  • 영주혁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웃어 보였다.
  • “누나, 설마 나 잊은 거야?”
  • 인해은은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서서히 몸을 돌렸고 영주혁의 널따란 품에 몸을 바짝 붙였다.
  • “너... 진짜 주혁이야?”
  •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 영주혁은 그녀의 흐트러진 잠옷을 정돈해주며 대꾸했다.
  • “나 맞아. 오랜만이다, 누나.”
  • “주혁아...”
  • 인해은의 두 눈동자는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영주혁을 안더니 그의 품에 머리를 파묻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이제야 돌아오다니... 죽으러 온 거야?”
  •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기에 영주혁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뼈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 그는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인해은과 거리를 벌리며 옆에 있던 소파 위에 올라섰다.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 “누나, 설마 나 죽이려는 건 아니지?”
  • 인해은은 손가락에서 ‘딱딱’ 소리가 나게 손을 풀더니 입 안에서 은침 하나를 꺼내 들고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 “너 내 맨몸을 거의 다 봤잖아. 그건 킬러한테 가장 큰 치욕이야.”
  • “킬... 킬러?”
  • 영주혁은 당황했다. 그는 곧 인해은이 특수한 고객들을 상대한다고 했던 온나리의 말을 떠올렸다.
  • 설마 고객들을 대신해 살인한다는 말인가?
  • “누나, 좀 진정해.”
  • 영주혁은 손을 뻗으며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 “난 누나가 가장 아끼는 동생이잖아. 진짜 나 죽일 수 있겠어?”
  • “사실 나도 마음이 아파.”
  • “그런데 죽이겠다고?”
  • “넌 내가 가장 아끼는 동생이니까 너한테 백 번의 기회를 줄게.”
  • 인해은은 손가락 하나를 들며 말했다.
  • “널 죽이기 위해 난 백 번을 시도할 거야. 네가 살아남는다면 봐줄게. 아까 한 번 도망쳤으니까 이제 99번 남았어.”
  • “누나, 좀 봐주면 안 돼?”
  • “안 돼. 내 목표물 중에 살아남은 사람은 없어. 넌 많이 봐준 거야.”
  • 인해은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 “그... 그럼 바지라도 먼저 입을래?”
  • 영주혁은 인해은의 새하얗고 기다란 다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 “나도 남자야. 이건 반칙이라고.”
  • 그 순간 인해은의 차갑던 얼굴에 홍조가 피어올랐다.
  • “99번이야. 주혁아, 난 널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 그 말을 끝으로 인해은은 얼굴을 붉히며 침실로 들어갔고 때마침 장을 보러 갔던 온나리가 돌아왔다.
  • “누나, 드디어 왔네. 셋째 누나 진짜 너무 무서워.”
  • 영주혁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온나리가 든 봉투를 건네받으며 고자질했다.
  • “날 죽이겠다고 하더라니까.”
  • 사실 그에게 인해은의 암살은 어린아이들의 소꿉장난처럼 느껴졌으나 누군가 매일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게 싫었다.
  • 그는 온나리에게 일러바치면 그녀가 자신의 편을 들어 줄 줄 알았다.
  • 그런데 온나리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꾸했다.
  • “우리 자매는 서로의 일에 간섭 안 해. 사람을 죽이는 건 걔 직업이니까 난 끼어들지 않을 거야.”
  • 온나리는 그의 이마를 톡 건드리더니 사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 “해은이가 진짜 널 죽일 것 같아서 그래? 너 실종된 뒤로 가장 슬퍼한 사람이 걔야.”
  • 그 말에 영주혁은 감동이 물 밀듯 밀려왔다.
  • 온나리는 야채를 씻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 “그때 걔 칼을 갈면서 널 잡으면 죽여서 인형으로 만들어버릴 거라 그랬었는데. 그래야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말이야.”
  • “...”
  • 옷을 갈아입고 나온 인해은은 주방으로 왔고 소리 없이 영주혁의 뒤에 서서 느긋하게 말했다.
  • “언니, 오늘 저녁에 우리 주혁이 튀겨서 먹을까?”
  • 그는 등 뒤에 사람이 서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지만 소름이 돋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누나, 왜 걸을 때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야?”
  • 인해은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 “내가 좀 조용히 걷기는 하지. 그런데 넌 내가 네 뒤에 서 있다는 걸 알았잖아.”
  • 영주혁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 “난 고개도 안 돌렸는데 누나가 왔다는 걸 어떻게 알겠어?”
  • “큰언니는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못 속여.”
  • 인해은은 두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면서 말했다.
  • “말해, 여태 뭐 하면서 지냈어?”
  • 인해은은 조금 전 싸움으로 인해 의심이 들었다.
  • 그녀의 실력으로는 장정 다섯 명이 달려들어도 그녀의 근처에 얼씬하지 못했을 텐데 영주혁은 가볍게 그녀를 제압했기에 의심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 “나 군대 갔다 왔어!”
  • 영주혁은 진실과 거짓을 적절히 섞어가며 말했다.
  • “거기서 몇 년 지내다가 최근에 제대했어.”
  • “군대라고...”
  • 인해은은 가슴 아픈 표정을 지어 보이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 “군대에서 많이 고생했나 보다. 나보다 실력이 더 좋은 걸 보면 말이야.”
  • “아니야, 난 그냥 힘이 좀 센 것뿐이야. 사람 죽이는 건 누나가 훨씬 잘하지.”
  • “알면 됐어. 앞으로 누가 너 괴롭히면 나한테 얘기해. 내가 죽여줄게.”
  • 영주혁은 얼른 손을 내저었다.
  • “그럴 필요는 없어. 나만 안 죽이면 돼.”
  • “그건 안 돼.”
  • 인해은은 냉정하게 말했다.
  • “이건 이거고 그건 그거야. 서로 다른 문제라고.”
  • ...
  • 밥을 먹고 난 뒤 시계를 확인한 영주혁은 온나리에게 얘기했다.
  • “누나, 내 차 아직 누나 회사에 있잖아. 나 거기까지 데려다줘. 나 보육원에 가서 할아버지 병원으로 모셔다드려야 해.”
  • “할아버지 어디 아프시니?”
  • 인해은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 “나도 갈래.”
  • 온나리는 고개를 저었다.
  • “보육원 애가 아프대. 그리고 윤슬이가 지금 수술 집도하고 있고.”
  • “그럼 관심 없어.”
  • 몸을 일으킨 인해은은 위층으로 올라가며 말했다.
  • “오늘 밤엔 안 돌아올 거야.”
  • “누나, 집에 안 들어올 거라고?”
  • 영주혁은 몸을 돌려 의자 등받이에 팔을 걸치며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 “저녁에 집도 안 들어오고 어디 가서 뭐 할 거야?”
  • “사람 죽여서 돈 벌고 그 돈으로 너한테 먹일 독 사려고.”
  • 그 말을 끝으로 인해은은 계단 모퉁이로 모습을 감췄다.